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는 대표 정책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6년째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극도로 제한한다. 또, 정주화를 막기 위해 체류기간을 4년 10개월로 제한하는 등 단기순환을 원칙으로 한다. 사업장 이동 자유가 없다 보니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 수 있었다. 고용허가제는 지난 16년 동안 고용주에게 점점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을 위해 고쳐 쓸 수 없고 폐지돼야 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은 8월 23일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고용허가제 16년,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노동허가제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허가제의 문제를 규탄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시행일에 즈음해 매년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재확산 때문에 기자회견으로 변경했다.
기자회견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전했다.
“이주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직을 할 수 없어서 강제로 노동해야 하니까 ... 해마다 산재 사고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재 사고가 날 수 있는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살까지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이 8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고용허가제 16년,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노동허가제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승진
이주노조 등 7개 단체가 올해 5~6월에 65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 결과도 이런 현실을 보여 준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사업장 변경을 시도한다. 응답자의 약 58퍼센트가 사업장 변경 경험이 있었다. 일이 너무 힘들고 월급이 적다는 것이 변경 사유 1, 2위였다. 또한 응답자의 29퍼센트가 사업장 변경을 희망했다. 
응답자의 17퍼센트는 ‘다른 회사 상황도 비슷해서’, 10퍼센트는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하기 위해서’ 작업장을 옮기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도 사실상 변경을 희망한다고 봐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취업을 3D 업종으로 제한하고, 이주노동자가 4년 10개월 동안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고 고용주의 동의를 얻어야 재입국 기회가 주어지도록 한다. 체계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 바람을 좌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나쁜 거주 환경을 강요받고 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주평균 53.3시간 일하고 월평균 222만 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보다 9만 원가량 적다.
그런데 응답자의 약 52퍼센트는 기숙사비를, 14퍼센트는 식비를 공제당했다. 숙식비는 월평균 14만 원이었다. 정부는 2017년부터 고용주가 임금에서 숙식비를 강제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산업연수제(고용허가제 도입 전 실시) 때 숙식은 무료로 제공됐고, 고용허가제 시행 초기에도 숙식비는 압도적으로 사업주가 부담했던 것에 견주면 사실상 임금을 삭감한 것이다.
사측이 제공하는 기숙사의 환경도 극도로 열악하다. 이주노동자들은 주야간 노동자들이 같은 방을 사용하고(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의 소음·먼지·냄새에 노출되고, 에어컨과 실내 욕실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불만이라고 답했다. 

안정적 체류를 보장하라

한편, 코로나19 때문에 항공편이 없어 체류기간이 만료됐음에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체류기간만 50일 연장할 뿐 취업을 허용하지 않았다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최근에서야 비자를 바꿔 농어촌 계절근로(최대 90일)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도 한사코 이주노동자들이 장기 체류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정부는 단기순환 원칙을 내세워 이주노동자의 가족동반과 가족결합을 금지했고, 단속추방으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장기 체류하면 내국인 일자리를 침해하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면서 이런 조처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열악한 곳에서 부족한 일손을 채워 왔다. 또한 사회적 비용 운운하며 장기 체류를 막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을 부려 먹고는 교육·의료·복지 등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에게 고통만을 안기는 고용허가제는 당장 폐지하고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이주와 사업장 변경, 안정적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필리핀이주노동자단결연합(카사마코) 카를로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스스로 단결하고 우리의 권리와 삶의 질을 위해 과감하게 투쟁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실태조사 응답자의 약 38퍼센트가 노동조합 가입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 53퍼센트가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사업장 내에서 문제 제기하기’를 꼽았다.
지난 이주노동자 투쟁이 보여 주듯이 이주노동자도 스스로 조직하고 저항에 나설 잠재력이 있다. 이런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도록 내국인 노동자들도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