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부산 신선대부두에서 화물연대 노동자 김동윤 씨가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여 전신 3도 이상의 중화상을 입었다. "투쟁"이라는 머리띠가 그의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김동윤 씨는 분신 전 전화로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 투쟁해 줄 것을 호소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이기도 한 김동윤 씨는 엄청난 빚더미와 가압류에 시달려 왔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지입차주라는 신분 때문에 다단계 알선업자에 의해 고질적인 저운임에 시달려야 했고, 일거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 달에 2~3번 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차량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장시간 노동에도 치솟는 기름 값과 차량 할부금 때문에 한달 수입이 1백만 원도 되지 않는다. 부산에서만 4천 대가 넘는 화물차량이 가압류 당한 상태다.

김동윤 씨의 분신 소식에 3백여 명의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병원으로 모였다. 밤 10시경 보고대회가 열렸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향후 경과를 보며, 일정을 잡겠다고 했다. "지도부가 좀더 명확하게 투쟁일정을 잡고 향후 보상대책과 대정부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라는 한 노동자의 발언에 함께 있던 노동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보고대회 이후 화물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공동으로 구성한 대책위가 구성됐다. 대책위는 촛불 집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고, 화물연대와 전국운송하역노조는 11월 총력투쟁을 앞당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9월 11일 5백여 명이 참가한 촛불집회에서 화물연대 부산지회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펙은 무슨 아펙이냐? 2002년 파업 때보다 더 강력하게 부산항을 마비시키자"며 투쟁 의지를 밝혔다. 김동윤 씨는 나흘간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13일 새벽에 숨졌다.

대책위는 14일 대규모 집회와 향후 장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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