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 양제츠가 방한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양제츠와 서훈은 시진핑이 이른 시기에 다른 나라보다 “우선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양제츠-서훈 회담과 시진핑 방한 합의는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중국 포위망 동참을 촉구하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왔다. 화웨이·틱톡 같은 중국 첨단기업을 공격하고,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했으며, 홍콩·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도 흔들려 한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인도·태평양 전략 등 ‘중국 포위망’에 합류하라고 한국에 촉구해 왔다. 개별 기업들에까지 화웨이와 거래를 끊으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양제츠-서훈 회담에서 미·중 갈등의 쟁점들이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양제츠는 중국 외교의 실질적 담당자라고 할 인물이다. 중국 외교부도 이번 회담에서 “중국 측은 중·미 관계의 원칙적 입장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주변국인 한국이 친미 일변도로 가지 않도록 압박해 왔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사드가 한국에 배치됐을 때,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등 강력하게 압박했었다.

이처럼 한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국·중국 두 강대국이 한국에 상반된 압력을 가하고 이 때문에 한국의 딜레마가 깊어지자, 국내에서는 한국이 양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전장”이 되지 않으려면 균형외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대외 관계가 변화해 왔음을 반영한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도 변화했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로는 점점 더 중국과도 경제적으로 밀접해졌다. 여타의 아시아 국가들처럼 한국도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의식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균형외교를 표방한다. 노무현과 그의 정부를 회상하는 저서 《문재인의 운명》(2011년)에서 저자 문재인은 외교적 지향점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중시하되 지나친 대미 편중 외교에서 벗어나 균형외교를 지향한다.”

전장

균형외교 전략은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타협을 통한 평화 공존을 추구한다. 그리고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균형외교 전략은 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공상적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동인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만이 그 자장에서 항구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한반도 정세는 이 원인의 종속변수이다. 한국이 외교로 강대국 간 갈등을 억제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또한 어찌어찌 해서 미국·중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 균형이 이뤄진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균형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남·북한과 주변 4대 강국들(미·중·러·일)은 6자회담을 열어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해 협의했다. 그 결과 한반도 평화에 관해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2005년 9·19공동성명 등). 이 합의들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자 협력의 성공으로 여겨졌으나 얼마 안 돼 무용지물이 됐다. 6자회담 당사국인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이 낳은 불안정이 그 원인이었다.

지금 미·중 갈등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갈등은 6자회담 당시보다 더 악화돼 있다. “한반도 운전자”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놓고 미국·중국 등의 사이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사실 균형외교는 미·중 간 등거리 외교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균형외교와 함께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해 왔다. 나름 역설이다. 한국 지배계급의 처지에서 보기에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고, 한미동맹은 한국 지배계급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기 이익을 보호하고 나름의 대우를 받는 데에 필요할 것이다.

지난 5월 문정인 당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미국이 “동맹”이고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라며 “확실히 동맹은 전략적 파트너보다 중요하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최우선은 미국”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한국이 중국을 적대하기는 어려운 처지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은 이렇게 주장했다. “중국과의 대등하고 건전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이 필요하다.” “우리가 중국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이어서 한미동맹이 있어야 중국이 한국에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균형외교를 표방하나 현실에선 한미동맹을 선택할 때가 많았다. 사드 배치 강행은 그런 사례의 하나다 ⓒ출처 소성리 종합상황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다소 조심스럽지만 사실상 한미동맹에 충실한 선택을 해 왔다. 중국에 3불(사드 추가 배치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가 않고, 한·미·일 동맹 구축 않기)을 약속했지만, 사드 배치를 강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파병 요청에 응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도 보냈다.

올해 6월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경제번영네트워크 합류 제의에 바로 응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협의를 지속하는 데에 동의해 줬다. 그리고 문재인은 트럼프의 G7 정상회담 초청도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높일 기회로 여겼지만, 이는 트럼프가 중국 포위를 위해 G7을 G11이나 G12로 확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다자 협력

균형외교를 말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불안정 속에서 한국이 생존하려면 다자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는 “동북아 지역 내 지정학적 긴장과 경쟁구도 속에서 장기적으로 우리 나라의 생존 및 번영에 우호적인 평화·협력적 환경 조성”을 위한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형성’을 국정과제의 하나로 꼽는다.

그러나 (위에서 봤듯이) 다자 협력의 대상국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주변의 강대국들이 있고 문재인 정부의 다자 협력 구상에는 동맹인 미국이 당연하게도 포함된다. 그러나 모두 경제적·지정학적 우위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열강이다. 경쟁적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축적하는 이 제국주의 국가들과 함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난 7월 외교전략조정회의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각국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각자도생을 추구하면서 기존의 다자 협력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균형외교론은 실제 현실에 부딪히면 열강의 경쟁 속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 자체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흔히 연결된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내내 “힘을 통한 평화”를 표방하며 막대한 돈을 군비 증강에 쏟아부었다.

이런 군비 증강은 한반도와 그 주변의 불안정 고조에 일조하는 것이다. 또, 이는 미국산 전투기인 F-35를 도입하고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등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균형외교론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으로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하는 많은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줄타기한다는 균형외교 전략은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이 점증하는 오늘날 그 한계와 모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 운동은 균형외교론과는 다른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경쟁하며 오늘날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는 주요국의 제국주의와 한국 지배계급의 친제국주의 외교에 맞선 반제국주의적 대안 말이다.

이 대안은 자본주의와 분리된 것일 수 없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세계적 체제다!)가 도달한 최근의 단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문제를 회피하는 주류 개혁주의도 문제이지만,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와 분리시켜 당장에는 제국주의에만 반대한다는 식의 민주변혁단계론도 문재인 정부 같은 성격의 행정부가 이끄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 하에서는 동일한 개혁주의 약점들을 드러내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북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 열강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경제 침체가 심각한 시기이므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해 싸워야만 조금의 개혁이라도 얻거나 지켜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