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당원 지수 씨와 선지현 씨에게 답한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계급 환원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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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계급 환원론이므로 여성해방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흔하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일부 좌파도 그런 견해를 받아들인다.
최근
이 주장을 다루기 전에 먼저 환원론이 무엇인지부터 짚어 보자. 환원론은 복잡한 견해를 그 구성 요소로 단순화하면 완전히 알 수 있다는 인식 방법이다.
만약 차별 문제를 착취 면에서만 이해하려 하고 소외와 가족, 재생산, 국가, 이데올로기, 의식 등의 범주들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계급 환원론이라 할 수 있다. 지수에겐 미안하게도 우리는 이런 범주들을 필수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는 차별 문제를 계급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
우리의 방법은 환원이 아니라, 현상과 실재의 관계 문제와 관련있다. 즉,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차별 현상들의 근저에 노동, 착취, 생산,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이 실재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 차별 현상들의 형태와 성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영향 받는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고, 위에서 언급한 이론적 범주들을 매개로 이뤄지는 중첩적인 것이다. 이런 방법이 환원론으로 비난받을 여지는 없다. 차라리 비판적 실재론의 일종일지언정 말이다.
흔히 그러듯 옛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로 오해한다면, 그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에는
그러나 소련 등 옛 동구권의 체제와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완전히 다르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 체제와 사상은 러시아 혁명의 쇠퇴 속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소련 관료들의 이데올로기로 시작해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전통을 완전히 왜곡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을 계급 착취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와 체트킨·콜론타이 등은 모두 노동계급 여성뿐 아니라 중간계급과 지배계급 여성도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차별을 착취와 명확히 구별했다. 그러나 둘을 분리시키지는 않았다.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면 변증법이 아니라 이분법적이 되거나 절충주의가 된다.
고전적·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을 혁명 이후로 미루기는커녕 여성해방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을 분리시킬 수 없는 하나로 여겼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 이전부터 여성 차별과 민족 차별에 맞서 싸우는 전통을 확립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당대의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그들은 여성 투표권 쟁취에 집중했던 당시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투표권, 동일임금, 여성의 교육권 등 노동계급 여성을 위한 더 폭넓은 쟁점들을 제기했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여성해방과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도록 이끌었다. 그 정점이 노동계급이 평의회를 설립해 권력을 장악한 러시아 혁명이었다. 혁명 직후, 여성해방을 위해 다른 어떤 곳에서도 시도해 본 적 없는 급진적 조처들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변혁당원 지수는 마르크스주의가 자유주의 페미니즘보다 우월했고 러시아 혁명이 초기에 여성해방을 위해 적극적인 조처를 시행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이 결국 여성해방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다며 이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 환원론으로 빠졌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을 이끈 세력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인 레닌과 트로츠키가 지도한 볼셰비키였고, 혁명 초기의 성과는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다. 그들은 혁명 이전부터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해 온 전통을 갖고 있었고, 혁명 뒤에는 여성해방을 위한 노력을 각별히 강화하고자 제노텔
초대 의장인 이네싸 아르망이 사망한 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제노텔 활동을 이끌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콜론타이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며 그의 ‘페미니즘’ 때문에 당 지도부를 비롯한 남성 당원들이 그의 활동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콜론타이 대 남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구도는 역사적 진실에 기초를 둔 게 아니라, 혁명적 조직을 불신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편견
또, 제노텔 설립 제안을 적극 지지한 것은 바로 레닌이었고, 제노텔 활동은 레닌과 트로츠키 등 볼셰비키 당 핵심 지도부의 지지에 의해 이뤄졌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 후 노동자 국가가 이룬 성과를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여성 지위와 비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동시에 그는 여전히 여성이 “가정의 노예”라며 여성해방을 위한 실질적인 조처가 시행돼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볼셰비키는 혁명 과정에 여성 대중의 참여를 독려하고 양육과 가사의 사회화 등을 추진하며 여성해방을 실질화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보면, 러시아 혁명이 결국 여성해방을 온전히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이유를 마르크스주의 사상에서 찾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보다 러시아 혁명이 어떤 쇠퇴를 겪어야 했는지를 유물론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지수의 글은 1920년대 러시아 상황에 대한 유물론적인 분석이 없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이 초기의 성과를 넘어 여성해방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일소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치 못했다”고만 주장할 뿐이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 혁명이 1920년대에 서구 혁명의 패배와 국내의 내전으로 엄청난 경제적·정치적 난관에 봉착했음을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주의적인 평가다. 