7월 6일(현지 시간) 남중국해 해상에서 훈련을 하는 미국 니미츠항모 전단 소속 전함과 전투기들 ⓒ출처 미 해군

미국과 중국이 신(新)냉전에 돌입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객원 편집자 니얼 퍼거슨은 미국·중국 간 “무역뿐 아니라 기술과 지정학적 문제 등이 섞인 다차원적 분쟁”이 “2차 냉전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했다.

미국 하원 군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 마이크 갤러거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그렇소, 미국은 중국과 냉전 중이오’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했다. “중국 공산당이 미국 중심 세계 질서에 맞서 신냉전을 도모해 왔지만 미국은 이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이렇게 보면 ‘냉전’은 중국이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도전(교란)하는 행위다. 중국이 세계적으로 미국을 위협할 강대국(‘G2’)으로 부상했으며, 양국의 각축 때문에 세계가 양분되리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우파가 한국이 미국의 편임을 분명히 재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신냉전을 거론한다. 미·중 갈등이 서구 ‘민주주의’ 대 중국 ‘권위주의’ 사이의 쟁투라고 보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로, (주로 진보 측 일각에서)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을 모종의 진보적 반제국주의 세력으로 보고 미국에 반대해 중국을 지지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면서 (홍콩 보안법 등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중국 내 계급 갈등은 외면하고 국가 간 갈등만 중시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주장들의 공통된 전제는 20세기 후반부의 냉전 때 자본주의 미국 대 ‘사회주의’ 소련(과 중국)이 세계적으로 대립했듯이, 지금 미국 대 중국이 곳곳에서 갈등하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냉전이라는 생각이다.

지구적 분할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제국주의론은 오늘날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20세기 초 부하린·레닌을 비롯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역동적·불균등한 발전 양상 때문에 자본과 국가들의 세력관계는 끊임없이 바뀌고, 이것이 여러 제국 간 경쟁을 끊이지 않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경쟁에서 때로 후발 주자들이 기존 선진국을 제치고 우위에 설 수도 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세계 전체에 관철시키고자 했다. 미국과 함께 전승국이었던 소련은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에 미국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이에 맞섰다. 이후 미·소 양국은 전 세계에서 상대를 억제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경쟁자한테서 자신의 세력권을 지키려 했다.

이 경쟁이 특수했던 점은 세계 도처에서 국가 간 관계를 모두 양대 진영의 틀 안에 욱여넣었다는 것이다. 미·소 어느 한 쪽의 동맹국이 돼 양극적 질서에 복종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양극화는 노동운동과 좌파에게도 강요됐다.

냉전은 전혀 ‘차갑지’ 않았다. 미·소 양국은 핵폭탄 발사 버튼에 손을 얹고 으르렁댔고, (양대 강국이 직접 충돌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대리전을 치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처럼 실제로 핵전쟁 위기까지 치달은 경우도 있었다.

양국은 자기 진영 국가들에게 “정치·경제·이념 활동을 블록 전체의 요구에 유보 없이 종속시킬 것”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같은 진영 내 국가 간 갈등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됐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익 계산 이상의 문제였다. 미·소 양국 모두 자신의 블록에 속해 있는 국가들이 상대방 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투자로 회수할 수 있는 이득을 넘어선) 막대한 경제적 투자를 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막대한 군사비를 투자했다. 이로써 (특히 서방) 진영 내 몇몇 나라들이 득을 보기도 했지만, 양대 강국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이해득실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이 과정에서 양대 블록 간 교역은 극도로 제한됐다. 

오늘날 그런 전 지구적 분할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세계 주요 지역을 모두 포괄하는 유일한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서방 진영 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냉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다른 강대국들과의 격차가 두드러지게 좁아졌다. 냉전이 시작되던 1940년대 중반에 미국은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했지만, 냉전이 끝날 무렵엔 그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 비중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2019년 현재 전 세계 GDP의 약 24.1퍼센트). 반면 미국의 잠재적 경쟁국들은 미국과 격차를 줄였다. 서유럽(대표적으로 서독)과 일본 경제가 냉전을 거치며 크게 성장했다. 특히 냉전기에는 서방 진영 밖에 있던 중국이 21세기 들어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떠올랐다.(여전히 미국이 국제 금융 시스템의 중심이고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군사력 측면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미국의 연간 군비 지출은 2~7위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고, 그 군사력(과 그것이 보여 주는 영향력)을 여전히 세계 주요 지역 모두에 투사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약 80개국에 800곳 넘는 군사 기지를 두고 있다. 임시 주둔 중인 곳까지 합치면 1000곳이 넘는다. 2~12위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그리고 미국은 유라시아 일대에 강력한 동맹국 체제를 구축해 반 세기 넘게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은 군사력은 우월하지만 경제력은 상대적 쇠퇴를 겪는 모순에 처해 있다. 이는 냉전 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의 갈등을 낳는 불씨가 되고 있다.

