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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 동유럽 벨라루스 투쟁:
노동자 파업과 시위로 독재정권 흔들리다

26년 독재자에 맞서 들고 일어난 시위대 사진 속 깃발은 벨라루스 반정부 운동의 상징이다. 8월 16일 수도 민스크 ⓒ출처 Homoatrox

8월 17일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정권을 부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 전주에 벨라루스에서는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대중 항쟁, 특히 파업이 벌어졌다.

8월 16일 수도 민스크에는 3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백색과 적색의 바다를 이루었다. 백색과 적색은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깃발의 색이다. 전국 각지에서도 수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과거에 루카셴코를 지지하던 곳에서도 그랬다.

다음 날 아침 민스크는 시위대와 파업 노동자들로 붐볐다.

루카셴코는 대형 수송차를 제조하는 민스크차륜트랙터공장(MZKT)에서 “인민들과 만날” 준비를 했다. 루카셴코는 노동자들에게 말했다. “선거는 치러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목숨을 끊지 않는 한 다른 선거는 없을 것입니다.”

루카셴코가 말을 마치자마자 노동자들은 외쳤다. “물러나라!”

루카셴코의 권위가 하도 땅에 떨어져서 그가 연설하는 장면은 마치 1989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의 몰락을 연상케 했다.

국영 뉴스 채널 STV와 ONT, 라디오 방송국 BT 노동자들도 8월 16일에 일손을 놓았다.

콤무니스티체스카야가(街)에 있는 ONT 건물 바깥에서는 큰 시위가 열렸다.

과학 연구 시설 벨레네르고세티프로옉트의 노동자 약 130명도 일손을 놓고 집회에 참가했다. 이 노동자들은 앞서 경영진에게 요구안을 제출했다.

노동자들은 코즐로프 전자 부품 공장, 민스크차륜트랙터공장, 민스크자동차공장(MAZ), 민스크트랙터공장(MTZ) 등 이 작업장 저 작업장을 행진하고 다니며 서로를 응원했다.

수도 민스크 바깥에서는 칼륨 비료 업체인 벨라루스칼리의 칼륨 광산에서도 작업이 중단됐다는 보도가 있다. 정권의 수중에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꼽히는 나바폴라츠크 정유소에서도 노동자들이 아침에 집회를 열었다.

산업용 차량 제작 업체인 벨라스에서도 노동자들이 행진하여 공장들을 돌며 시위 지지를 호소했다.

벨라루스 남동부의 줄로빈시(市)에 있는 벨라루스제철(BMZ)에서도 노동자들이 공장 바깥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혔다.

민스크의 발전소에서도 노동자들이 연대 행동에 나섰고, 민스크베어링공장 노동자들은 완전히 작업을 멈췄다.

부정 선거

지난 한 주 내내 여러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경찰 폭력과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행동을 했다. 일손을 놓은 노동자도 있었고 점심 시간에 시위를 하거나 경영진에게 공개적으로 요구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8월 13일 민스크에서는 철도 노동자, 얀카 쿠팔라 극장 노동자들, 제약 회사 벨메프레파라티의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했다.

벨라루스 서부에 있는 도시 브레스트와 바라노비치에서는 의사들이 “우리는 이 나라의 평화를 지지한다”며 시위에 나섰다.

브레스트 소재 헤파이스토스 가스기기회사 노동자들은 점심 시간에 모여 “퇴진하라” 구호를 외쳤다.

그로드노에서는 섬유 기업 콘테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정권의 수중에 있는 가장 큰 회사로 꼽히는 석유화학 기업 그로드노아조트의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지역 주민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지난주 민스크트랙터공장의 작업 중단은 정권이 얼마나 신망을 잃었는지를 잘 보여줬다. 8월 11일 각종 부서에서 기술자와 기계공 약 70명이 작업을 중단하고 공장 건물 밖에서 집회를 했다. 그러자 그 공장의 이데올로기 담당 부사장이 점심시간에 나와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작업에 복귀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협박은 먹히지 않았다. “더는 아무도 이데올로그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넥스타라이브’는 보도했다.

루카셴코는 대선에서 81퍼센트를 득표해, 11퍼센트를 득표한 자유주의자 후보 스바틀라나 치하놉스카야를 꺾었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치하놉스카야는 8월 11일 리투아니아로 피신했다. 치하놉스카야는 새로운 영상을 공개해 자신이 벨라루스의 임시 지도자가 돼 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온갖 서방 지도자들은 자유를 요구하는 벨라루스인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척하며 위선적이게도 경찰 폭력을 규탄한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유럽연합에 벨라루스 시위를 지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마크롱 정권은 경찰을 동원해 노란 조끼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려 했었다.

루카셴코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대체할 진정한 대안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데에 있지 않다.

진정한 대안은 거리에, 민주주의, 사회 정의, 노동자가 운영하는 사회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있다.


루카셴코 정권이 서방과 충돌한다고 해서 노동자 편인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1990년대 구소련·동구권 몰락 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집권했다.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에게 통제권이 전혀 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

지배계급인 국가 관료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 체제의 사장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윤 축적과 국제적 경쟁에서의 우위였지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었다.

1989년 혁명으로 동구권 국가들이 무너졌고, 소련은 15개 공화국으로 쪼개졌다. 이 국가들은 국가자본주의에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 변모했다.

공산당 정치인들이 “민주주의”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국영 기업 관리자들이 민간 기업 경영자가 됐다. 일례로, 루카셴코는 농업 기업 관리자 출신이다.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거리에 나와 자유와 사회 정의를 요구했던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자유 시장 정책의 대가를 치렀다.

이런 과정이 벨라루스에서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조금 다르게 전개됐다.

벨라루스의 스탈린주의 관료들은 특히 보수적이었고 개혁이라면 무엇에든 저항했다.

그러나 1991년 4월 강력한 노동자 시위가 잇따르며 공산당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민스크 소재 국영 기업 80곳 이상에서 파업이 벌어졌는데, 그중 몇몇은 민주 노조들이 조직한 파업이었다.

민주 노조

상층부의 분열과 시위가 결합된 상황의 압력에 떠밀려 벨라루스 의회는 1991년 8월에 독립을 선포하게 됐다.

그러나 독립 후에도 옛 지배 관료 출신의 인사들이 상당한 권력을 유지했다. 소련이나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벨라루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지배가 불안정해질까 봐 대규모 시장 자유화 조처를 추진하지 않았다.

1994년 루카셴코는 벨라루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치러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루카셴코는 제국주의 경쟁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도박을 벌였다.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이 저마다 벨라루스에 눈독 들이는 것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루카셴코 정권은 러시아 진영에 잔류하기로 하면서 그 대가로 러시아에게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았고 그것으로 벨라루스 경제를 떠받쳤다.

최근에 루카셴코는 서방과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둘 모두 러시아의 경쟁자였고, 이를 위해 몇몇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그중 하나가 실업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사회적 기생충 퇴치령”이다. 이는 거대한 시위를 촉발했고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데에 한몫했다.

벨라루스가 서방과 조금 가까워지는 것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크게 반발했다. 푸틴은 벨라루스에게 러시아와의 합병 협상을 강요했다. 루카셴코는 합병을 거부했다.

벨라루스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경쟁은 민주주의 대 독재의 싸움이 아니다.

서방 지도자들이 자유를 요구하는 투쟁을 지지하는 양 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경쟁 상대를 약화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희망은 거리에 있지 동·서구의 제국주의에 있지 않다.

지난 한 주의 대중 행동들은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전 올해 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저항의 물결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 글은 필자가 8월 12일에 쓴 것을 최근 상황에 맞게 8월 17일에 개정·증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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