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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위기와 우파의 부상

변신? 덕망 있는 척해도 통합당의 신자유주의적이고 우파적인 성격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통합당의 부상은 여권이 지배계급의 지지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욱 우파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출처 미래통합당

8월 25일 미래통합당(통합당) 원내대표 주호영은 방송에 출연해 통합당은 중도우파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들 보편적인 정서와 맞지 않는 그런 분들[극우]의 주장 때문에 우리 당 전체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정당으로 비[친다.] … 극단적인 주장을 그냥 둘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줘야 중도의 국민들이 당을 지지할 수 있다는 조언을 많이 받고 있다.”

최근 통합당 지도부는 이런 취지의 강변을 공개적으로 거듭해 왔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하락하던 7~8월, 통합당의 지지율은 상승해, 광복절 직전 주에는 민주당과의 격차가 손에 잡힐 듯 좁혀졌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서는 박근혜 탄핵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에 역전하기도 했다.

이는 문재인이 총선 압승으로 공식정치에서 우위를 차지하고도 개혁 염원에 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동산 정책 실패 등 기대를 배신한 것이 명백해 보였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김승주, ‘슈퍼 여당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저지른 배신들’).

민주당 총선 승리 요인의 하나였던 재난소득지원금 지급도 소액이어서 진작에 그 효과가 끝난 데다 경제 회복에도 효과가 없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태극기 우익의 광복절 집회가 통합당 지지율 상승 분위기를 흐리는 효과를 냈다. 이 우익 군중은 수만 명 규모의 광복절 집회를 열면서 방역 지침을 완전히 무시했다. 집회 전부터 코로나 관련 거짓말을 일삼고 집회 뒤에도 방역 공무원에게 고의로 침을 뱉는 등 흉악망측한 행태를 벌였다. 거짓말을 주도하던 전광훈 등이 결국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됐다.

광복절 다음 일주일간 여론조사에서는 통합당의 지지율 상승이 주춤했다.

상반기 문재인 지지율 조사를 들여다보면, 그의 지지율이 급추락하던 7월과 8월 초에도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가 85퍼센트 정도였다(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한국리서치 합동 조사). 이런 조사는 문재인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도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 했다고 봤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재유행해 정부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자 여권이 반사이익을 다시 얻은 것이다. 여기에 태극기 우익의 행태에 대한 대중의 반감도 작용했다.

통합당으로서는 정부 책임론을 펴면서도 태극기 우익과 거리를 두는 것이 도매금으로 욕 먹는 것을 피할 방편이었다.

우익의 방역 개무시 행태는 기가 막히는 것이지만, 평범한 대중의 조건에 비춰 볼 때 코로나19 재확산의 주된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관련 기사 : 장호종, ‘코로나19 재확산, 주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7월부터 교회 방역 지침 완화, 국내 여행과 소비 활동 장려, 감염병 대응 지정 병원 해제 등으로 이미 확보한 병상을 600개 가까이 축소시키는 등 방역 대처를 완화해 왔다.

정부와 여권은 코로나 확산이 일어날 때마다 특정 집단에 책임을 전가해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매번 똑같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광복절 이후 조사(같은 기관의 같은 질문)에선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 한다는 응답이 75퍼센트로 줄었다. 이 기간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모두에서 코로나 대응을 응답 이유로 꼽은 비율이 올랐다. 지금 통합당의 지지율 수준은 일주일 만에 상승세가 주춤하지만 그래도 정부 임기 초나 지난 5~6월과 비교하면 5~10퍼센트 오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의 코로나 재유행으로 여권이 얻은 반사이익은 견고하지 못하고 일시적일 확률이 큰 것이다.

그러나 주류 양당이 모두 반사이익으로 지지율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감염병·경제 위기 국면에서 지배계급에게 뾰족한 대안이 없음을 엿볼 수 있다. 사실 경제 침체, 미·중 갈등이 초래한 경제적·정치적 문제 등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통합당, 강성 우파와 짐짓 거리두기

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과 원내대표 주호영은 광복절 집회 전부터 이미 태극기 우익과 거리두기를 해 왔다. 우파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가짜뉴스 등을 언급하지 말도록 소속 의원들을 단속해 막말 실수를 많이 줄였다. 소속 의원들이 광복절 집회에도 참가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태극기 우익과 비슷한 정당으로 보여서는 향후 선거 승리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덕망 있는 척하는 이런 행보는 특히 수도권 중도층이 문재인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그들을 흡수하려면 우파가 ‘합리적’이고 안정감 있는 수권 세력으로 보여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당의 변신 노력은 믿을 게 못 된다. 지난 4년간 공식정치에서 통합당이 민주당에 대한 상대적 열위를 면치 못하던 기간에 줄기찬 집회와 선동으로 통합당이 소생할 기회를 준 것은 거리의 강성 우익이었다.

통합당 세력은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분열과 지지율 추락을 겪으며 크게 취약해진 채 지난 4년을 보내 왔다.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둘로 쪼개지고 각자도생 식으로 나아가면서 열세를 만회하기가 힘들었다.박근혜 탄핵 직후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과 2위 홍준표의 격차는 역대 최대치였다.

