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인종차별 박살내자” 네 달째 굳세게 행진하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 9월 26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시위 ⓒ출처 Anthony Crider(플리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든 지 넉 달이 지나도록 미국 곳곳에서는 시위가 이어졌다.

운동이 분출한 뒤 정확히 네 달이 지난 9월 26일에는 켄터키주(州) 루이빌에서는 흑인 여성 브리오나 테일러를 살해한 경찰관들이 사실상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이 시위는 대배심 결과가 나온 23일부터 나흘 연속으로 계속되고 있다.

시위가 격화하자 정부는 통금령을 내렸지만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행진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자, 시위대는 인근 교회에서 농성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뉴욕시에서는 주방위군 소속 블랙호크 헬리콥터가 시위대 상공을 위협적으로 비행하는데도 수천 명이 브롱크스·퀸스 도심을 행진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민주당 주지사 케이트 브라운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무장 부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9월 27일에는 시위대가 아침 일찍부터 경찰과 충돌하며 온종일 도심 곳곳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분노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다. 워싱턴 DC 시위에 참가한 19세 남성 마이클은 외신에 이렇게 전했다. “테일러 살인범들에 관한 결정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뺨을 때리는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흑인들, 갈색인들, 우리 모두 이런 부정의와 모욕에 진저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들은 지난 넉 달 동안 미국에서만 1만 건이 훨씬 넘게 벌어진 시위 물결의 일부다. 이제껏 미국의 도시·마을 열 곳 중 네 곳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수천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긴장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운동이 시작됐을 때 “약탈이 시작될 때 [경찰의] 총격도 시작된다”고 을러댔고 지금도 여전히 역겹게 대응하고 있다.

9월 25일 트럼프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유세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수많은 흑인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자신이야말로 “흑인들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경찰의 인종차별적 흑인 살해를 문제 삼기 무섭게 폭동진압법을 들먹이고 “총격을 시작”하려 했다. 9월 중순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워싱턴주 주방위군 소령 애덤 디마르코에 따르면, 이미 6월 1일에 총탄을 최대 7000발 비축하고 최첨단 시위 진압 무기를 확보하라는 명령이 주방위군에 떨어졌다. 

정부는 “법질서 회복” 운운하며 운동을 범죄시해 국면을 돌파하려 한다. 뉴욕시 동부지검은 지난 5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참가해 빈 경찰차에 화염병을 던진 시위대 두 명에 종신형을 구형했다. 9월 24일 법무부는 29개 주에서 시위 참가자 300명여 명을 연방범죄로 기소했다고 발표했으며, FBI는 지난 네 달 동안 시위 참가자 약 1만 360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9월 21일에는 트럼프의 법무부 장관 윌리엄 바가 직접 나서서, “무정부 상태를 진압하지 않는” 지방정부에 연방정부 재정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했다. 바가 거론한 뉴욕, 시애틀, 포틀랜드 세 곳은 지난 네 달 동안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가장 강력하게 벌어진 대도시들이다.

9월 23일에 시위가 다시 분출한 후에는 오리건, 켄터키, 미주리 세 곳에서도 주지사들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주방위군 투입 시점을 가늠하고 있다.(이 중 오리건·켄터키는 주지사가 민주당원이다.)

이런 강경 대응은 강경 우파와 극우를 고무하고 있다. 이들은 대선 사전 투표가 시작된 투표소 앞에 운집해 바이든에 투표하려는 사람들을 위협하며 유세를 벌였고, 9월 26일에 포틀랜드에서 극우 단체 ‘프라우드 보이즈’가 수백 명 규모의 거리 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해 몇몇 곳에서 집중 집회를 벌였다. 포틀랜드에서는 우익 시위대가 맞불 시위대와 충돌을 감행하며 날뛰었다.

포틀랜드주립대학교 교수 알렉산더 레이드 로스는 지난 넉 달 동안 극우가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한 위협 행위를 560건 이상 벌였다고 추산했다.

정부만 이들을 고무하는 것이 아니다. 공화당은 테일러 살해 경찰에 면죄부가 내려진 바로 다음 날인 24일에 위스콘신주에서 여성 당원 만찬을 열고, 카일 리튼하우스의 어머니 웬디 리튼하우스를 빈객으로 초청했다. 카일 리튼하우스는 위스콘신주 케노사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에 자동소총을 발사해 시위대 두 명을 살해한 17세 극우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은 운동과 거리를 두며 “질서 회복”을 부르짖고 있다. 루이빌 등지에서 시위가 발발한 직후, 바이든은 “폭력 시위로 테일러 어머니의 기억을 더럽히지 말라”며 시위대를 비난했다. 바이든은 미국 주류 언론들의 “법질서 회복을 더 잘 할 수 있음을 보여 주라”는 부름에 부응하려 하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바이든은 줄곧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거리를 둬 왔고, 운동의 요구에 반대해 온 카멀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런 행보는 부정의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이든이 바랄 선거 결과에조차 도움 되지 않을 듯하다.

바이든에 투표하겠다는 사람 중에 후보의 면면이 좋아서 지지한다는 사람이 7퍼센트를 약간 넘고, 정책이 좋다는 사람도 9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바이든을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고 (옳게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2004년 대선 결과를 돌아볼 만하다. 당시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강력하게 분출해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고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을 역대 최악에 가깝게 떨어뜨렸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는 자신이 부시보다 이라크 전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나섰고, 미국 대중의 실망을 사 큰 표차로 낙선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적잖은 미국의 반전 운동가들은 “부시만 아니면 누구든”이라는 생각에 케리를 지지하고 반전 운동을 잠시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제국주의와 어깨를 겨루는 수퍼파워’라고까지 일컬어지던 반전 운동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고, 미국에서 운동은 분열했다. 기사회생한 부시는 이라크를 계속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단호하게 계속 싸워야

지금 미국은 2004년보다 위기와 긴장이 훨씬 더 첨예하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최근 공식 통계로도 20만 명을 넘어섰는데, 집계에서 누락된 이들까지 더하면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트럼프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이미 2월 초에 알고도 두 달 가까이 이를 은폐했고, 7월에도 “코로나는 99퍼센트에게 무해하다”고 말했고, 지금도 여전히 방역에 소극적이다. 계절성 인플루엔자까지 겹치면 사망자 수가 5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여럿 나오는데도 말이다.

이뿐 아니다. 미국 경제는 커다란 위기로 휩쓸려 가고 있다. 특히 노동계급 대중의 피해가 크다. 이미 2600만 가구 이상이 연방정부의 실업급여 지원에 의존해 살고, 공과금과 집세를 내지 못해 곳곳에서 노동자 서민들이 집을 잃고 있다. 또, 캘리포니아·오리건을 비롯해 12개 주에서 계속되는 들불,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대서양발 허리케인 등 기후 재앙도 있다. 

이런 중첩된 위기를 보면, 미국에서 대중이 ‘목숨을 걸고’ 계속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는 말이 그다지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트럼프가 온갖 우파적·반동적 운동을 고무해 권력을 유지하려 하고 지배계급 주류는 혼란과 이전투구에 빠져 있는 지금, 대중은 민주당의 선거적 득실에 연연하지 않고 투쟁을 단호하고 대규모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흔들림 없이 투쟁을 건설할 혁명적 정치와 조직이 운동 내에 구축돼야 할 것이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단호함과 끈질김이 그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또, 코로나 대유행 위기 이후 파업을 늘려 온 노동자들이 그 고유의 힘을 더 많이 발휘해 전투적으로 싸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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