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양대노총 위원장은 이를 추인받고자 각각 6월 29~30일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를 열었다. 예상대로 한국노총 중집은 이 합의안을 원안대로 수용했다. 반면 민주노총 중집은 논란 끝에 승인하지 않았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합의 내용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집행부는 “미흡하고 아쉽다”(김동명 위원장)면서도 합의안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 역대 정권마다 배신적인 노·사·정 합의를 하는 데 이골이 난 우파적 노조 관료(집합명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줬다.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명분으로 정부와 사용자 측이 요구한 각종 개악에 합의해 준 바 있다(2015년 9·15 노사정 합의).

전과 달리 이번에는,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덕분에 한국노총 집행부는 노·사·정 타협을 대내외에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었다. 자신의 양보가 노골적인 계급 협조가 아니라 취약계층을 위한 연대라고 말이다. 2015년 9·15 노사정 합의처럼 민주노총이 반대하고 대화 테이블 바깥에서 투쟁할 때는 그런 포장이 먹히지 않았다.

ⓒ출처 민주노총

노동자 조건 개선 외면한 잠정 합의안 

사회적 대화 제의와 선제적 양보안을 이견 없이 결정했던(각각 4월 16일과 6월 18일) 민주노총 중집은 최종 합의안 단계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상당수 중집 성원들은 합의 내용의 불충분함과 위험성을 이유로 합의안 수용을 거부했다. 

하지만 김명환 위원장은 중집의 뜻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번 사회적 대화 최종안[이] 의미있다”며 맞서고 있다. “물론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처음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취지에 맞게 주요한 내용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그것을 살려가야 된다.” 오히려 “그것을 딛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 판단이고 소신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주장과 달리, 해고 금지와 생계소득보장, 전국민고용보험제, 상병수당은 잠정 합의안에 명문화되지 않았다. 이 요구들은 위기 시기 해고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겠다며 민주노총이 핵심 의제로 제시한 것들이다. 그러나 ‘노력’한다거나 ‘논의’해 나간다는 두루뭉술한 표현 외에는 구체적 약속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사용자를 위한 구체적 약속은 눈에 띈다. 첫째, 기업을 위한 “재정·금융상의 전폭적인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를 위해서는 “[경영계가]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발휘하여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고만 돼 있다. 정부와 공공부문 고용에 관한 항목도 대동소이하다. 

둘째,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의 생계소득을 보장하랬더니, 오히려 사용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휴업수당 삭감의 길을 열어 줬다. 기업이 휴업수당 감액 승인을 신청하면 정부가 신속히 심사하도록 노동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셋째, 전국민고용보험제에 대해서는 금년 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수립한다고만 돼 있다. 누구의 돈으로 어떻게 사각지대를 해소할지 아무 약속도 없다. 게다가 고용보험 확대 입법 추진 과정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의견을 수렴한다고 명시한 것도 문제다. 그동안 사용자 측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특성을 거론하며 “(고용보험 적용이 아니라) 다른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넷째, 상병수당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재정 여건 등을 종합해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고만 돼 있다. 재난 시기의 시급한 요구인 ‘상병수당’ 도입은 사실상 요원하게 미뤄진 셈이다. 상병수당은 업무 외 부상이나 질병으로 일하지 못해 발생한 소득 손실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상징조작에 말려들지 말자 

이처럼 민주노총의 요구는 모호한 문구로 처리되거나 무시된 반면, 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자 측의 협조는 잠정 합의안 전반에 걸쳐 매우 강조돼 있다. 

“국난에 준하는 위기를 맞아 기업의 힘만으로는 고용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므로 노사정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 “노동계는 …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 “산업현장에서 노사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원만한 교섭 타결에 최대한 노력[한다.]” 

사실, 노사정 합의의 세부 항목들보다, 그것이 정치적 상징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정부 측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계급 협조라는) 상징 말이다. 사용자들과 정부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의 합의를 이용해 노사 협조주의를 작업 현장 차원까지 뿌리 내리게 하려 한다. 정부가 ‘견해 차이 큰 것은 다 빼자’면서도 합의문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연대”라는 말을 점점 공공연히 쓰고 있는 것도 그런 분위기 조성에 일조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합의는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기는커녕 사용자 측에 협조해 노동자들이 양보할 것을 압박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효과를 낼 공산이 크다. 그럴 때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기 쉽다. 

그런데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사정 잠정 합의가 “의미있다”거나 “취지에 맞[다]”며 “그것을 살려가야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 합의안에 반대하거나 협상에서 이탈하면 어렵게 살려 낸 대화 모멘텀을 잃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대화(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그런 사회적 대화가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는 장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설사 민주노총이 제안한 대화일지라도 말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먼저 제안한 대화이므로 판을 깰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일단 시작한 잘못은 잘못임이 드러나도 계속해야 한다는 말밖에 안 된다. 

김명환 위원장은 대화에 기댈 수밖에 없는 불리한 계급 세력관계가 아닌데도 ‘기승전-대화’로 일관하며 투쟁할 시간을 허비했다. 민주노총 집행부도 문재인 정부와 대화하면 개혁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특히 총선 이후 키워 왔다. 잠정 합의안의 형편없는 내용을 거부하는 것뿐 아니라, 대화에 기대를 걸어 온 기존 방침에 대한 180도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난감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해답이다

현재 민주노총 중집 성원들 상당수는 노사정 잠정 합의안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잠정 합의안 일부 항목을 고치자는 것인지, 폐기하자는 것인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남아 협상을 이어가자는 것인지, 나와서 싸우자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애초 중집 성원들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제의와 양보안을 모두 지지한 데다, 노사정 합의 이후 산별·지역별로 이어질 대화에 이해관계가 있다(참가 주체로서)는 점도 이런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모호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를 단호하게 밀어붙이려는 김명환 위원장 측에 유리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쉽다. 

노사정 잠정 합의안을 거부하고 정부와 사용자 측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사정 잠정 합의안은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노사정 연대와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계급의 양보를 요구할 뿐이다. 지금 같은 심각한 경제 침체기에 노사정 대화로는 노동자 조건을 절대 지킬 수 없다. 장관들과 부쩍 자주 만나게 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위상을 높여 줄지는 몰라도 말이다. 

최근 경찰의 흑인 살해에 항의하는 미국의 대규모 시위는 대중 투쟁을 통해 그 전 수십 년 동안 점잖은 교섭이나 선거에 의존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경제 대침체 상황에서 노동자 조건을 지키려면 우리도 이렇게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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