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캐나다의 반세계화 이론가인 미셸 초스도프스키가 한국을 방문해서 1백 명이 훨씬 넘는 한국의 반세계화 활동가들에게 연설했다. 초스도프스키는 '글로벌 리서치'라는 좌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글로벌 아웃룩》이라는 부정기 간행물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초스도프스키는 《빈곤의 세계화》(1997. 국내에도 번역됨)와 《전쟁과 세계화》(2002) 외에 많은 글을 썼지만 그의 주장의 핵심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첫째, 초스도프스키는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과 소수의 초국적기업이 세계를 "재식민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IMF나 WTO 등 국제기구들을 이용해서 제3세계의 국내 경제를 파괴한다. 이 때문에 "내국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은 토대 자체가 흔들리고 국내기업들은 도산의 벼랑에 몰린다. … 국내소비의 축소는 곧 그에 상응한 노동비용의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제3세계 국가는 "민족 자본주의" 혹은 "민족경제"를 발전시킬 기회를 박탈당한 채 선진국을 위한 값싼 제조품을 생산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선진국은 대부분의 제조업("물질적 부분")을 제3세계로 이전시킨 후 서비스업 등 "비물질적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둘째, 초스도프스키는 9?11 이후 전쟁과 재식민화의 관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재식민화의 경제적 목적이 다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선진국과 제3세계 간 물질적/비물질적 분업 대신 "부유한 서구 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는 동안, 빈국들은 제조업 소비재를 생산하는" 새로운 국제 분업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의 맥락에서 재식민화의 대상이 제3세계 약소국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뒤에 숨은 목적은 … 중국뿐 아니라 구소련 블록 … 인도마저 재식민화하는 것이다."

초스도프스키의 주장들에는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는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지치지 않고 폭로한다. 동시에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작동과 전쟁 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연결시켜 사고한다. 그는 많은 자료들을 두루 섭렵하며, 그의 글들은 매우 훌륭한 폭로로 가득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의 주장이 상당한 정치적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그의 경제적 분석은 때때로 조야한 '탈산업화' 논의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제3세계로 체계적인 생산 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례로 2000년 미국 다국적기업들의 생산 중 76퍼센트가 미국 국내에 집중돼 있었다. 1980~90년대 자본의 주된 이동 방향은 선진국에서 제3세계로가 아니라 선진국 내부였다.

둘째, 초스도프스키가 사용하는 '재식민화'라는 개념은 미국 제국주의의 힘을 과대 평가하는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리스 하먼의 지적처럼, "오늘날 제국주의 지배 구조는 옛 유럽 제국들과 다르다 …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각국은 저마다 독자적인 무력 독점기구, 조세 제도, 정부 지출 할당 제도, 그리고 자본가 계급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네오콘의 전략은 세계의 식민화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대를 이용해서 자신의 주요 경쟁자들에게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네오콘의 주요 사상가인 마이클 러딘은 "세계에 미국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미국은 매 10년마다 시시한 나라를 골라서 벽에 던져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초스도프스키는 미국과 프랑스·독일 연합 사이의 군비 경쟁을 언급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주의를 세계적 경쟁 체제라기보다는 '슈퍼 제국주의'(초스도프스키 본인은 이런 단어를 사용하진 않지만) 미국의 일방적 지배 의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초스도프스키는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들에 대해 환상을 부추기진 않을지라도 두둔하거나 면죄부를 주곤 한다.

일례로 그는 '민족'이란 단어를 그토록 중요시하지만, 동시에 체첸과 신장의 소수민족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것이 러시아와 중국 등의 '민족사회'를 뒤흔들어 미국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온갖 자료를 방대하게 인용하곤 하는 초스도프스키가 이들 사례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정보기관들의 자료를 인용하는 것을 보면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초스도프스키의 '슈퍼 미국'론은 결국 음모론으로 향한다. 미국이 워낙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중요한 사건들 뒤에서 미국의 숨은 의도를 본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을 잠식하기 위해" 1980년대 미국이 만들어 낸 것이며, "9·11 테러분자들은 그들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그 자살납치범들은 조심스럽게 계획된 정보작전의 도구였던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이 20세기 초반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IMF 위기도 "미국 정부와 자본에 의해 면밀하게 주도된 … 정치·경제적 음모와 조작"이었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가 한국의 IMF 위기를 이용해 '남는 장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가 이미 이윤율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발생했지, 단순히 누군가의 음모 때문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위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인도네시아·러시아로 이어진 세계적 위기의 일부였다. 이것은 미국 경제를 포함한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날릴 가능성도 있었다. 오죽하면 당시 조지 소로스가 "세계 자본주의가 거덜나고 있다"고 걱정했겠는가? 

마지막으로, 초스도프스키는 세계적 빈곤과 전쟁의 원인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나 미국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주로 미국 지배계급 내 일부 분파에서 찾는다.

그는 《빈곤의 세계화》에서 월스트리트 등 "금융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쟁과 세계화》에서는 군산복합체와 석유재벌을 추가했다.

따라서 초스도프스키가 빈곤과 전쟁을 없애기 위해 이들을 제외한 "모든 나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광범"한 계급 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연합해서 성취해야 할 사회는 '민족경제' 혹은 '민족자본주의'다. 

그러나 1930~60년대 수입대체공업화를 추구했던 라틴아메리카의 포퓰리즘 정부를 포함해서 과거 민족자본주의를 위해 만들어진 계급연합은 결코 괜찮은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어쩌면 초스도프스키는 마오 시대 중국을 모델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1986년 출판한 《자본주의의 부활? 마오 이후의 중국 사회주의》라는 책에서 "제3세계에서의 진보적인 경제적 사회변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중국 사회주의는 도시와 농촌의 대중들이 빈곤, 사회적 고통과 억압을 극복할 수 있는 모범을 보여 줬다"고 찬양했다. 

라틴아메리카의 포퓰리즘 지배자와 마오시대 공산당 관료들은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졌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민족경제(혹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농민들을 쥐어짰다. 사실 달리 돈이 나올 곳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 사회는 결국 경제성장도 지속하지 못했고, 세계시장에 문호를 개방했고, 포퓰리즘 지배자들과 공산당 관료들은 신자유주의자로 변신했다.

아마 초스도프스키는 오늘날 존재하는 13억 명의 절대빈곤 인구와 전쟁·가난·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매년 죽어 가는 1천8백만 명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제는 더는 민족적 울타리로 둘러싸인 사회도, 자본주의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계급연합은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된다.

현존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초스도프스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성취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지도, 그것을 꿈꾸지도 않는다.

20년 전에 그는 중국을 어쨌든 사회주의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지했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 마오쩌둥을 지지한 스탈린주의자에서 점차 개량주의자로 변신해 온 듯하다.

그의 방한 강연은 활동가 청중에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사실들은 잘 폭로했음에도 대안은 미로로 빠지는 것을 제시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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