한편, 냉전 때와 달리 오늘날은 경쟁하는 강국들이 경제적으로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냉전기에 미·소 간 교역은 없다시피 했지만, 지금 미국과 중국은 모두 상대의 손꼽히는 교역국이다. 미국-중국(-유럽-한·일 등)을 잇는 네트워크는 오늘날 세계 경제를 구성하는 핵심이 돼 있다.(관련 기사 본지 297호 ‘세계화는 끝났는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 분쟁이 줄어들리라는 관측이 한때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강국들이 지정학적으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갈등이 심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갈등은 미·중 사이뿐 아니라 미국-유럽연합, 중국-유럽연합 사이에도 불거지는 다면적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 경쟁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섰다는 중국이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수준에 이른 것도 아니다. 현재 중국의 국력은 냉전 후 비중이 줄어든 오늘날 미국보다는 물론이고, 냉전 때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던 구소련에 견줘도 부족한 처지다.

물론 경제력은 무시 못할 수준이다. 중국의 GDP는 세계 전체의 약 16.3퍼센트(2019년)를 차지해 미국의 3분의 2 정도인데, 1인당 실질 GDP는 그보다 낮아 미국의 30퍼센트를 조금 넘는다. 냉전 막바지인 1985년에 구소련 GDP가 세계 전체의 약 17퍼센트(추정치, 당시 미국은 30퍼센트 이상)를 차지하고 1인당 GDP가 미국의 약 33퍼센트 수준이었던 것과 비슷한 정도다.

이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가파른 성장 끝에 올라선 자리다. 그러나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은 2007~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 때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때와 사뭇 다르다. 당시 중국은 막대한 돈을 풀어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 결과 국가와 민간 부문이 모두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

한편, 군사력과 이로써 드러나는 영향력 투사라는 면에서 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냉전 당시 구소련은 미국과 대개 비슷하거나 때로 미국보다 많은(1985년 미국 대비 104퍼센트) 군비를 지출했고, 영토 밖 39개 나라에 210곳 넘는 군사 기지를 두고 있었다. 소련은 동유럽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99곳), 동남아시아(27곳), 카리브해(3곳)에도 군사력을 투사하며 미국과 전 지구적 수준에서 갈등했다.

반면 중국의 군비 지출은 (경제성장과 함께 빠르게 늘었지만)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고, 자국 영토 밖에 군사 기지를 둔 곳은 아프리카의 소국 지부티 하나뿐이다. 동맹국 확보라는 면에서 미국보다 명백한 열세다. 일각에서는 군사력 투사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해외 항만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우려하지만, 영국 해운컨설팅기업 드루리의 고위 연구원 닐 데이비슨의 지적처럼 이 투자는 “[중국] 인근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 [그나마도] 다른 이해 집단과의 경쟁 때문에 중국이 할 수 있는 여지에는 한계가 있다.” 예전의 구소련이 그랬듯 카리브해 지역 패권을 노린다거나 유럽 본토에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것은 중국의 (적어도 현재의) 과제가 아니다. 

계산

이에 대처하는 미국의 계산도 달라졌다.

냉전 때 미국의 계산은 비교적 간단했다. 군비 지출을 높게 유지해 경쟁 제국(소련)에 대한 전력적 우위를 지키고, 자신의 영역으로 소련 경제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유지한다. 이 경쟁을 계속하며 상대의 발밑을 무너뜨리고 자기 발밑을 지킨다.

지금 미국의 핵심 목표는 다수의 잠재적 경쟁국들을 억지 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두는 것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상당한 외교적(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패권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지위를 넘보지 못하게 하려 해 왔다. 그러나 냉전 때에 견줘 경제적으로 미국의 우위가 압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강국들은 미국의 전략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상황을 이용해 각자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모순 때문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빚어진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이 미국 패권에 굴복한 기존 처지를 감수하길 바란다.(이것이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의 핵심 목표였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축을 형성해 미국 패권을 위협하고 장차 미국과 어깨를 맞댈 만큼 강력해지지 못하도록 미리 성장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한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중국제조2025’)을 견제하려 하는 것도, 기술 수준 첨단화가 중국 국력(생산성과 군사력 모두) 확대의 중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글 서두에서 언급한 갤러거도 ‘신냉전’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미국의 “신기술 연구 개발 투자를 늘리고 사이버 영역에서 [대(對)중국] 억지력을 확립하기 위한 공세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세계 전체에 “과잉 확장”돼 있는 상황을 틈타 특히 남중국해·동중국해 등 자국 주변 지역에서 발판을 만들고자 한다. 중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 대외 수출, 에너지 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성장한 자국의 경제력을 이용해 (교역량을 늘리고 막대한 해외 직접 투자를 함으로써) 그런 일을 하고자 한다. 군비 투자도 여전히 미국보다는 적지만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그런 중국으로서는 기술 수준 첨단화, 동·남·서아시아에서의 안정적 교역로 확보는 자국 자본주의의 앞날(경쟁력)이 달린 문제다. 중국이 ‘중국제조2025’, ‘일대일로’ 등의 사업을 사활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다.(관련 기사 본지 323호 ‘화웨이 제재와 커지는 미·중 간 제국주의 갈등’)

