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기본급을 동결하기로 사측과 잠정 합의했다. 성과급, 격려금 등의 내용까지 종합해 보면 임금 총액이 수백만 원 삭감된다.

잠정 합의안에는 기업 경쟁력을 위해 노사가 협력하겠다는 선언도 포함됐다. 생산성·품질 향상을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하락시키고 현장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내용이다.

잠정 합의안이 나온 직후, 주류 언론들은 현대차 노조가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국가 경제와 기업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결단을 내렸다고 추켜세웠다.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의 송철호 울산시장도 2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라는 “반가운 선물을 받았다”고 반겼다.

양보는 노동조건과 일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8월 13일 마주 앉은 현대차 노사. 한달 뒤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 동결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을 잠정 합의했다 ⓒ출처 현대자동차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현대차 수석부회장 정의선은 올해 상반기에 연봉이 12.5퍼센트나 올랐다. 현대차의 현금 보유액은 지난해 말 8조 6820억 원에서 지난 6월 10조 8838억 원으로 25.4퍼센트나 늘었다. 사내유보금도 140조 원이 넘는다.

더구나 잠정 합의안이 나온 바로 그날 SK증권은 3분기 현대차의 영업실적이 전년 대비 187.3퍼센트 증가한 1조 1000억 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가는 5년 9개월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이는 바이러스 감염 위험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뼈빠지게 일해서 만든 성과이다.

올해 들어서도 노동자들은 거듭 희생을 강요 받았다. 부품 수급 차질 등으로 휴업할 때는 임금이 삭감되고, 일감이 몰릴 때는 노동강도가 세지고 특별연장근로까지 해야 했다. 변속기와 배송·출고센터 등의 노동자들은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최대 주당 60시간까지 일했다. ‘품질 향상’, ‘기초질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 속에 현장 통제가 강화되고 노동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외주화, 모듈화 시도도 잇따랐다.

요컨대, 사측은 “고통 분담” 하자더니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자기 배만 채웠다. 그리고 이제는 위기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노동자들에게 임금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이런 사측에 협조해 양보안에 잠정 합의한 것은 결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다. 이상수 지부장은 “악조건 속에 이뤄 낸 최선의 성과”라고 말하지만, 경제 위기 속에서도 사측은 충분한 지불 능력이 있고 노동자들은 희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적잖은 현대차 노동자들은 노조가 싸워 보지도 않고 양보부터 한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상수 집행부는 이미 지난 4월 고용을 지키기 위해 임금을 자제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으며 임금 투쟁의 김을 빼 왔다. 6월에는 “품질 향상과 코로나19 위기 극복 노력에 적극 앞장서겠다”는 내용의 노사 공동 선언에 합의했다.

이번 잠정 합의에도 앞선 제안·합의와 같은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즉,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투쟁해도 실익이 없고 오히려 회사 살리기에 협력(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정 합의안이 특히 고약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용자들과 보수 언론은 경제 위기 시기에 현대차지부 같은 대형 노동조합이 사측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전체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압박해 조건을 악화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일찌감치 노사정 합의를 이용해 작업 현장 차원으로 노사 협조주의를 확산하고자 해 왔다.

계급 협조가 낳는 문제점

물론,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사가 서로 협력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을 만들자는 것은 공상이다. 특히 지금처럼 불황기에 사용자들과 정부는 어떻게든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대가를 짊어지게 하려고 한다. 노사 협조가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강화로 이어지게 되는 이유이다.

그 점에서 당장의 임금을 양보해서 “미래 발전”과 “고용 안정”을 지킬 수 있다는 현대차지부 집행부의 주장은 헛된 기대이다.

노동자들의 양보는 결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노조의 임금 양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거듭된 양보 압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현대차 사측도 벌써 몇 년째 ‘올해가 어렵다’, ‘특별히 올해는 더 어렵다’ 하면서 임금 수준을 억제해 왔고, 급기야 올해는 2009년 이후 11년 만에 기본급 동결에까지 이르렀다(임금은 지난 수년간 삭감돼 총액으로 보면 2009년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노조가 이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하지 않고 2년째 무쟁의로 후퇴를 수용해 온 것이 특히 문제를 키웠다. 그럴수록 노동자들도 사기가 꺾이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이번 잠정 합의안에는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는 내용들도 포함됐다. 이 또한 지난 몇 년간 집행부가 양보를 거듭하면서 계속 후퇴해 온 것들이다. 가령, 품질 향상을 위해서라면서 ‘적기 생산’에 매진한다거나 신차 생산 일정에 협력한다는 등의 내용이 그렇다. 노동강도, 인력 충원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현장 투쟁이 벌어져 생산이 지연되는 것을 제어하려고 사측은 이런 요구를 해 왔다.

반면, 잠정 합의안에 담긴 고용 안정 약속은 모호한 말뿐이고 현재의 단체협약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수준이다. 노조 집행부는 매년 1000여 명 넘게 생기는 인력 감축(정년 퇴임자 자리를 신규 채용하지 않는 것)을 사실상 수용하고 있고, 야금야금 확대되는 전환배치, 공정 축소, 외주화에도 저항하지 않고 있다.

결국 노동조합의 양보는 노동조건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해롭다.

부품사·하청 노동자를 위한다는 거짓말

현대차지부의 무분규 임금 동결 합의는 중소 부품·하청사 노동자들, 제조업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임금 삭감을 압박하는 지렛대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이상수 집행부는 경제 위기와 구조조정에 신음하는 중소·영세, 부품협력사 노동자들과의 “동반 생존”을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진정 이 노동자들을 생각했다면 양보가 아니라 투쟁의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반대로 현대차지부 같은 대기업 노조가 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면, 부품·하청사 노동자들도 희생을 강요 받기가 쉽다.

2018~2019년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매우 낮은 수준의 임금 인상(임금 총액은 거의 동결)을 받아들였을 때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자동차 산업 전반의 임금 수준이 하락했고 부품·하청사 노동자들의 조건도 크게 제약을 받았다. 부품사 노조들은 일명 “양재동 가이드라인”(현대차 임금 가이드라인)에 가로막혀 임금 투쟁이 더 어려워졌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나마 2018년에 현대차지부가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얻었다던 현대차 사측의 부품·하청사 지원도 수백억 원 수준으로 꾀죄죄했다. 특히 그 돈이 부품·하청사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번 잠정 합의안에도 현대차의 “부품사 상생 지원”이 포함됐지만 노동자들의 조건·고용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말은 없다.

무엇보다 부품·하청사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공격에 잘 맞설 수 있으려면, 경제 위기 하에서도 투쟁해서 조건을 방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제시돼야 한다. 그 점에서 현대차 노동자들이 사측에 협력하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맞서 조건을 방어하면,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원청사 노동자들이 연대 투쟁에 나선다면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현대차지부 집행부의 임금 양보는 현대차 노동자들에게도, 부품·하청사 노동자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진정 필요한 일은 노동자들의 양보나 위기 극복 협력이 아니라,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단호히 맞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