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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K방역:
노동자 일 시키는 건 안 건드린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코로나19 확진자 인공호흡기나 산소치료가 필요한 위중·중증 환자가 2주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출처 인천소방본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 재확산이 장기화되고 있다. 8월 14일 처음 확진자 수가 100명을 넘은 뒤 9월 2일까지 매일 2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생기고 있다. 이 기간에 추가된 확진자만 5679명으로 전체 누적 확진자의 4분의 1이 넘는다.

확진자 중 특히 노인 비중이 늘면서 위중·중증으로 발전하거나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환자 병상과 전문 인력 부족이 너무 심각해 방역 당국 스스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을 정도다. 집단감염이 최소 17곳 이상이고 신규 확진자 중 감염 경로를 확인하지 못한 확진자가 20퍼센트를 넘어 방역당국의 추적 시스템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8월 16일부터 거리두기를 2단계로 상향해 위험시설로 분류된 유흥주점 등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기존에 위험시설로 분류된 물류센터의 운영은 유지시켰다. ‘경제’(기업 이윤)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였다.

확산세가 꺾이지 않자 8월 29일부터는 각종 음식점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카페 등의 매장 영업을 중단시켰다. 수도권에서는 고3 수험생을 제외하고 모든 학교에서 등교가 중단됐다. 이른바 ‘2.5단계’이다. 이미 모든 기준이 3단계로의 상향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공장이나 사무실 등 기업 활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만은 피하려는 조처였다. 3단계에서는 필수 유지 인원을 제외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재택근무가 권고된다.

재택 근무

코로나 재확산 속에서도 출근하는 쿠팡 노동자들 ⓒ조승진

재확산이 얼마나 오래갈지, 확진자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일상’을 보내는 공장과 사무실이 대부분 가동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콜센터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듯, 많은 기업에서는 작업장 내 거리두기를 지키기도 쉽지 않다. 애당초 노동자들의 위생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작업 공정 때문이다.

기업주들은 나름 방역에 신경을 쓰기도 하는데, 사업장 가동 중단 사태만은 피하고 싶어서다. 일부 대기업들은 가능한 수준에서 재택근무로 전환해 기업 내 확산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러나 재택근무도 순전히 기업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사무실 출근은 안 하지만 출장은 다녀야 한다. 집에 머무르니 아이를 맡기기도 어렵고 출퇴근 시간이 사라져 오히려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각종 집안일을 다 맡아해야 하는 부담은 커졌다.

결국 현장근무든 재택근무든 그 부담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다. 등교가 중단됐는데 돌봄서비스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많은 노동자들이 아이들을 집에 남겨둔 채 출근해야 한다. 학교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부 지역의 경우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조부모 등 가족이 돌봄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형편이다. 그조차 없는 경우 속수무책이다.

반년 전에 겪은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방역당국은 ‘언제든 재확산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지만, 아무 대비도 갖춰 놓지 않은 것이다.

생계 지원

정부는 각종 음식점·카페 등에 영업 중단 명령을 내렸지만 이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대책은 없다. 이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실상 해고나 무급휴직 상태에 놓였다. 소규모 자영업자는 대부분 노동계급의 가족이거나 과거에 노동자였거나 앞으로 노동시장에 편입될 사람들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거리두기로 인한 부담이 노동계급에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경기 후퇴를 막아야 한다며 우는 소리를 하지만 진정으로 보살핌을 받는 것은 기업주들뿐이다. 정부는 지난 4월에도 기업들에는 수십조 원을 지원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달랑 30~40만 원의 재난지원금과 휴업·휴직 수당 정도(이조차 정부는 기업주를 통해 지원했다)를 지급했다.

코로나 재확산이 반복되면서 일자리가 줄고 무급휴직 기간이 길어졌지만, 정부는 2차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 요구를 ‘철없는 소리’로 치부하고는 지원 결정 자체를 차일피일 논의를 미루고 있다. 여당 내에서는 선별 지급하자는 의견이 다수로 보인다. 지난번에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사실상 4월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선거용이었다는 지적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코로나 이전에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아예 없던 일 취급하고 있다. 경제 위기 앞에서 문재인 정부는 기업 이윤을 최우선으로 지키려 한다.

악몽의 반복

이번 재확산이 언제 진정될지는 알기 어렵다. 앞으로 1~2주는 정부가 거리두기 ‘완화’를 저울질하는 기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착시 효과를 악용해 확진자 증가 추세가 충분히 안정되기 전에 거리두기를 완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반대해야 한다.

거리두기로 인한 고통이 노동계급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정 기간 거리두기를 3단계로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은 정부가 일부 업종만 영업을 중단시키면서 아무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거리두기를 3단계로 상향하면 정부가 대부분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니 그 책임 소재와 지원의 필요성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라도 단계 상향을 꺼린다.

설사 이번 재확산이 진정되더라도 제대로 된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크고 작은 재확산이 거듭될 것이다. 그중 일부는 이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우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개발 중인 백신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뿐 아니라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플루엔자처럼 매년 한 차례 백신으로 마스크를 벗고 살아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되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 가족은 엄청난 충격을 겪지만 보상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감염 위험과 해고 위협, 소득 절벽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울분이 쌓여 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업과 정부의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재확산의 책임을 돌리려 애쓰는 것도 이런 울분이 정부를 겨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전광훈 일당 등이 코로나 감염 확산을 음모로 치부하며 방역을 방해하는 것은 기가 막히고 울화가 치밀게 한다.

코로나 위기에도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고, 투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