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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대자보 처벌 논란과 표현의 자유

〈조선일보〉는 6월 29일 ‘단독’으로 ‘신(新) 전대협’이라는 단체가 6월 28일(일)부터 전국 400여 개 대학에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는 대자보를 붙였다고 보도했다. 다른 주류 우파 매체들도 연이어 보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는지도 몰랐을 단체가 대자보 하나 붙인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주류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을까?

발단은 이 단체 회원 김모 씨가 지난해 11월 충남 천안시 단국대학교 캠퍼스에 문재인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였던 일이다. 이 때문에 김씨는 6월 23일 대전지법에서 건조물침입죄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벌금 100만 원으로 약식기소를 했다가 정식 재판으로 간 것이다. 이 재판 직후 〈중앙일보〉가 이를 정부 비판 논조로 보도하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이 사건이 애초 알려져 주목을 끈 것은 이렇듯 주류 우파 매체들 덕분이었다. 과연 그 주장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문제의 대자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 대중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로(“남조선 식민지 백성은 들으라”로 시작), 중국이 남한을 식민지화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의 꼭두각시(“충견”)라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재인의 집권으로 중국식 독재 정권이 수립돼 “이제 남은 것은 주한미군 철수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희화화 흑색선전은 날조를 이용한 비방으로 요즘 말로 “가짜뉴스”다. 우파가 양심도 없이 벌이는 흑색선전을 묵인하고 변호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옹호가 아니다

과거 독재 정권이 냉전 시대의 제국주의 진영논리에 바탕해 정권의 반대파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김대중과 민주당부터 민주주의 운동,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혁명적 좌파까지) 죄다 친북 간첩 이미지를 씌우고, 반공·친미·자유시장주의만이 애국적·민족적이라고 강변하던 것이 생각나는 주장이다. 태극기 집회 주최 측이 성조기를 내거는 것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듯이 말이다.(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리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꼴통’(우파) 취급 받아도 동정도 못 받을 주장이다. 주류 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저 찌질한 우파 청년의 자업자득 해프닝으로 묻혔을 일인 것이다.

그런데 주류 매체의 주목과 지원 덕분에 화제가 되고, 정의당이나 참여연대 같은 유명 진보 단체들마저 처벌이 과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하자 이들의 사기가 오른 듯하다. 〈조선일보〉가 29일 보도한 새 대자보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대자보를 탄압한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대자보 탄압이 없었다니? 반(反)정부 대자보를 붙였다가 벌금 50만 원만 내고 몸 성히 집에 갈 수 있는 경우가 없었다고 해야 진실일 것이다. 허위 날조 주장으로 50만 원 벌금받은 게 독재라는 거짓 선동이야말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의 감수성이라 할 만하다.

박종철 열사는 수배자인 대학 선배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경찰에 의해 아무 혐의도 없어 정식 체포도 구속도 아닌 상태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가 살해됐다. 대자보는커녕 자신들끼리 골방에서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 고문을 받고, 고문받은 사실조차 입밖에 쉽게 꺼낼 수 없었던 것이 박정희·전두환 시대이다.

이들이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차원에서 단체 이름부터 대자보 제목까지 패러디를 한다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표방하는 언어와 사상/실천 사이의 부조리를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다.

전두환도 “정의 사회 구현”을 정권의 기치로 걸고, 일당국가의 집권당 이름이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이었듯이 말이다. 이런 부조리는 권위주의 체제가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나온 아이러니였다.

책임성

이들은 표현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성도 없다. 대표부터 비실명으로 활동한다. 이런 단체를 공개 지원하는 배승희 등이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했거나 〈조선일보〉 등이 청년 우파로 띄우는 인물인 점 등을 보면 그들이 회원과 활동의 실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짐작된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비판 집회를 열었는데, 참가자의 상당수가 장년·노년층이었다.

기만과 날조도 불사하는 무책임이야말로 불신을 조장해 사회를 나쁜 방향으로 분열시키고 진실을 약화시킨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에서 우파가 하는 짓이 딱 그렇다. 게다가 이들이 옹호하는 집단과 가치는 무엇인가? 미국 제국주의(제국주의 경쟁의 한쪽 편), 독재, 재벌, 우파 언론, 핵 발전, 반공주의, 시장주의(경쟁) 따위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추하고 야비한 것들이다.

