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8월 30일 당대회(온라인 진행)에서 혁신위원회가 제출한 혁신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조기 당직 선거를 9월에 실시하기로 확정했다.

혁신위원회는 심상정 당대표가 총선 실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조기 사퇴하는 대신 정의당의 재도약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설치한 기구다.

혁신위원회는 석 달가량 논쟁을 거치면서 가다듬은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당 지도체제 변경과 강령 개정 방향(권고)이다. 당대회는 거의 그대로 통과시켰다.

8월 13일 정의당 혁신위원장을 맡은 장혜영 의원이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정의당

정치적 지향성

올해 총선에서 정의당은 이전 의석과 같은 6석을 얻었다. 의석수는 제자리 걸음을 했지만 득표는 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비례 투표에서 정의당 역사상 최대인 약 270만 표를 얻었다. 4년 전에는 170만 표를 얻었다.

정의당은 선거제 개정으로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지위 차지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선거제 개정을 위해 민주당과 유착하는 바람에 노동계 진보정당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손해가 됐다. 선거에서의 득실을 제1기준으로 삼고는, 진보정당이 힘을 키우려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에 기댔는데, 그 결과는 선거 성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특히, 민주당이 정당비례 투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은 뒤통수를 맞았다.

정의당은 선거제 개정을 민주당의 힘을 빌려 이루려고 하다가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됐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 배신과 개악을 선명하게 비판하지 않았고, 조국·윤미향 등 민주당 정치인들의 부패와 위선에도 비슷한 태도였다.(노동계의 다른 대표적 조직들인 민주노총과 진보당도 문재인 정부에게서 독립적이지 않았다.) 코로나 국면에서도 정부와의 협력을 중시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은 진보 염원 대중에게 뚜렷이 제시되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민주당과 통합당 등 주류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꼼수에 반격을 가할 힘이 별로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국회에서, 정의당 내에서 정부와의 협력 노선과 선거제 개정을 앞장서 주도한 것이 심 대표였다. 물론 그가 대표 사퇴로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은 (리더 개인의 책임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조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총선 이후 제대로 된 정치적 평가와 그에 따른 노선 전환이 거론되는 것은 불가피하고 필요했다. 민주당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저마다 강도나 이유는 달라도 정의당 내에 형성된 듯하다.

그러나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 실세 그룹과 관계가 매우 밀접한 친노 그룹 인사들이 창당 주역의 일원이고, 그래서 친문 성향 당원들이 당 기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정의당 창당 주역인 유시민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의당을 탈당했지만 여전히 당 안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유시민은 조국의 부패를 앞장서서 옹호했고, 청와대를 수사하는 검찰을 비난하는 데 앞장섰다. 본인도 부패 의혹을 받고 있다.

정의당의 정치적 지향성 전환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정의당이 노동계 진보정당으로서 선명성과 정체성을 강화하려면 간부층과 재정 후원자 면에서 교체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결국은 정의당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냐는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누구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은 혁신안의 강령 개정 방향에도 드러나 있다. “개정 강령은 정의당이 누구의 곁에 서야 하는지 보다 분명하게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혁신안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목표로 한 현재의 강령이 “현재의 인류와 한국 사회가 마주한 정치·경제·사회·환경 전반의 위기와 변화된 세계질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급변하는 정세를 반영한 적극적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업데이트의 필요성은 단지 시의성에 그치지 않는다. 현 시기 위기가 심각해 더 급진적인 강령이 필요하다. 혁신위원회는 정의당의 현 강령을 “이전까지의 진보의제를 가장 온건한 수준에서 집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 강령은 체제 내 개혁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자본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며,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개혁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혁신안은 자본주의 비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소득 불평등, 자산 불평등, 빈곤 및 이를 영속화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과 이를 넘어설 새로운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을 담아야 합니다.” “탈자본주의 대안사회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자”는 제안도 한다.