지수의 글에서는 또한 제국주의 열강이 러시아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개입했다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이 승리한 다음해부터 시작된 내전과 14개국의 개입 때문에, 갓 태어난 노동자 국가는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특히, 경제와 산업이 붕괴돼 엄청난 사회적·정치적 위기가 초래됐고, 유일한 구원자인 유럽 혁명, 특히 독일 혁명의 패배
내전을 치르면서 선진 노동자의 대다수가 사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온갖 좌절과 위기로 사기가 크게 저하됐다. 스탈린이 지도하는 관료의 부상과 공산당·국가의 관료화는 이런 맥락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이 와중에 득세한 관료층은 혁명과 국제주의의 이상을 포기하며 그 나름의 독자적 이해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들의 수장 스탈린은 레닌 사후에 트로츠키가 이끈 당내의 좌파적 반대자들과 벌여 온 투쟁에서 승리하고 1920년대 말 강제적 집단농장화와 억압적 공업화를 추진하며 관료적 지령경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낙태 불법화, 동성애 처벌 부활, 소수민족 억압, 엄청난 노동조건 악화 등은 이런 과정 속에서 일어났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개념에 대한 오해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읽어 보면,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개념은 베버 등 사회학의 계급 개념처럼 사회에서 개인들의 서열적 지위를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라, 바로 사회의 생산 과정 속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이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의 원인을 남성의 본성이나 심리로 돌리는 페미니즘의 흔한 접근법과 달리, 여성 차별을 자본주의 체제 내에 위치 지으며 착취와 차별의 구조적 연관을 밝힌다.
성, 성적 지향, 인종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은 계급을 초월해 일어나지만, 자본주의 착취 관계와 무관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여성 차별을 구조화하는 핵심 제도인 가족제도는 자본주의 생산에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제도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노동력 재생산이 개별 가정에 맡겨져 이뤄지는 것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 생산을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차별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런 구조와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 지배계급은 차별받는 계급
계급이 사회의 핵심 분단선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사회관은 차별받는 집단 내에서도 차별 해결을 위해 취하는 방법과 태도가 같지 않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여성이 계급을 초월해 차별받지만 계급의 차이 때문에 차별의 정도와 경험이 동일하지 않고, 차별에 맞서는 데서도 이해관계와 저항 방식이 같지 않다.
지배계급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차별에 반대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특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저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중간계급 여성은 사회의 상층부로 진입하려 하고, 지배계급 여성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평등을 추구한다. 자본가나 그들의 정치인, 국가관료인 여성들은 같은 계급의 남성들처럼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착취와 차별에서 이득을 얻는다.
여성 차별이 자본주의 체제에 그 동인을 두고 있기에 이윤 생산
“혁명의 현실성”
계급투쟁이 고양되면 임금 등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뿐 아니라 차별에 맞선 투쟁도 활발해진다. 영국에서 낙태 합법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이 언제나 높은 수준으로 일어나지는 않고, 투쟁의 수준이나 투쟁에 참가하는 노동계급 의식은 불균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잠재력과 현재 상태에는 대개 간극이 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점을 늘 인식해 왔다.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저항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차별과 이간질을 통해 노동계급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주요 수단의 하나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차별에 맞서 적극 투쟁해야 하는 이유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대중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그는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이 몰입하는 협소한 쟁점들에만 시야를 가둔 채 정치적으로는 대세를 추수하는 경향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그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전 계급적으로 확대하고 혁명에 대비하는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고자 애썼다. 여러 해 동안 혁명적 조직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며 당원들을 훈련시킨 덕분에 레닌의 볼셰비키는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면서 노동계급이 겪는 착취와 차별 모두에 맞서 노동계급이 단결된 투쟁을 벌일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성별 관계를 대립적으로 여긴다면, 차별에 맞서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계급해방이 된다고 해서 여성해방이 자동으로 되지는 않는다”며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가부장제가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지수도 같은 주장을 편다.
