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올해 고용보험 개혁 방향을 논의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실업보험 개혁을 칭찬하며 벤치마킹하려 한다. 일부 진보·노동단체들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활동가인 세드릭 픽토로프는 마크롱 정부의 실업보험 개혁은 미사여구와 달리 심각한 후퇴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현재 프랑스의 실업보험은 개악을 거듭해 지난 30여 년 중 최악이다. 그래도 아직은 한국보다 보장성이 크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와 한국의 실업보험 개혁은 모두 같은 동역학을 따르고 있다. 바로 노동에서 자본으로 더 많은 가치를 이전시키는 것이다.

프랑스 실업보험은 주로 사회적 임금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국가가 (공공부조 원리에 따라) 부담하는 몫은 갈수록 줄어든 반면, 사회적 임금 몫(사회보험 원리에 따라 노동자와 사장이 기여금을 내는 것)은 갈수록 늘었다.

실업보험은 국가와 사용자 단체와 노조 간부, 이렇게 삼자가 관장하는 구조로 시작했다. 이른바 “사회적 동반자” 모델이다. 실업보험의 보장성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는 1979~84년이었다. 급여액이 많고 지급 기간이 길었으며 지급 기준도 까다롭지 않았다.

그 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실업보험이 개악됐다. 처음 공격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경제 위기 시기 사회민주주의 정부 하에서였다. 최근에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만 4번의 개악이 있었다.

지난 35년간의 실업보험 개악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째, 실업자를 세분화해서 수급자 권리에 차등을 두고, 수급 신청 조건을 까다롭게 하기. 둘째, 사장들의 기여 몫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보험기금 수입이 줄었다며 수급자 권리 축소하기. 셋째, 급여액을 깎겠다고 협박하며 실업자들이 저질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사용자들의 공격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거듭 후퇴했다. 그 결과 실업보험은 실업 위험에 대비한 사회화된 보험 체계로서의 성격이 점점 줄어들었고, 노동자들을 갈수록 더 적은 급여로 버티게 하는 제도가 됐다.

최근 마크롱 정부가 추진한 실업보험 개혁은 이전의 어떤 개혁보다 큰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이런 변화가 진보라고 홍보한다. 최근 경제·고용 변화에 맞춰 실업보험 적용 대상을 프리랜서나 자진 퇴사자 등으로까지 확대하고, 재원 조달 체계를 개혁해 임금 인상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신규 가입자는 거의 늘지 않고 수급자 권리만 약화돼

그러나 마크롱의 실업보험 개혁이 진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첫째, 이른바 “사회적 동반자” 모델은 폐지됐다. 노동자 단체는 실업보험 운용에 더는 관여하지 못하고 정부는 행정명령만으로 어떤 변화든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실업보험을 더는 사회적 임금이라고 보기 어렵게 됐다. 노동자들이 내는 보험료를 없앤 대신 보편적 세금으로 대체됐는데, 사용자들은 세금을 가장 적게 낸다. 이것은 국가에 의한 기본적인 구빈 대책 논리로 회귀하는 것을 예고한다.

셋째, 수급자 권리가 매우 약화됐다. 개혁 단행 이후 정부가 내린 세 차례 행정명령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1) 구직 활동이나 관련기관 규율에 복종하기 등 이른바 “책무”를 다하지 않은 실업자들에게 전보다 훨씬 많은 제재가 가해진다. (2) 수급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더 짧은 기간 안에 더 오래 일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원래는 실업 전 28개월 중 최소 4개월을 일해야 했는데 이제는 24개월 중 최소 6개월을 일해야 한다.] (3) 수급액이 대폭 줄었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시행이 9월로 미뤄졌지만 말이다. 특히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단기 계약, 파트타임, 빈곤층 노동자들)의 수급액 감소폭이 가장 크다. 이런 노동자들의 비중이 지난 몇 년 동안 극적으로 늘었는데 말이다.

요컨대 보험료를 없애 임금이 늘어나는 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 전체 노동계급 입장에서 보면 수급자 권리가 크게 약화된 것이다. 프랑스 실업보험은 전례없이 권위주의적인 제도가 됐고, [기여에 따라] 수급 권리를 획득한다는 원리는 사라졌다. 마크롱은 실업보험 적용 대상 확대를 진보로 내세웠지만, 실업보험 신규 가입자 비율은 쥐꼬리만큼 늘었을 뿐이다.

마크롱의 실업보험 개악은 전체 복지제도 개악의 일환으로, 노동에서 자본으로 가치를 이전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미래에 그러한 이전을 더 많이 더 쉽게 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이기도 하다. 이윤율이 떨어지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말이다.

당연하게도 많은 노동자와 진보적 단체들이 마크롱의 실업보험 개악에 반대하고 있다. 실업자들이 원자화돼 있어 저항을 조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고무적인 일도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 탓에 고용과 실업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처지인 불안정 노동자들이 실업보험 개악에 맞서 스스로 조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 말까지 실업자가 100만 명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어서 실업보험 개악에 맞선 투쟁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