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7월 14일에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그린뉴딜 추진 계획을 밝힌 이후 이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글은 7월 20일에 노동자연대가 개최한 온라인 토론 ‘문재인 정부와 개혁주의 진영의 그린뉴딜’의 발표문을 일부 보완한 것인데,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이 그사이에 추가되거나 바뀌지 않아서 여전히 유효하다.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심각한 경제 불황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 연구소들과 기관들은 세계적 불황이 하반기에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동시에, 심각한 기후 위기도 벌어지고 있다. 사실 코로나19도 무분별하게 자연을 침범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확장하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6월에 시베리아의 최고 기온은 무려 38도에 달했다. 시베리아의 예년 6월 평균 최고 기온보다 18도나 높았다. 이상 고온으로 인해 시베리아의 산불도 예년보다 5배나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호주 산불, 바하마를 휩쓴 폭풍에 이어, 올해는 중국,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거대한 홍수가 벌어졌다. 이처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난의 규모는 이미 가속도가 붙은 듯하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올해 5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7ppm을 기록해 또다시 역대 기록을 갱신했다.

이처럼 경제 위기와 기후 위기가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그린뉴딜이라는 대안이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린뉴딜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투자를 통해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누가, 또 어느 계급에 기반해서 이런 대안이 제시되느냐에 따라 그 내용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문재인 정부는 경제 불황의 대안으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그 내용 중 하나로 그린뉴딜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정부는 그린뉴딜 정책에서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지 목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탄소 배출 기업 규제도 전혀 포함하지 않았다. 정부는 주로 노후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재생에너지나 수소차·전기차 등과 관련한 기업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래서 그린뉴딜의 대표 기업으로 현대차가 소개됐고 수석부회장 정의선이 관련 발표를 했다. 실제로 정부의 그린뉴딜에서 가장 많은 재정이 투여되는 단일 사업이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사업인데, 이를 통해 현대·기아차나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기가 화석연료와 핵발전으로 생산되는 상황에서는 전기차나 그 전기를 이용해 만든 수소로 달리는 수소차가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 한국의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OECD 평균의 6분의 1로 3.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애초 공약을 어기고 석탄화력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지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도 석탄화력발전 설비 용량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4조 원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주해 건설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지 않은 채 신재생에너지의 추가 생산만으로는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시장 원리에 기반한 신재생에너지 기업 증가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전혀 성공하지 못해 왔다.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증가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전력 생산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게다가 정부의 재생에너지 기업 육성은 결국 전력 생산 민영화를 촉진시키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의 그린뉴딜 발표에서도 전력 판매를 민영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같은 전력 민영화는 평범한 가정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처럼 정부의 그린뉴딜은 친기업적 색채가 분명하다. 이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녹색성장 정책과 비슷한 것이다.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할 때 청와대 대변인 스스로도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을 “지금 시대에 맞게 강화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친기업적 녹색 성장 정책으로는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지난 시기에 탄소 배출은 계속 증가해 왔고, 기후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은 이를 보여 준다.

지난 시기 재생에너지 산업은 성장해 오긴 했지만 화석연료 사용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제조업뿐 아니라 식품 생산과 유통, 사무실 건물 가동과 난방, 노동자의 출퇴근, 노동자의 재충전과 재생산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데에도 화석연료가 사용된다. 비료·농약 등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산업도 화석연료 없이는 가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윤 경쟁을 중시한다면 이런 화석연료 기업들과 타협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은 그린뉴딜이나 기후 위기 해결을 표방하면서도 화석연료 기반 산업들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보면, 전 세계 정부들이 6월 초까지 기업에 지원한 경기부양 자금은 5213억 달러(약 630조 5000억 원)에 이르는데, 이 중 97.6퍼센트인 5090억 달러가 항공과 자동차, 석유회사 등 탄소 대량 배출 업종에 지원됐다. 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엔 2.4퍼센트인 123억 달러를 지원했을 뿐이다. 이는 각국 정부와 자본가들의 투자 우선순위와 함께 친시장적 기후 위기 해결이 녹색 분칠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개혁주의 진영의 그린뉴딜