“계급해방이 먼저”라며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을 비판하려는 취지는 옳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입장이 아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런 주장이야말로 계급해방과 여성해방이 선후로 나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해방 없이 노동계급의 해방은 아예 가능하지 않다.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국적 등에 따른 차별은 노동계급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는 것을 저해한다.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는 차별과 떨어져 일어나지 않고, 노동계급의 해방은 다양한 차별에 맞선 투쟁을 통해 분열을 극복하는 과정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옛 소련 사회의 성격
계급해방이 된다고 해서 여성해방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에는 옛 소련 사회를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오해하는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계급이 없어졌지만 여성은 해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수의 글도 “자본주의 폐절 이후에도 소비에트는 왜 여성해방을 실현하지 못했나”라는 물음을 던지며 옛 소련에서 계급이 사라졌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옛 소련은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가 결코 아니었다.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와 공산당 관료들의 미사여구와는 달리 소련에서 계급이나 계급 적대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사유재산은 없었지만 당·국가 관료는 노동자와 농민이 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렸다. 노동자와 농민 대중이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으로 시달릴 때, 관료들은 자신들만이 출입하는 특별상점에서 물품을 공급받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소련의 소득 불평등은 서구와 비슷했다. 최상층 10퍼센트 가구가 차지한 소득
스탈린이 당 내의 좌파적 반대자들을 제압하고 승리한 1920년대 말 이후 소련에서는 파업이 금지되고 파업 주도자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노동계급이 생산과 사회를 통제하기는커녕 노동조합 권리들조차 보장받지 못한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보면, 옛 동구권의 사회 체제가 서구 시장 자본주의와 똑같이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한다는 점이 가려진다.
옛 소련의 관료들은 1920년대 말 이후 지배계급
국가자본주의론은 ‘사회주의’로 잘못 알려진 나라들의 본질과 그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 차별이 광범하고 체계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옛 소련 사회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사회주의 사회가 돼도 여성의 처지는 바뀌지 않는다는 비관적 결론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
1970년대에 서구에서 부상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소련 등 당시 동구권 사회를 사회주의로 봤기에, 마르크스주의를 배격하며 인류 역사 전체를 남성 대 여성의 대립으로 설명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가부장제 이론을 수용했다.
가부장제 이론은 남성을 여성 차별의 원인으로 꼽으며 여성 차별을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한 보편적 특징으로 취급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이론을 수용하면서 계급 착취와 여성 차별을 별개로 취급한다. 따라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급투쟁과 분리된다.
가부장제 이론과 사회주의 사상의 결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당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착취는 자본주의의 산물, 여성 차별은
지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돼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지수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초역사적 가부장제 개념과 거리를 두면서 ‘역사적 가부장제’ 개념을 사용한다. “역사 속에서 가부장제는 지배적인 생산양식에 조응해 여성억압을 강화해 왔다”며 가부장제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를 거치며 사회경제 구조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초역사적 가부장제 개념과 급진적 페미니즘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역사적 가부장제’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 ‘가부장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이 개념이 “현존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를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지수의 글에서도 가부장제는 특정 형태의 가족제도로 한정해 쓰이지 않고 사회구조의 성격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개념
지수는 가부장제가 단지 이데올로기만은 아니고 사회구조라고 한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형성하는지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의 핵심 분단선이 계급에 있음을 부정하는 가부장제 개념을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생산양식 개념과 결합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된다. 이런 접근법은 생산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을 중심에 놓고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서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 내에 여러 사회구조들이 나란히 존재한다고 보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사회관과 유사하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유기적 결합” 또는 “융합”을 얘기해도 그 결합은 병렬적 서술에 그치거나, 가부장제가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지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을 이렇게 표현한다. “여성의 부불노동
물론 가정 내에서 여성이 무보수로 수행하는 양육과 가사는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에 매우 중요하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저임금은 가족 내 여성의 역할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가족 내 여성의 무보수 가사노동과 가족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유지에 중요하다고 해서, 가족제도가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는 동력인 것은 아니다. 가족제도를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보면, 자본주의가 이전 계급사회와 구별되는 엄청난 역동성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임금노동의 착취와 자본 축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고,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 자기 임금 몫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다. 이 잉여 가치가 이윤의 원천이다.
