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셴코는 우리 대통령 아니다”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시위 ⓒ출처 Artem Podrez(Pexels)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체포와 해고를 벌이고 으름장을 놓으며 저항 운동을 굴복시키려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항쟁은 여전히 결연하다. 8월 30일 벨라루스 전역에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대선 부정 이래 세 번째로 열린 주말 집회였다.

26년간 집권한 루카셴코는 8월 9일 대선에서 80퍼센트를 득표해 10퍼센트를 득표한 자유주의 진영의 상대 후보 스베틀라나 치하노우츠카야를 꺾었다고 주장했다.

8월 30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는 시위자를 엄벌하겠다는 루카셴코의 협박에도 1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시위 진압 경찰 병력과 장애물로 구축된 저지선으로 민스크 시내 곳곳이 봉쇄됐다. 구급차로 위장한 시위 진압 차량, 물대포, 군인들을 실은 버스와 병력 수송 장갑차들이 이 저지선을 지켰다.

정부는 시위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으려고 시위 전날 “예방 차원의 체포”를 단행했다.

시위 진압 경찰이 대선 직후의 후폭풍 때만큼 날뛰지는 않았다. 경찰 폭력이 낳은 참상 때문에 오히려 항쟁 지지가 늘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개별 참가자들을 잡아채려 했고 시위가 시작된 지 두 시간 만에 시위 참가자 최소 125명을 구금했다.

거리에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루카셴코의 66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이날, “심판,” “퇴진하라” 하는 구호가 대통령궁 근처에 울려 퍼졌다.

민스크 자유광장에서는 한 악단이 [빅토르 최의] ‘변화를 원한다!’를 연주했다. 이 곡은 옛 소련에서 스탈린주의 체제가 붕괴하던 시기에 시위대가 즐겨 부른 노래였다.

하루 전인 8월 29일에는 수천 명이 ‘민스크 여성 행진’에 참가해 “이 도시는 우리 것이다” 하는 구호를 외쳤다.

루카셴코는 탄압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노동자 파업 물결

8월 31일 월요일 루카셴코는 전국 70여 개 국영기업에서 일어난 파업 물결을 주춤하게 했다. 루카셴코가 보낸 깡패들이 파업위원회 지도자들을 “불법 회합”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해 갔다.

국영기업 벨라루스칼리의 탄산칼륨 광산 노동자들의 지도자 드미트리 쿠델레비치는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들이 자신을 “차에서 끌어내 수갑을 채워 승합차에 태웠다”고 말했다.

쿠델레비치는 KGB 사무실 화장실에서 창문을 타고 탈출했다.

벨라루스칼리 탄산칼륨 광산에서 일어난 파업을 보고 정권은 겁에 질렸다. 벨라루스칼리는 정권한테 가장 중요한 수출 기업이며 세계 탄산칼륨 생산의 20퍼센트를 지배한다.

작업 중단으로 생산이 최대 40퍼센트 감소했다.

정부는 민스크트랙터공장(MTZ) 파업위원회 의장 세르게이 딜렙스키와 민스크차륜트랙터공장(MTKZ) 파업위원 알렉산드르 라브리노비치를 체포했다.

8월 30일에 벨라루스 독립 노조의 국제 간사인 리자베타 메를리아크도 체포됐다. 메를리아크는 정권이 중시하는 또 다른 국영기업인 그로드노아조트의 화학 단지에서 작업 중단을 조직하는 데에 참여했다.

정부는 분노한 여론에 밀려 메를리아크를 도로 석방했다. 그러나 메를리아크는 재판에 부쳐질 것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여전히 작업장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복귀한 노동자들 일부도 생산 속도를 늦추는 소극적 저항을 하면서 다음 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그로드노아조트 노동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압니다. 우리는 작업을 멈춰야 해요. 그래야 정부가 손해를 보고, 우리를 두들겨 패는 데에 쓸 몽둥이를 사들일 수 없겠죠. 투쟁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더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비공인 파업에 루카셴코 정권을 꺾을 힘이 있다.

벨라루스 자본주의 수호에 골몰해 온 루카셴코 정권

서방이든 러시아든 모두 다 벨라루스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싶어 한다.

루카셴코는 옛 소련이 몰락하고 동구권이 1989년에 붕괴한 후에도 자유 시장 정책을 추구하지 않았다.

옛 소련과 동구권의 정권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국가자본주의였다. 지배계급인 국가 관료들은 국제 무대에서 경쟁자들을 이기려고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러시아나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루카셴코는 국가자본주의의 기반 산업 상당 부분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루카셴코는 자유 시장이 자신의 통치를 불안정하게 할까 봐 두려워했다. 루카셴코는 대량 실업을 완화한 덕에 대중적 지지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루카셴코가 중시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벨라루스 자본주의의 안정이었다.

2000년대 이후 루카셴코는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고용 조건 계약 방식을 바꾸는 등 몇몇 자유 시장적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정점이 모종의 노동연계복지 제도인 “사회적 기생충세(稅)”였고 이것은 2017년에 저항을 촉발했다.

이런 개혁은 경쟁하는 제국주의 세력들인 미국·유럽연합·러시아 사이에서 벌이는 줄타기의 일환이기도 했다. 루카셴코는 시장 개혁이 서방의 투자를 끌어들이고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줄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러시아 자본 또한 벨라루스의 국영기업들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리고 러시아 국가가 루카셴코 정권의 생존에 일조한다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은 벨라루스의 국가 자산을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요구할 것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사이에 낀 벨라루스 ⓒ제작 <노동자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