정부의 친기업적 환경 정책에 대해 정의당, 녹색당 등은 비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은 결국 재벌 뉴딜이었나?” 하는 논평을 냈고, 녹색당도 “이것은 그린뉴딜이 아니다” 하고 비판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그린뉴딜 공약을 내놓았다. 또 이들은 그린뉴딜을 통해 불평등 해소를 추구해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그린뉴딜의 핵심 내용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급격한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사회의 역량을 총동원해 화석연료에 기반한 생산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런 목표는 2018년 유엔 ‘기후 위기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안한 것이었다. IPCC는 재앙을 막으려면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안해야 하고 이를 위해 앞서 말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이를 위해 정의당은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없애고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육성하고 탄소 배출 기업들을 규제하자는 등의 내용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총선 후 법안 작성 과정에서는 이 목표를 뺐는데, 그 배경에 대해 뒤에서 다룰 것이다.) 또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이 정책에는 지지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이것은 2018년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오카시오 코르테스와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버니 샌더스, 또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이 제안했던 그린뉴딜과 그 취지를 같이하는 것이다. 지난해 버니 샌더스는 대규모 국가 투자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2000만 개를 만들겠다는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 주목받은 그린뉴딜은 서구에서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투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2018년 8월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발의를 계기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 위기의 해결을 촉구하며 수업을 거부했고, 건물과 거리를 점거하는 행동도 벌어졌다. 이렇게 유럽의 청소년들이 촉발한 시위는 지난해 9월 150개 나라에서 400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로 발전했다.

이와 같은 운동에서 제기된 요구를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정책화함으로써 그린뉴딜은 공식 정치의 의제로 올려졌다.

다른 성장? 탈성장?

그런데 탄소 배출 감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기후 위기 해결과 자본주의 체제를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 등이 중요한 논점으로 돼 있다.

정의당은 그린뉴딜 정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의 신기술 산업 육성을 통해 기후 위기 해결과 함께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뤄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이 자본주의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 위기 해결과 자본주의 내에서의 경제 성장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에 가깝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의 대대적 전환이 필요하고 이는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손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화석연료 산업의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자체의 위기로까지 파급될 것이다. 최근 심각한 경제 불황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셰일가스 업체들이 파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다른 정부들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업들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했다. 이는 이들 기업이 파산할 경우 금융 시스템 등으로 그 위기가 파급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다 보면 결국 기후 위기의 해법에서 후퇴해야 한다는 압력에 놓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녹색당은 “탈성장”이라는 방향 속에서 그린뉴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래서 탄소 배출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생산과 소비를 축소하는 것을 핵심 방향으로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런 탈성장론은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 추구가 낳는 폐해에 대한 이해할 만한 반감이 반영된 것이다. 그럼에도 탈성장론은 기후 위기가 벌어진 핵심 원인을 짚지는 못한다.

모든 경제 성장이 기후 위기를 낳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풍력, 태양력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처럼 환경을 위해 필요한 기술들은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충분히 개발되거나 사용되지 못해 왔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이윤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비롯했다. 만약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하고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회를 건설한다면 지금과는 달리 환경과 인간의 조화로운 성장을 추구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초점은 이윤을 위해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조처를 도입하지 않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려는 기업주와 권력자들에게 맞춰야 한다. 개인들의 소비 축소를 추구하는 것으로는 이들에게서 권력을 뺏어 올 수 없다. 소비 축소를 강조하는 것은 기후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흐리는 좋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대화와 타협?

정의당과 녹색당은 이와 같은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그린뉴딜을 위해 정부·노동자·기업 간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그 한 사례일 것이다. 지난주 정부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한 이후 정의당, 녹색당 등과 환경운동단체들은 국회에서 ‘기후위기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그린뉴딜 기본 원칙 공동선언’을 했다. 이들은 정부 측 그린뉴딜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그린뉴딜을 위한 계획에 정부뿐 아니라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등이 동참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이전부터 “미래세대, 새로운 산업, 시민사회 및 노동자와의 정치 동맹,” 즉 “뉴딜정치동맹”을 통해 그린뉴딜을 이루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이처럼 기업·정부와의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방향은 그린뉴딜의 애초 계획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화와 타협 추구로는 기업들의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 동력을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의당이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그린뉴딜 특별법에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0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이 담겼지만,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없애고 친환경 전력 생산을 하겠다는 내용은 빠졌다. 정의당 그린뉴딜 정책에서 가장 핵심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여야 의원들과 기업주, 국가 관료들을 설득하려면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처럼 기업주나 국가관료·기성 정치인들과의 타협을 통해 그린뉴딜을 추진하려다 보면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애초 목표로부터 더 멀어지게 될 위험성이 커진다.

