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7월 20일(월) 유튜브 연설을 통해 현재 민주노총의 혼란과 위기를 정파 조직들의 횡포 탓으로 돌렸다. “정파 조직이 대중 조직 위에 군림”하고 “물리적 압력 또는 줄 세우기”를 해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이 유실될 판이라는 것이다.

ⓒ출처 민주노총

이것은 대의원 809명(전체 대의원의 55퍼센트)의 잠정합의안 반대 성명을 정파들의 줄 세우기 압박의 결과로 치부하는 것이자, ‘정파 대 민주노총 조직 질서’ 프레임을 제시해 반대파 대의원들을 흔들어 보겠다는 속셈이다. 김 위원장의 연설 제목은 “정파의 판단이 아니라 대의원들의 결정을 요청드린다”였다.

그동안 김명환 위원장은 잠정합의안 승인 여부를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보다 상위 기관인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자는 프레임으로 내부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대의원들의 과반이 잠정합의안 폐기 요구에 서명한 것으로 드러나자, 다급해진 그는 대의원들이 정파에 휘둘리고 있다고 폄훼하며 치졸한 수법을 들고나온 것이다.

잠정합의안 살리려고 자기 조직 부정하는 지도자

민주노총의 가맹/산하 조직들과 대의원들 사이에서 잠정합의안 반대 목소리가 광범하게 터져 나온 것은 “정파 조직들이 군림한” 결과가 아니다. 잠정합의안의 내용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재난 시기 해고 금지 등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가 담기지 않았고, 사용자 측에 대한 노동자 측의 협력이 가장 강조됐다.

그런데도 김명환 위원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잠정합의 상대인 사용자·정부 측과의 신뢰와 연대를 더 중시해, 잠정합의안 승인을 위한 내부 투쟁에 나섰다. 사용자와 정부 측은 할 만큼 했는 데 반해 민주노총의 일부 말썽꾼들이 떼를 쓰며 노사정 합의를 그르치려 한다는 투였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본질적으로 친정부적인 언론들은 김명환 위원장의 민주노총 “내부 비판”을 응원했다. 대정부·대국회 투쟁보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이 투쟁이 “더 가치 있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친자본주의 언론을 등에 업은 김명환 위원장의 내부 비판은 누워서 침 뱉기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노총이 ‘국회 담장만 무너뜨리’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높이는’ 조직이 아닌,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이번 사회적 합의 결과로 보여주고 싶다.”(〈한겨레〉) 민주노총 위원장 스스로 민주노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높”이는 조직이라고 성토하는 셈이다.

김명환 위원장이 잠정합의안을 옹호하고자 무책임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한 것도 광범한 반대에 부딪힌 이유의 하나다. 가령 잠정합의안이 ‘재난 시기 해고 금지’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그는 이렇게 일축했다. “지금의 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7월 14일자 〈한겨레〉 인터뷰)

하지만 “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이 요구를 애초 민주노총의 공식 요구로 제시한 것은 김명환 위원장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그 요구를 얻어 내지 못했다고 인정하지는 않고, ‘그 요구를 성취할 수 있다고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말이냐’며 오히려 이제 와서 지지자들을 힐난하는 셈이다.

그런 ‘지도자’가 지금 잠정합의안에 대해 늘어놓는 장밋빛 해설과 약속을 믿을 이유가 무엇인가?(나중에 또다시 말 바꾸기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지율 추락하는 문재인과 동반 추락을 택할 것인가

정파가 문제라는 비판은 위선과 자가당착일 뿐이다. 노동조합처럼 노동계급의 일상적 조직이라면 정파가 있게 마련이다. 정파와 관계없는 척하는 활동가들도 사실은 대개 정파의 일원이거나 연줄을 갖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자신이 대중 조직의 대표인 데 반해 반대파는 정파일 뿐이면서 대중 조직 위에 군림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김명환 위원장도 무정파가 아니라 국민파의 일원이다. 국민파는 범국민적 사회개혁, 대화와 교섭, 상근간부층의 강화를 중시하는 매우 온건한 관료적 경향으로,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장이 된 이후 누구보다 굳건하게 그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특히 올해 정부·여당의 총선 압승 이후 사회개혁을 위한 전기가 마련된 것처럼 큰 착각과 환상을 갖고 사회적 대화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젊은 지지층이 집값 폭등 속에 불평등 심화와 박탈감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친기업적 본질이 다시 분명해지고 있는 것도, 정부의 재난지원금 생색에도 경제가 회복될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 속에서 한편으로 해고로 내던져지고, 다른 한편으로 더 싸게 더 오래 일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역대 최저로 정해졌고,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이 확대됐다. 이것이 진보 포퓰리즘 미사여구 이면에서 문재인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지도자가 ‘정부가 이런 정책의지가 있다, 저런 약속도 지킬 것이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평등 심화는 없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하면서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인가?

오히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취약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투쟁으로 그 성취 가능성을 보여 줄 때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용자·정부 측과의 협력(그리고 사실상 굴종)을 선언하는 잠정합의안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그것을 승인 받고자 소집되는 임시대의원대회는 아무 정당성이 없다. 대의원 과반이 잠정합의안 폐기를 요구하는데도 위원장이 이를 정파 조직의 줄 세우기로 폄훼·왜곡하면서 임시대대를 강행하는 것에서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용자와 정부는 존중하면서도 동지들은 업신여기는 김명환 위원장의 이런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행태는 그가 패배를 예감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노동자 양보와 굴종을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절차(임시대대)를 보이콧함으로써 잠정합의안 승인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 물론 반대파 중집 위원들과의 연계 때문에 임시대대에 참석해야 하거나, (형식적 민주주의 존중 차원에서)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의원은 잠정합의안 반대표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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