심지어 2018년 지방선거 때는 대구·경북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패를 당했었다. 올해 총선에서는 득표 면에서 2년 전 열세를 상당히 만회했지만, 최종 의석수는 역시 참패를 못 면했다.

그동안 통합당 세력은 박근혜 탄핵 이후 약해진 세력을 만회하는 데에서 사실 강성 우파 지지층에 많이 의지해 왔다. 2018년 후반의 노동개악 국면, 2019년 조국 법무장관 임명 논란 국면에서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태극기 우익이 십수만 규모의 대형 집회를 열며 우파 전체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자유한국당(통합당의 직전 당명)은 박근혜의 마지막 총리였던 황교안을 대표로 세우고 범우파 집회를 함께 개최하기도 했다.

거리 우익 덕분에 박근혜 탄핵 반대파 중심의 자유한국당이 우파 지지층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개혁 보수, 중도 보수를 외치던 탄핵 찬성파들이 대부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그리고 한국당 중심의 재통합(지금의 미래통합당)이 이뤄졌다. 바로 주호영이 탈당과 복당의 경로를 밟았던 인물이다.

이제 통합당 지도부는 대선을 염두에 두면서 짐짓 친박과 강성 우파와 거리를 두고 중도층 껴안기 외연 확대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우파 회복은 문재인 정부 때문

중도파 정부가 개혁 염원을 배신하면서 우파로부터의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통합당의 신자유주의적이고 우파적인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인은 박근혜에게 경제 민주화 같은 이미지를 제공해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했던 인물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중용됐던 보수 관료 출신자이다. 주호영은 친기업 규제완화 강경파이고, 문재인 정부에 더한층의 노동개악을 요구한다. 핵발전소 옹호, 대북 적대 등에서도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

통합당의 부상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지배계급 다수의 지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더욱 우파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것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세계의 거의 모든 중도 좌·우 정당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 겪어 오고 있는 일이다.

지금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염원 배신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진보계 정당들은 거의 얻지 못한 채 보수 우파 정당인 통합당만 얻는다는 점이다.

노동계급의 대표적 조직들인 민주노총, 정의당, 진보당의 지도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맞서 만만찮게 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민주당과 거리두기 조짐이 있었지만, 코로나가 재확산되자 이후 또다시 정부에 협조하고 있다.

총선 위성정당, 노동개악 추진 등을 겪으며 민주당과의 차별화와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부 커진 듯하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할지는 불명확하다. 진보적 형태이지만 포퓰리즘 전략 때문에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와 안보라는 이중의 위기 국면에서 급진적 대안을 내놓기보다는 체제를 구하고 봐야 한다는 유혹이 매우 클 것이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며 노동절 대회 취소 등 상반기 내내 대중 집회를 열지 않으며 정부 비판 행동을 삼가 왔다. 그러나 정부와 친정부 언론, 민주노총 내 온건파들은 노사정 대표자 합의를 부결시킨 것에 앙심을 품고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로 민주노총을 방역 방해 집단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과제

지금 시기 노동운동의 과제는, 첫째,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 괜스레 문재인 정부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내비치지 말고 그저 정부의 약점과 위선, 잘못을 예리하게 폭로하기만 해야 한다. 이를 우파에 대한 비판과 폭로와 결합시켜 우파의 위선적 비난과 차별화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좌파적 견제와 대안이 강력하게 존재함을 보여 줘야 한다.

둘째, 중도파 정부가 우파에게 슬금슬금 견인돼 가는 것은 같은 사회적 기반(자본가 계급)의 영향으로 체제 수호에 같은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경쟁하는 주류 양당이 서로 상대방의 실수와 반사이익에 의존해 지지를 얻거나 잃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은 현재의 경제·안보 위기에 지배계급 자신도 신통한 대안이 없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적 지향성을 갖고 대중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특히,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각종 분열주의·종파주의를 경계하며 공동 투쟁을 구축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노동계 대표 조직들은 물론 다수의 좌파 조직들의 지도자들이 지난 수년간 좀처럼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진적인 노동자들조차 이 조직들이나 이 조직들이 주도하는 운동의 프레임으로만 보면, 할 일이 없고 무기력한 느낌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답답해 보이는 최근의 상황은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이야말로 정치 상황에 미치는 영향에서나 노동자들 자신의 의식 발전에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느릿느릿 걸어도 쇠걸음. 소수라도 혁명적 목소리를 내서 폭로와 분석·대안·과제를 제공하고 조직하는 일이 중요하다. 당장의 대중 투쟁이 없어도 혁명적 좌파는 이런 외향적 조직화를 통해서 새롭게 돌파구를 낼 기초를 기층에서 마련하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건설하면, 불안정한 정세에서 갑자기 기회가 왔을 때 신속하게 개입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 글은 필자가 8월 24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우파의 부상, 원인과 대책’에서 한 발표문을 다듬고 축약한 것이다.(온라인 토론회 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