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걸려도 도널드 트럼프의 뻔뻔함과 해악은 줄어들 줄 모른다.

10월 6일 트럼프는 퇴원을 앞두고 있다며 의기양양해하는 글을 트위터에 썼다. “코로나를 무서워 말라. 코로나에 삶을 지배당해선 안 된다.”

증세가 나타나기 무섭게 전용 헬기를 타고 방 여섯 개 딸린 전용 병동으로 긴급 후송됐고, 전담의 12명이 붙어서 의약품을 물 쓰듯 썼으며, 앓는 동안 일자리도 생계도 위협받지 않은 자가 할 말은 아니다.

10월 6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21만 5000명을 넘어섰다. 누적 확진자는 약 770만 명에 이른다.

백악관은 트럼프 발 감염 경로를 추적하지 않겠다고 했고, 오히려 트럼프의 코로나 확진을 방역 완화 및 경제 재가동을 밀어붙일 기회로 삼고 있다.

트럼프 선거운동본부 선임고문 스티브 코르테스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각각 〈폭스뉴스〉·〈CBS〉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감염된 것을 보면 아무리 봉쇄를 해도 바이러스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며, 방역을 완화하고 경제를 재가동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자본주의의 수익성 위기로 점점 더 커진 불안감의 표현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그나마 괜찮아 보였던 경제 지표에 기대어 재선하려 했고, 이 때문에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고도 두 달 가까이 은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2000년대 후반 하락세로 접어든 미국 자본주의의 이윤율이 트럼프 정부 하에서도 계속 하락했고, 올해에는 급전직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트럼프는 대기업 구제를 위해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수익성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오히려 부채 문제가 더해졌다.

그 피해는 특히 서민층을 강타하고 있다. 10월 2일 미국 노동통계청은 2019년 2월 이후 실업 건수의 4분의 3이 팬데믹 이후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통계로도 약 1300만 명이 실업 상태인데, 구직 포기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실업자 수는 그 곱절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방역을 더한층 완화한다면 이는 노동자·서민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특히 필수 업무 종사자 비율이 높은 유색인종 노동계급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일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런 파탄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책임을 딴 데로 돌리고 지지층의 이반을 막으려고 ‘중국산 바이러스 별 것 아니니 경제 재가동하자’는 위험천만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극우 고무하기

트럼프는 특히 인종차별적 우익을 고무해 상황을 돌파하고 권력을 이어 가려 한다. 그래서 트럼프는 “법질서 확립”을 외치며 ‘남부 전략’*을 휘둘렀고, 한술 더 떠 극우 운동을 적극 고무했다.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 준 두 사건이 일주일 새 벌어졌다. 하나는 트럼프가 10월 4일에 코로나 치료 중 격리 방침을 어기고 병원을 나가 극우 시위대에 손을 흔들어 준 일이다.(트럼프와 같은 차에 탔던 경호원 두 명은 바이러스에 노출돼 격리됐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선을 기원하며 모여든 극우들에게 자신이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 한 것이다.

다른 사건은 훨씬 의미심장하다. 바이든과 1차 대선 후보 TV 토론 때 트럼프가 극우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에 직접 행동 지침을 내린 일이다. “프라우드 보이스, 물러서서 대기하라.” 

널리 보도된 이 말 바로 다음에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좌파이지 우파가 아니다.” 같은 토론에서 트럼프는 다시금 “안티파와 아나키스트”를 명분 삼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비난했고 “법질서 회복”을 연거푸 부르짖었다.

트럼프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문제를 일으킬” 때를 노리며 “대기하라”고 극우 운동에 지시한 것이다. 의기양양해진 ‘프라우드 보이스’는 “물러서서 대기하라”는 구호를 인쇄한 티셔츠 10만 장을 주문했다. ‘프라우드 보이스’ 리더 개빈 맥키네스는 토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일단 “물러서서 대기”하겠지만 “전국적으로 폭력 시위가 계속되면 도시를 불태우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을러댔다.

트럼프는 극우를 고무하면서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람들의 권리도 더 공격하려 한다. 트럼프가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후임 지명을 서두르는 것도 (일차적 목표는 선거적 득실이겠지만) 마찬가지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일치 단결해 미는 후보자 에이미 코니 배럿은 여성의 낙태권 철폐, 이주 규제 강화라는 기독교 우파의 어젠다와 보편 복지 삭감이라는 공화당의 전략을 신봉한다.