그들의 주장이 피억압 대중에게 해가 되는 이유이다. 이런 거짓 날조까지 ‘(나의 권리를 위해서도)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옹호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진실의 가치를 훼손하고 정작 필요한 사람들의 발언 기회를 뺏고 조롱하는 데에 이용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가?

표현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어떤 내용이건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행위주체가 행사해 얻어내는 실천적 자유의 문제로 보지 않고) 국가 기관의 강제와 법률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 형식으로만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개혁주의의 오해).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이야말로 모순적으로 특정 표현을 법률로 제약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가령 정의당은 5·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법 개정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노동자와 서민, 진보적 청년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왜 필요한가? 지배계급의 기만과 협박, 그리고 일상에서 통제받고 좌절을 습관화하는 경험을 극복하려면 피억압 대중 자신이 집단으로 행동하며 서로를 향해 생각을 (표현의 자유를 통해)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누구를 위한 누구(어떤 사회세력)의 자유인가가 중요하다. 또한 어떤 주장이 객관적으로 진실인지 등을 우선 따져봐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피억압자들이 진실을 알려고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경계선은 현실 투쟁의 여파에 따른 세력 균형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우파의 흑색선전을 표현의 자유라고 두둔하는 것은 우파가 대중의 역사(정치)의식 발전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협조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좌파가 나서서 국가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대체로 부적절할 테지만) 검찰이나 법원이 이들을 어떻게 다루든, 진보나 좌파가 이들에게도 “말할 자유”를 줘야 한다고 나서서 옹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우파와 중도파

신전대협 따위의 말장난이 그럴싸하게 들린다면 그것의 유일한 근거는 민주화 운동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의 위선과 독선이다. 그들은 여러 개혁 약속 배신과 조국·윤미향 논란에서 전형적인 내로남불 언행을 선보였다.

또한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도 정부 자신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공약을 누더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권의 주장이 청년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사례이다.(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이 논란을 정규직화 요구를 거부할 명분으로 쓰겠지만 말이다.)

요즘 청년들은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고 자기중심성과 경험주의가 강한 성향이 있어서, 우파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폭로 소재로 이용해 청년들 중에서 우파 경청자를 대거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또한 우파는 이 반사이익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중도파까지 싸잡아 좌파로 치부한다. 개인주의와 경쟁 따위의 시장주의적 가치를 “공정(경쟁)”으로 포장해 불평등에 화난 청년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진보·좌파가 우파에 반대한다고 중도파 정부와 민주당 기득권 ‘진영’의 위선을 감싸 줄 이유는 없다. 주류 양당 간 진영논리는 ‘진보/좌파’라는 제3의 선택을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런 점을 고려해 보면, 정의당의 신전대협 처벌 비판은 정의당이 진영논리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파의 형식적 권리를 변호하는 것은 진정한 진영논리 탈피가 아니다.)

지금 경제·코로나 위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지배계급은 우경화하고 좌우 양극화 압력은 커지고 있다. 국가의 권위주의적 측면이 강화되고, 중도파도 집권하면 우파처럼 행동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판단을 국가에게 맡기자는 것이 여러모로 위험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특히 진보적 청년들은 표현의 자유를 국가의 허용이나 처벌 여부에 의존하지 말고 대중 자신이 자력 해방을 위해 행사하는 자유(수단)로 봐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표현의 자유는 우파의 거짓 선동에 좌파와 대중 자신이 논쟁과 행동으로 맞서는 것으로 증진될 수 있다.(거짓이 진실처럼 통용되는데 도저히 다른 방법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을 때는,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광주 5·18 유족들의 사례처럼 불가피하게 재판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예외도 있다.)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분열시켜 대중의 정치의식을 타락시키는 반동적 주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반박해야 한다. 말할 자유가 비판에서 면제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경험이 적은 청년·학생들 사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근본에서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물음을 던지고 참을성 있는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기력한 상대주의보다는 진실의 편에 단호하게 서자고 호소하는 것이 장차 그들 사이에서 저항을 건설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논지를 더 명료하게 하도록 문장들을 조금 다듬었다.(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