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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으로는:
수도권 과밀화와 비수도권 지역 소외를 해소하지 못한다

민주당이 연일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띄우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와 모든 정부부처를 세종시로 옮기자는 것이다.

사실 이는 집값 폭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때 집권당이 그저 상황을 호도하는 데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 집값을 떨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정부청사를 세종시에 건립한 뒤에도 서울 집값은 내려가지 않고 더 많이 올랐다. 민주당 행정수도 완성추진단장 우원식 의원도 이렇게 시인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완성한다고 해서 (수도권) 부동산이 막 꺾이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행정수도 이전 논의로 서울의 집값 불안이 세종시로 전이될 우려도 있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7월 20일까지 21.36퍼센트의 상승률을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큰 오름폭을 보였다.

그래서 여권의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수도권 집값 폭등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론이 거세지자, ‘먹힐 만하다’는 판단으로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낸 것이다. 즉, 22번의 ‘땜질식’ 부동산 대책과 ‘간 보기’ 정책(그린벨트 해제, 태릉골프장을 주택공급지로 거론 등)이 집값만 들쑤셔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고 민주당이 궁지에 몰리자, 민심을 돌리려는 국면 전환용 카드이다.

민주당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동안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 원내대표 김태년이 7월 20일 국회 연설에서 행정수도 완성론을 발표하기 바로 나흘 전에 문재인이 국회 개원연설을 했지만, 행정수도와 관련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보도를 보면, 문재인은 지난 3년여 동안 국토균형발전회의에 딱 한 번 참석했다.

‘노무현의 꿈’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이 위기 상황 모면책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이래 민주당의 숙원 사업이라고 주장한다.(최근에는 우파에 아첨하려고 “노무현·박정희의 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애초 노무현은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만 해도 행정수도 이전에 유보적이었다. 노무현이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공약한 것은 2002년 9월이었는데, 당시 충청권에서 노무현 지지도는 10퍼센트대였다. 노무현은 최종 57만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을 따돌렸는데, 충청권에서 더 얻은 36만 표가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선거가 끝난 뒤 노무현은 “행정수도로 재미 좀 봤다”고 말했다. 선거용 정책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군불을 때는 것도 차기 대선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파 정당도 행정수도 문제에 책략적으로 접근해 왔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다. “주식시장 붕괴가 연쇄적으로 발생해 수도권이 붕괴하고 우리 경제가 극도로 불안해질 것[이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2003년 12월 국회에 제출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안’에 대한 당시 한나라당의 당론은 찬성 권고였다. 그리고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했다. 지금도 미래통합당(한나라당의 후신)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입장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 당의 충청권 의원들과 대선 주자들은 찬성한다.

지금 〈조선일보〉가 행정수도 이전 반대의 총대를 메고 있지만, 그 우파 신문도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대했다. 군부 독재자 박정희가 수도 이전을 말했을 때 〈조선일보〉는 “영도자의 심모원려[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라고 찬양했다. 1992년 김영삼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도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자 “[천도로]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인가”라며 잔뜩 과장된 주장을 폈다.

이런 역사를 보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중요한 대립 구도가 중도 여당과 우파 야당 사이에 형성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의 대립 구도도 아닌 것이다. 물론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국민투표 부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노동계급의 삶과 조건에 관련한 다른 시급한 사안들이 많이 있음에 비춰 보면 불필요한 제안이다.

수도권 집중 문제

그러면 행정수도 이전이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낳을 수 있을까?

수도권 과밀 현상은 분명 문제이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국토의 12퍼센트인데, 인구의 52퍼센트가 이 지역에 거주한다. 훨씬 중요한 사실은 서울에 정치·경제 권력, 문화 자원 등이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행정부·사법부·입법부, 기업·의료·금융·교육 기관과 문화 시설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은 “서울공화국의 내부 식민지”라는 비유(이론적 개념으로선 매우 부정확하다)가 나올 정도로 일자리·교육·건강·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를 상대적으로 못 누려 왔다. 그만큼 비수도권 지역의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층은 고통스러운 삶을 여전히 살고 있다.

이런 지역 불균형 때문에 올해 마침내 수도권 인구(약 2596만 명)가 비수도권 인구(약 2582만 명)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의 인구 분산 효과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미 노무현 정부 이래 비수도권 지역에 혁신 도시들을 만들고 공공기관도 많이 이전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35만 명)가 건설됐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그 이유는, 행정수도 이전 찬성으로 돌아서기 전에 노무현 자신이 한 말에 있다. “수도권 흡입력은 시장에 의한 것이 크기 때문에 권력만 분산시킨다고 해서 모든 경제력 등이 분산되지 않는다.”(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지금도 100대 기업의 95퍼센트가 수도권에 있다. 불균등한 발전, 지리적으로 불균등한 자본 축적 때문에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때때로 지배계급은 이런 지역 간 불균등 발전을 지역주의적으로 활용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 애쓴다.)

여기에 정부·여당의 정책도 수도권 과밀 해소에 역행한다. 말로는 균형 발전을 역설하지만 실제 정책은 신자유주의적으로 신도시 개발, 수도권 내 난개발 등을 허용해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가속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강남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짓는 105층짜리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 신축을 승인했다.

노무현 정부도 행정수도 이전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파주 LCD단지, 삼성전자의 기흥공장, 쌍용자동차의 평택공장 확장을 승인했다.

따라서 행정수도 이전은 찬성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이것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적극적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 노동계급의 일상적 고통을 외면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로가 사회주의자들의 불가피한 접근법일 수밖에 없다. 행정수도 이전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폭로하고, 집값 폭등, 노동자들의 조건 후퇴 강요에 맞서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층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요구들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