트럼프 자신은 파시스트도 아니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일체의 파괴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가 일차적으로 대통령직 유지를 노리고 하는 이런 일이 ‘대안 우파’ 같은 신흥 우익 운동, 그 자신이 일으킨 강경 우익 운동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 ‘프라우드 보이스’·‘애국기도회’ 등 극우 조직들, 복음주의 개신교 우파 운동 등을 모조리 고무하고 있다.

트럼프가 11월 3일 선거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미국과 세계 노동계급이 심각하게 경계해야 할 ‘유산’이 남게 될 것이다.(당장 11월 3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심각한 논란과 쟁투가 바로 뒤이을 것이다.)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의 한복판에서 극우와 파시즘의 토양을 일구는 트럼프에 철저히 맞서야 할 이유다.

민주당?

하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은 대중이 보기에 트럼프에 대항할 매력적인 대안이 못 된다. 그는 미국 지배계급 정당인 민주당의 계급 기반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다.

바이든은 자신의 친기업 성향을 숨기려 들지도 않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 왔다. 바이든은 운동의 “폭력성”을 비난하며 (트럼프를 따라) “법질서 확립”을 앞세웠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요구에 한사코 반대하는 카멀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바이든은 인종차별 철폐 염원에 재를 뿌리고 우파에 호의적 눈짓을 보내 “중도표”를 잡으려 하는 듯하다. TV 토론에서도 바이든은 “법질서를 존중하는 평화 시위”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며 또다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비난했다. 바이든은 대선 전에 연방대법관을 인준하지 말자면서도 “배럿 후보는 여러 모로 참 좋은 분”이라고 했다.

트럼프에 질려 바이든에 투표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이든의 정책이나 후보자 면면에 대한 지지가 한 자릿수대인 것도 당연지사다.

2004년 대선 때도 그랬다. 당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는 역대 최악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던 공화당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경합했다. 케리는 미국과 세계를 휩쓸던 반전 운동의 염원에 조응하기는커녕, 외려 자신이 부시보다 이라크 전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나섰다. 케리는 큰 표차로 낙선했고 부시는 기사회생해 이라크를 지상의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지금 버니 샌더스가 “바이든-해리스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진 친서민·친노동 후보” 운운하며 선거 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미국 민주사회당(DSA)이 이미 바이든 지지 거부를 결정해 놓고도 지금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 문제를 두고 내홍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미국 대중은 민주당의 선거 득실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강력히 투쟁해야 한다.(2004년 대선 당시 적잖은 반전 운동가들이 도저히 지지하기 힘든 후보였던 케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선거 패배 후 운동 자체가 분열해 타격을 입었음을 유념할 만하다.) 그래야 트럼프와 그가 대변하는 체제의 온갖 오물과 패악들에 맞설 수 있다. 여름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지배자들을 겁에 질리게 하고 정국을 주도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관련 기사: 본지 335호 ‘반란의 미국: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어떻게 트럼프를 패배시킬 것인가?’)

그런 점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경찰에 의해 살해된 흑인 여성 브리오나 테일러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며 9월 하순에 다시 분출한 것은 좋은 징후다. 오리건주(州) 포틀랜드에서는 대규모 연대 행동으로 극우 ‘프라우드 보이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누르기도 했다.(이 소식을 전하는 미국 사회주의자의 글을 보시오.)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힘을 발휘해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노동자들은 팬데믹 하에서도 투쟁할 수 있음을 거듭 보여 주고 있는데, 미국 인터넷 언론 〈페이데이 리포트〉는 미국에서 3월 초부터 약 반 년 새 비공인 파업이 약 1000건 이상 벌어졌다고 추산했다.

의미심장하게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발발을 기점으로 파업 건수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약 260건, 6월 1일부터 9월 초까지 약 750건). 특히 거리 시위가 수백만 명 단위로 치솟던 6월 첫 두 주 동안만 비공인 파업이 약 600건 벌어졌다고 〈페이데이 리포트〉는 추산했다.

강력한 대중 항쟁이 다른 운동들을 고무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대규모 운동들이 극우에 맞서, 중첩된 위기에 맞서, 고통 전가와 차별·천대 일체에 맞서 계속 단호하게 전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투쟁을 흔들림 없이 건설할 혁명적 정치와 조직을 운동 내에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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