국가를 활용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또 개혁주의 진영은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를 국가를 통해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정부에게 탄소 배출 기업들을 규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또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업 육성 같은 민영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강제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은 몇몇 진보적 인사가 국가 기구에 참여하거나 개혁주의 정당이 선거로 집권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서만 형성될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경찰의 흑인 살해에 항의해 벌어진 대규모 시위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흑인들은 그전 수십 년 동안 선거에 의존해 왔던 것보다 이번 대중 투쟁을 통해 훨씬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자본주의 국가가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뀔 수 있는 계급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핵심 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군대, 경찰, 검찰, 사법부, 거대한 관료기구 등을 운영하기 위한 재정도 결국 노동자들을 착취한 것에서 나온다. 그래서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도 노동계급에게서 더 많은 잉여가치를 뽑아내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즉, 자본 축적)에 이해관계가 있다.

또 자본주의에서 기업들 간의 이윤 경쟁은 국가 간의 패권 경쟁으로도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국가 간 경쟁과 투쟁 압력은 오늘날 기후 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맺은 (보잘것없는) 국제 협약인 파리 협약 탈퇴를 추진하며 기후 위기 대처가 중국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국가를 이용해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는 시도는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근에 그 한계를 보여 준 사례 중 하나는 그리스의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의 경험일 것이다. 시리자는 유러코뮤니스트 좌파(스탈린주의에서 개혁주의적으로 이동한 공산당)와 녹색당 계열의 활동가들이 함께 결성한 정당이었고, 집권하면 친환경 정책을 펼 것이라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시리자는 그리스 전력공사의 민영화 계획을 철회하고, 전력공사가 직접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민간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산업을 주도하는 유럽연합과는 달리 말이다.

그러나 시리자는 집권 이후 유럽연합·IMF·유럽중앙은행의 긴축 압력에 굴복해 전력공사 민영화를 추진했다. 재생에너지 산업도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친시장적 방식으로 추진했고, 그나마 경제 위기로 인해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 속도는 전보다 더 느려졌다. 심지어 시리자 정부는 2018년에 지중해 동부에서 새로 발견한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 이집트의 독재 정권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가 지중해 동부에서 터키와 벌이고 있는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 시리자 정부는 자본주의 국가 간 경쟁 압력에서 굴복해 그 화신처럼 행동했다.

이처럼 국가를 이용해 개혁을 제공하려는 개혁주의 정치는 결국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지배자들의 압력에 타협해 긴축 정책 등을 받아들이며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아니면, 예외적이지만 1970년대 칠레의 아옌데처럼 군부의 반동 쿠데타로 쫓겨났다.

자본주의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혁명적 정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국가를 활용해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는 없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면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복해야 한다.

오늘날 심각한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보여 준다. 자본주의 체제의 정신 나간 이윤 경쟁 논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심각한 재난과 많은 생물들의 멸종이 눈앞에 닥쳐오는 데도 멈출 줄을 모른다. 심각한 기후 위기에 직면해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은 녹색 기치를 들지만 실제 그들은 이윤 경쟁의 당사자가 되거나 포로가 돼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업들의 이윤을 지원하고 있다. 패권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의 석유를 통제하려고 막대한 군사적 경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기후 위기를 막을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일 것이다.

2003년에 작고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키드런은 1970년대 미국 생산물의 60퍼센트는 무기, 광고, 사치품 등 쓸모없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3분의 1은 단지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전 세계 인구의 8억 명 이상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다면 이런 낭비적 생산은 바로 중단시키고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위해 아래로부터 투쟁을 일관되게 전진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윤·경쟁 논리와 타협하지 않는 혁명적 정치를 추구할 때만 그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의 대안을 찾는 사람들 속에서 이런 주장과 토론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