미국의 진정한 어려움은 냉전 때만큼 고분고분하지 않는 서방 강국들을 단속하고, 끊이지 않는 중동 혼란과 구소련 영토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 기회를 엿보는 러시아에 대처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해야 하는 데에 있다. 미국 자신도 2007~2008년 미국발(!) 대불황에서 회복하지 못한 처지인데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대불황을 앞두고 있다는 관측이 팽배하다. 미국이 자국 주도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부담에 이전보다 곤혹스러워 하는 배경이다.(그런 맥락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응하는 비용을 한국·일본에게도 물리려 한다. 이 역시 냉전기에 막대한 군비 지출로 구소련에 대한 ‘우산’을 제공해 진영 내 패권을 유지하던 것과 달라진 점이다.)

이런 난망한 상황 때문에 미국 지배자들은 세계 패권 유지 전략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를 둘러싼 미국 지배계급 내 갈등 또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관련 기사 본지 196호 ‘트럼프 등장 이후의 동아시아와 한반도’). 그러나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더 나아가 미국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비용을 중국에 전가하고자 하는 데서는 의지가 대체로 일치해 있다.

부심하는 한국 지배자들

이런 판도 변화에 따라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도 복잡해졌다.

냉전기에 한국 자본주의는 서방 진영의 최전선으로서 미국이 제공하는 막대한 시장과 체제 안전 보장에 기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급격히 불안정해진 주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국익’에 더 부합할지를 두고 고심해야 했다. 중국·소련과 직접 수교를 포함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바로 이 상황에 대응하려는 시도였다.

더불어, 중국 경제가 고도 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최대 교역국이다(중국에게도 한국은 손꼽히는 무역국이다). 교역뿐 아니라 한국 자본들의 대(對)중국 직접 투자도 무시 못할 수준으로 늘었다. 미국과 서방 진영(일본 등)에 경제 성장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이전과 달리, 한국 자본주의의 득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도 상당히 중요해졌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 지배자들을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바로 이웃에서 경제·군사 대국이 성장해 전통적 우방(이자 강국)들인 미국·일본과 갈등을 키우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안녕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다. 이는 우파와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부들이 냉전 후에도 한미동맹을 ‘안보’의 근본으로 삼는 한편, 강국들의 각축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군비 증강을 강조한 배경이다.(이런 맥락 때문에 소위 ‘자주국방’은 한국이 미국 무기의 손꼽히는 수입국이 되는 방식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상황 변화와 한국 지배자들의 대응이 그들 뜻대로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우파와 민주당 모두 어쩌지 못하는 제국주의 갈등이 지배자들 모두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강력하게 개입했다. 미국은 북한 핵 위협을 터무니없이 과장해 자신의 위력을 계속 투사할 명분을 만들었고, 그로써 일본(과 한국)을 단속했다. 미국은 두 나라를 미국의 대(對)중국 전선에 계속 동참시킬 수 있었다.

한편, 한국 지배자들이 중국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중국도 강온 양면으로 압박했다. 압박을 조이는 미국을 서태평양 너머로 밀어내고 아시아에서 자국의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중국 지배계급의 의지가 그 배경에 있었다.

그래서 한국 지배자들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 냉전 때처럼 한·미(·일) 동맹만 중시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전까지 일방으로 경제적·군사적 우산(‘안보와 번영’)을 제공하던 미국이 이제는 부담을 일부 전가하려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영향력에 기대 성장하며 한국 자본주의가 쌓은 국제적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도 없다.

우파와 민주당 모두 이런 딜레마를 해소할 뚜렷한 대안이 없다. 미·중 갈등이 낳는 불안정이 한국 정치에도 투영돼 국내 공식 정치가 요동치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 자본주의의 이득을 위해 하는 모든 선택은 한반도를 제국주의 간 경쟁의 한복판으로 밀어넣을 뿐이다.(관련 기사 본지 326호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에 선택해야 하는가?’) 

일각의 기대와 달리 한국 지배자들이 ‘균형 외교’로 제국주의 질서에 평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와 연관 있다. 게다가, 레닌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역동적 성격 그 자체 때문에 항구적인 평화는 불가능하다.(관련 기사 본지 247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평화가 정착할 것인가?’)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 지배자들이 이런 부심에 빠져 있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도 신냉전 구도로 볼 수 없다는 증거임도 봐야 한다. 미국 주도의 서방 진영에서 형성되고 성장했고, 그 양극적 틀 외에는 다른 선택지 자체가 없었던 냉전과는 뚜렷이 다른 대목이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런 갈등에서 한국 지배자들의 편에 설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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