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의 갈등이 재개된 분위기다.

지난해 여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은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검토로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으로 두 나라의 갈등은 소강 상태에 들어간 듯했다.

그러나 갈등을 촉발시킨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지난 5월 말 한국 법원은 강제동원 기업 자산 현금화 절차에 돌입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 내 한국 기업 자산 압류, 수출 규제 확대 등 맞대응을 예고했다.

6월 1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결정하며 제소 절차도 중지했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WTO 사무총장 선거 도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이는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희가 WTO 제소를 주도해 온 것과 관련 있다. 최근 아베 정부는 미국이 G7을 확대해 한국 등을 참여시키려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제국주의와 과거사 문제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자국의 위상과 개입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 평화헌법을 무시하고 군사대국화를 추진해 왔다. 일본은 지난해 《방위백서》에서 중국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장거리 순항미사일,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항공모함 등 공격형 무기 도입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국의 후원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일본이다.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공통의 이해관계 속에서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그것의 군사적 공격성이 증대됐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과거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즉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고자 하는데(심지어 일본 우익은 침략전쟁 과거사를 미화함) 과거 자신들의 전쟁 범죄 책임을 인정하는 건 곤란한 것이다. 한 번 인정하기 시작하면 과거 일본이 침략했던 여러 아시아 나라를 자극해 책임 묻기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고, 그 나라들을 중국 포위 전략에 끌어들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즉, 일본 지배자들은 이 지역에서 미국과 협력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자국의 위신과 영향력을 회복·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과거사를 부정·왜곡하는 것이다.

공격성 더해 가는 미·일 동맹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제대로 맞서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사진은 6월 22일 적진 침투·공격용 첨단 전투기 동원한 미·일 ‘코끼리 걸음’ 훈련 모습 ⓒ출처 미 공군

최근 일본 정부가 “G7의 틀이 유지돼야 한다”며 한국·호주·인도 등으로 참여국을 확대하는 것에 부정적 의견을 밝힌 것도 일본의 국제적 위상 지키기와 관련 있는 듯하다. 일본은 서방 강대국 클럽인 G7에서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다.

지난해 한·일 갈등도 이런 배경에서 불거졌다. 아베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게 과거사 문제에서 일정한 양보를 얻어내고자 한다. 수출 규제 같은 보호무역주의 수단을 이용해서 말이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안보 협력을 지체시키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며 사실상 일본을 두둔해 왔다.

이런 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려면 미국의 패권 전략과 그 중심인 미·일 동맹에 맞서야 함을 보여 준다.

최근 아베 정부의 역사 부정과 왜곡, 한국에 대한 강경 조처는 코로나 대응 실패와 부패 스캔들 등으로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 있는 듯하다. 이를 통해 우익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국민적 단결 기치가 노리는 효과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6월 29일 문재인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민·관 혼연일체” 운운하며 ‘국민적 단결’을 호소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도 민·관이 단결해 대응한 덕분에 수출 규제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미국 제국주의 반대와 결합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경험은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으로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한·일 갈등이 불거지자 처음에 문재인 정부는 언뜻 보기에 대일 강경 자세를 취했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는 한편 일본을 WTO에 제소하고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금세 한계를 드러냈다. 얼마 안 가 지소미아를 사실상 연장하며 꼬리를 내렸다.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으로 문재인 정부는 미·일 동맹의 파트너로서 한국이 기존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 줬다. 이것은 일각의 과장처럼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의 식민지 종속 상태여서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지배계급이 이 질서 안에서 나름의 이익을 얻고 대우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즉 상대적으로 부차적 서열이긴 하지만 그 질서에 기득권이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질서에 걸린 이해관계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에서도 타협을 모색해 왔다. 정부는 일본 전범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들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파장을 억제하려 해 왔다.

그래서 올해 초, 법원의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 절차를 돌입해야 하는 시점에 문재인 정부는 한·일 협의체 구성 제안을 지지했다. 이 제안은 협의체를 구성해 어느 정도 해결 방안이 마련되면 피해자들의 의사를 물어 자산 매각 조처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조차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 전에도 여권 내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법적 책임을 완전히 흐리는 타협안(문희상 안)이 제출됐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갈등 와중에도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지속했다. 가령, 인도양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는 지난해 가을에도 일본 해군과 합동으로 해상 선박 검색 훈련을 했다. 

최근 출간된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의 회고록을 보면, 지난해 4월 문재인은 ‘만약 북한과 싸우게 된다면 일본의 참전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트럼프의 질문에 일본 병력이 한국 땅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면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돼 싸울 것이라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도 일본과의 군사 협력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국민적 단결” 기치를 이용해 정부가 한 일은 무엇인가?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두고 “경제 침략” 운운했지만, 실제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수출 절차를 과거보다 좀더 까다롭게 하는 것이지 아예 중단시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아주 신속하게 대처했는데,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하고 이를 지원하려 수조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어디까지나 기업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제 분업 구조 일부를 재편하는 과정에 따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핑계로 노동시간 개악, 안전 규제 완화 등 노동자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최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자립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청 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태년은 ‘소부장 시즌2 전략’을 두고 “첨단산업 중심의 강력한 혁신산업 제조클러스터 조성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한국형 뉴딜’의 주춧돌을 놓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한·일 갈등과 코로나19·경제 위기가 중첩된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또다시 규제 완화 등 개악을 추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지난해 경험은 일본에 맞서는 데서 문재인 정부를 결코 믿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문재인은 남북 관계 악화와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말미암은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지난해만큼 효과를 내지 못할지라도) 한·일 갈등 프레임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려면 미국과 일본 모두에 맞서야 하고 여기에 협조해 온 한국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는 정부가 한·일 갈등을 빌미삼아 새로운 노동 개악을 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일 갈등, 이를 빌미로 한 포퓰리즘 활용, 노동자 공격 등이 모두 유례없는 경제 침체와 국제 질서의 불안정(안보 위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런 정치적 독립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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