여성의 부불
1970년대에 하이디 하트만 등 많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가들과 남성 노동자들이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며 여성을 집안에 묶어두려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고용은 호황기의 일시적 현상일 뿐이고, 경기가 후퇴하면 여성은 다시 집안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여성 고용이 축소되는 경우가 있어도 일시적이었고, 장기적으로는 증가해 왔다. 임금노동에 참가하는 여성의 규모는 증가했을 뿐 아니라, 여성이 생애에서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기간도 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은 이전 계급사회와 달리 가족 단위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제도를 이전 계급사회의 가족제도와 똑같이 ‘가부장제’라고 부르는 것은 변화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노동계급 가족은 지배계급의 가족과 별로 공통점이 없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 이전 피차별 계급들의 가족
가족제도가 자본주의 생산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자본주의 생산의 변화에 따라 가족도 변화해 왔다. 자본주의 생산에 필요한 일들 때문에 여성 다수가 임금노동자가 됐고, 여성의 임금노동 참가가 증대하면서 출산율 하락, 가족 규모 축소, 독신과 이혼·혼외출산 증가 등 성 관념도 크게 바뀌었다. 노동력 재생산 제도로서 가족의 핵심 기능은 유지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족은 고정불변이 아니고 안정적이지도 않다.
사실,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성별 권력관계
생산의 동학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않으면 착취는 계급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덕적 비판의 용어가 되기 쉽다.
그러나 도덕가들의 비난을 받지 않고도 잉여 가치를 합법적으로 수취하는 착취와, 법률은 물론 도덕가들의 비난을 받을 만한 혹사 행위를 구별하지 않는 용어법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마르크스주의의 착취 개념은 매우 열악한 비인간적 작업 환경에서 저임금을 주며 일 시키는 것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착취 개념은 지위와 보수가 밑바닥인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에서 겪는 고통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착취는 자본가들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사실상 노동계급에 의존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 여성해방에 주는 함의는 여성이 단지 사회의 피해자인 것만이 아니라, 남성과 함께 힘을 합해 착취와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고 더 나아가 기존 질서를 전복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벌이는 투쟁과 조직화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목하며 투쟁을 발전시키려 노력해 온 이유다.
가족제도를 통한 노동력 재생산과 상품생산을 구별하지 않고 가사노동이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무급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가치 인정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선지현은 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말하면서도 그렇게 주장한다. 이런 모호한 주장은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다는 점을 흐리고, 가사노동의 사회화 주장도 약화시킨다.
자본주의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을 가부장제의 작동으로 설명하는 주장은 노동계급 남성을 적으로 돌리기 쉽다. 하이디 하트만은 여성을 가정 내에 묶어두려는 남성 노동자와 자본가들의 “공모”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제가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겉보기에는 유물론적인 설명처럼 보였던 하트만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이론이 결국 급진 페미니즘처럼 남성의 음모로 가부장제의 존속을 설명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자본가들과 남성 노동자들의 갈등과 대립을 간단히 무시하며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취급한다. 그리하여 가부장제 이론을 수용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암묵적으로 남성 노동자를 적으로 돌리며 흔히 급진적 페미니즘의 분열주의를 노동자 운동 내로 들여오는 구실을 했다. 혁명적 좌파를 성차별주의자로 매도하는 일도 적잖이 일어났다.
그간
그러나 노동계급 여성들의 조건을 개선하고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거하려면, 급진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사상을 절충해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을 계급투쟁과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지위 개선을 꾀하는 중간계급적 페미니스트들은 계급투쟁을 당연히 싫어하지만, 노동계급 여성의 해방은 계급투쟁과 무관하게 일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지속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착취와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것도 가로막는 가부장제 이론을 받아들이기보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그 혁명적 사회주의 실천의 역사적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