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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은 적절한 요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이재용 편을 드는 재벌들과 다수 기성 정치인들, 국가 관료들을 보면서 분노와 환멸을 느낄 것이다.

이재용은 권력을 이용해 불법으로 사익을 취하고 그룹 승계를 추진했는데도 처벌을 피하고 있다. 이는 계급 불평등 문제다. 이재용은 처벌받아야 할 뿐 아니라, 삼성이 노동자들을 착취해 쌓은 막대한 부를 회수해 노동계급의 고용과 처우 개선을 위해 사용해야 마땅하다.

이 때문에 재벌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민주노총도 6월 24일 ‘먹고 살자 최저임금! 재벌개혁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최저임금 1만 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전태일 3법 제·개정 등과 함께 ‘재벌의 곳간(사내유보금)을 열어 노동자 민중을 살려라’를 주요 요구로 내놓았다.

물론 매년 수십조 원씩 쌓고 있는 사내유보금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고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정당하다.

대자본을 소자본으로 쪼갠다고 더 진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독점 국민(민중) 연대·연합은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약화시킨다. 6월 24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출처 〈노동과세계〉

그러나 재벌개혁론은 재벌의 소유 구조를 주로 문제 삼는데, ‘문어발’처럼 사업을 확장하는 재벌을 가능한 낱개의 기업으로 떼어 놓자는 것이다. 그룹 경영이 아니라 개별 회사의 주주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6월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재용의 불법 행위가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더욱 심화시킨 사건”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재벌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적은 지분을 갖고도 그룹 전반의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사익을 추구하여 회사 및 주주, 노동자 등 각종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마르크스도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기업의 경영자가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며 사익을 편취하는 일은 흔히 벌어진다. 그러나 참여연대처럼 주주와 노동자를 한데 묶는 것은 노동자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재벌 체제보다 주주 중심 체제가 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재벌개혁론자들은 민영화된 KT를 모범적인 지배 구조라며 추켜세웠다. 그러나 KT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동자 수만 명을 해고했고,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실적 압박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그래서 재벌 개혁은 수만 명의 금융 자산가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대다수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재벌 개혁은 공상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축적을 위한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자본의 집중과 집적”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소수의 기업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은 자본 축적의 법칙이다.

실제로 재벌 개혁이 경제적 집중도를 완화시킨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는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 개혁에 훨씬 못 미치는 겉치레 재벌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나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강화됐다. 일본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재벌을 해체했지만 곧 또다시 대기업집단이 등장했다.

그래서 재벌 개혁 시도는 자본의 집중을 해소하는 것보다 비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흔히 기운다. 그래서 재벌개혁론자들은 노동자들이 비(非)재벌 자본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끌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의 이해관계도 노동자의 이익과 충돌한다. 중소기업들은 재벌 계열 대기업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재벌과 함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착취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재벌뿐 아니라 자본 자체에, 자본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계급 간 협력

당장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있는 해고 금지, 전국민고용보험, 최저임금 1만 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전태일 3법 제·개정 등을 달성하려면 재벌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싸워야만 한다. 이윤 우선 논리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면서 중소기업 노동자들한테 자신의 기업주에 맞서 싸우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점에서 재벌 개혁 운동은 노동계급이 단결해서 계급적으로 일관되게 싸우기 어렵게 만드는 논리를 담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재벌뿐 아니라 중소기업들과도 협력해 기업 살리기에 수백조 원을 투입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는 해고, 임금 삭감 등 노동조건 후퇴를 압박하고 있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이윤을 지켜주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요구대로 재벌의 곳간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마지못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만들려면, 체제 자체의 보존을 위협하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노동자 대중 투쟁이 벌어져야 한다. 역사상 경제 대침체기의 개혁은 혁명적 또는 혁명에 조금 못 미치는 거대한 노동자 투쟁으로써만 획득될 수 있었다.

이런 때에 재벌 개혁을 내세워, 이윤 체제 자체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고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특히, 파업)을 사용하는 데 소극적이어서는 재벌들로부터 미미한 양보 얻기도 어렵게 만든다.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민중적)으로 단결해 재벌에 맞서자는 생각은 형식적으로 보면 연대를 확대해 힘을 강화하는 방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잠재적인 비재벌 동맹자들을 이반시키지 않고자 노동자들이 일정 수위 이하로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재벌로부터 양보도 제대로 얻어 낼 수 없게 만든다.

자본주의 반대

재벌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재벌과 그 하청기업에 고용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갖고 있다. 이것이 실천에서 뜻하는 바는 정규/비정규, 내국인/외국인, 여성/남성 노동자들이 연대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재벌의 이윤에 타격을 주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투쟁은 비재벌 기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우 개선과 투쟁에 나서는 데에도 고무와 영감을 줄 것이다.

결국 이재용 등 부패한 재벌 총수들을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거대한 운동이 필요하다. 박근혜 퇴진 운동 속에서 이재용 구속이 이뤄졌다는 점도 이를 보여 준다. 당시 1차 영장이 기각되자 그다음 촛불집회 참가 규모가 갑절로 늘어났다. 그러나 지금 그런 성과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보여 주고 있듯이, 재벌과 친구인 문재인 정부를 개혁 동반자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독점 국민(민중) 연대·연합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한계 안에 머물려고 하는 개혁주의적 운동일 뿐이다. 실질적인 개혁을 얻어 내려면 혁명에 조금 못 미치는 거대한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운동이 상당한 개혁을 성취한다면 그때는 상황이 질적으로 도약하고 있을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