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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용보험법 개정안 입법예고 :
전 국민은커녕 상당수 특고 노동자 배제, 사업주 책임은 축소

7월 8일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이하 특고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 일부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정부 입법안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최종안’(이하 잠정 합의안)의 첫 적용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정부 입법[을] 추진”하되 추진 과정에서 특고 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하며 노사 및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즉, 특고 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하고 사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대상이 대폭 축소될 공산이 큰 안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적잖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부가 입법예고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이런 비판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 준다. 정부 입법안에는 그동안 특고 노동자들이 반발해 온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특고 고용보험 가입과 적용에 여러 제약 요소를 둠으로써 특고 노동자 상당 수를 제외시키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2018년에 노·사·정과 전문가가 논의해 도출한 사회적 합의안인 고용보험위원회 의결 내용과도 크게 상충한다.

이번 정부 입법안은 우선,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을 사업주와 “노무제공 계약”을 체결한 사람으로 대상을 제약하고 있다.

특고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아무런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사용자들이 계약을 회피하는 일이 다반사라 노동자들이 이를 요구할 경우 계약해지 등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행 산재보험법이 적용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중에서도 약 40%가 사업주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그러나 노무제공 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아도 사용자 책임은 명백히 존재한다. 예컨대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타다 기사들이 플랫폼업체(쏘카)와 계약을 맺지 않았어도 노동 과정과 조건 등에서 실질적 통제를 받았으므로 실제 사용자라고 판결했다.

더구나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사람”을 대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계약 여부와 상관 없이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보험 가입 자격을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6월 초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이를 뒤집고, ‘노무제공 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가 민주당 개정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했는데, 이번 정부 개정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선별적·차별적 적용

적용 대상을 축소하는 규정은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가입 대상을 일부 직종으로 한정했다.

정부 입법안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 직종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전체 특고 노동자 중 100만 명 정도를 포괄하는 14개 직종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 규모는 전체 220만 명으로 추정되는 특고 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특고 노동자에게 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부여하고 일부 직종에만 고용보험을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실제 적용 대상은 특고 전체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 될 판이다.

14개 직종 가운데서도 전속성 여부를 잣대로 삼아 적용 대상을 더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번에 정부가 선별한 14개 직종은 특고 노동자 중 전속성(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주에 의존하는 경우)이 높은 직종을 가리키는데, 그 직종 안에서도 또 솎아 내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누누히 ‘전속성을 중심으로 고용보험 우선 적용’ 방침을 밝혀 왔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그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 특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한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2020년 6월 현재 적용된 9개 직종 중에서 산재보험 실제 적용률은 14퍼센트에 불과(특수고용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 10문 10답, 민주노총연구원)한 데는 전속성 잣대가 크게 작용했다.

이런 일이 고용보험 적용에서도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김명환 위원장 측은 이번 노사정 잠정 합의안을 평가하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속성과 상관 없이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기대를 내비쳤는데, 정부는 이번 입법안을 내놓으면서도 전속성 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인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사용자 책임 완화

이처럼 정부 입법안은 특고 전체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안이다.

입법안에는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더 까다롭게 적용해 다른 노동자들과 차별하는 내용도 있다. 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하는 기간이 다른 노동자들은 (18개월 중) 6개월 이상인 반면 특고 노동자들은 이직 전 (24개월 동안) 12개월 이상 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수급 요건을 갖출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가 고용보험법 특례 조항을 신설해 시행하려는 것은 이런 제한적, 차별적 적용을 정당화하는 취지인 것이다.

결국 특고 노동자에 대한 선별적, 차별적 고용보험 적용 방안은 사용자 책임을 대폭 완화해 주기 위한 것이다. 앞서 지적한 노무제공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는 고용보험 가입을 회피할 법률적 근거가 생기게 된다.

또, 고용보험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절반씩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이번 정부 안은 플랫폼 사업주에게는 보험료 납무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대리운전의 경우, 노동자들이 콜을 받는데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수수료를 받고 제공하는 플랫폼 업체 사용자들은 보험료 부담 의무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수수료 가격과 노동 조건을 좌지우지하는데도 말이다.

정부는 지난 5월 특고 사용자들의 부담 증가를 걱정해 지금보다는 적용범위가 넓은 개정안을 폐기해 버렸고, 지금도 그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 중 하나인 특고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노조법 개정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이번 개정안 역시 정부가 노동자보다 사용자들의 이익 보호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해 노사정 잠정합의를 적극 추진하는 측이 이번 정부 개정안에 기대를 드러내며 성과인양 포장해 주는 것은 잘못이다.

이번 정부 개정안은 6월에 발의된 민주당의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거의 유사한데, 당시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는 “코로나19에 고통 받은 특수고용노동자를 외면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제출을 규탄”했다. 그런 점에서 봐도 김명환 위원장 측의 태도는 지극히 모순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입법예고인 단계에서 후퇴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가 조직되지 않으면 사용자 측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정부의 최종안이 더 후퇴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특고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전면 적용, 더 나아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서는 기만적이고 노동자 희생을 정당화하는 노사정 합의안을 수용할 게 아니라, 정부와 사용자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