그러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이지만 객관적 위기에 조응하기에는 여전히 온건해 보인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하자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고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한편, 혁신안이 가리키는 전략 방향은 각 사회운동과 정의당을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노동과 생태, 젠더를 비롯한 다양성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이 진보의 핵심 가치라는 인식을 담아야 합니다.” 정의당으로 사회운동이 수렴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령 개정 방향이 무난히 통과됐지만, 강령 개정 방향에서 혁신안이 제안한 상대적 급진성이 정의당의 실천에 얼마나 구현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강령은 매우 추상적인 진술이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실천은 정책 대안과 개혁입법을 거의 배타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존 정의당 노선에 대한 구체적이고 엄정한 평가 없이 우회적으로 강령 개정 방향에만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의원단 중심

정의당의 혁신위 운영과 혁신안 마련은 조기 당직 선거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이번 당대회가 통과시킨 혁신안은 9월에 선출될 차기 지도부가 집행하게 된다.

이 점에서 9월 선거와 함께 지도부 개편안도 주목된다. 핵심은 당대표가 가지는 권한이 대표단 회의로 일부 이관된 것과 부대표가 3명에서 5인으로 늘어난 것이다. 소위 집단지도체제 형식을 가미하며 지도부 구성원을 늘린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지도력이 그동안 당대표에게 집중돼 있었던 것은 당헌·당규 때문은 아니다. 정의당이 상층 지도자들(특히 의원단)의 의회 대응에 중심을 두는 정당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당내 주도력은 의원단에서 나왔다. 당의 실천도 입법안 마련과 그 홍보가 주된 것이었다. 이는 당 내에 사회민주주의 정당 특유의 조직구조와 정치문화를 형성케 했다. 이번 혁신위원장도 현역 의원인 장혜영 의원이 맡았다.

이런 조직구조와 정치문화 하에서는 의원단이 당을 주도하고, 의원단의 일원이 당대표를 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 정치를 하는 것으로 비쳐지게 된다. 짧은 역사 속에서 정의당 당대표는 거의 언제나 현역 의원 몫이었다. 의원단 안에서도 지역구 다선 의원의 영향력이 커진다. 각 계파들도 의원 배출에 거의 전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그렇게 정치협상가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정치협상이 중시되는 것은 정의당의 실천과 정치문화가 기존 사회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인정받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기사를 발행하는 9월 2일 저녁까지) 전 의원들이 엘지유플러스 같은 대기업의 자문이 되거나(추혜선), 문재인 청와대의 비서관으로 들어가도(김제남) 공개적 비판이 전혀 없다.

기층에서 운동을 건설하는 활동가층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고, 조직노동 기반이 과소대표된다. 차기 지도부 선거에서 좌파가 약진하리라는 기대가 크지 않은 이유이다.

의회 중심주의와개혁주의가 극복돼야 하는데, 그 물질적 토대와 기본 원칙을 고려하면 정의당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정의당의 기반은 기층 노동자들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진보적 지식인층)이고 기본 원칙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이용한 국가와 사회의 개혁이다.

부대표가 5인으로 늘면서 달라진 것은 30퍼센트 여성할당제에 따라 여성 몫 부대표 두 자리가 새로 확보된 것이다. 기존의 청년(부대표) 몫은 청년정의당을 만들어 청년정의당 대표가 대표단 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해결했다. 노동의 과소대표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당원 가입 후 6개월 동안 당비를 내야 당권을 주는 안도 통과됐다. 공직자 선출을 앞두고 페이퍼 당원 가입 부작용을 막자는 방안인데, 헤아려지는 면도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를 중시하는 당의 수세적 정서를 드러낸 것일 수 있다.

요약하면, 정의당은 이번 당대회에서 민주당과의 차별화와 당내 리더십 혁신을 의도한 혁신안을 통과시킨 듯하다. 반성으로서 필요한 출발이다. 그러나 객관적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대로 조응하지 못한 약점을 극복하기엔 혁신안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는 노선의 실패와 부작용을 구체적이고 예리하게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한 점, 경제·코로나 위기 속에서 고통 전가에 반대하는 대중 투쟁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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