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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박이대승, 오월의봄):
“태아 생명권” 논리의 불합리성을 명쾌하게 파헤치다

낙태죄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지금,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의 “논리적 모순”과 “개념적 오류”를 날카롭게 파헤친 책이 나왔다.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박이대승 지음, 오월의봄)는 낙태 반대론에 맞서는 유용한 논증을 다루고 있다.

저자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은 헌재 결정이 “진보”인 것은 맞지만, 여러 위험 요소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헌재 결정이 전제한 “태아 생명권” 논리의 내재적 불합리성을 밝히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

이런 점은 많은 진보적 여성·노동단체들이 헌재 결정의 긍정적 요소를 과대 포장하고 경계를 늦추는 문제를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자 연대〉도 헌재 판결 직후 헌재 결정의 일정한 진보성뿐 아니라, 그 한계와 공백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저자는 “생명”과 “생명권” 개념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헌재 결정의 오류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박이대승 지음, 오월의봄, 2020년, 136쪽, 11,000원

“동물과 식물은 모두 살아 있지만, 생명권의 주체가 아니”듯 태아가 살아 있다고 “생명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권”은 타인을 “살인하면 안 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한국의 법체계에서 태아는 비인간이다. 헌재 결정문에도 태아를 “형성중인 생명”,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춘” 생명 등으로 묘사할 뿐, 인간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표현들 자체가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비인간인 태아에 “생명권”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만약 태아를 “생명권”을 가진 인간으로 규정하면, 낙태를 허용한 모자보건법은 “살인 허용”법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두 가지 선택지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모든 낙태를 금지하든가, 태아를 비인간으로 인정하고 “생명권” 개념을 포기하든가 말이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조화” 따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태아 생명권” 논리는 “인간 여성과 비인간 태아의 법적 지위를 뒤집”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꼼수”일 뿐이라는 저자의 지적도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태아 생명” 보호를 위해 낙태권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로 대 웨이드’ 판결이나 헌재 판결 당시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주장이 그 예다. 특히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획득하는 시점”은 낙태 규제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여성의 권익보다 “태아 보호”가 더 큰 가치를 보유한 시점이나, 낙태권을 박탈해도 되는 시점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정 시점이 타당하다고 할 “필연적 이유가 없기” 때문에 나라별로 낙태 허용 기간이 다 다르고, 낙태 금지 기간 설정 자체가 “자의적이고 임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간과 사유에 따른 낙태 부분 허용안은 또 다른 규제일 뿐이라며, 여성의 낙태권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임신 유지와 중단에 대해 판단하고 개인의 의지를 형성하는 과정은 오롯이 임신한 여성 자신의 내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여성의 동의 없이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고, 국가도 개인적 결정의 사유를 요구할 수 없다.”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법리적·헌법적 측면에서만 “태아 생명권” 문제를 다룬 것은 충분하지 않은 반론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낙태죄 폐지와 낙태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태아 생명권”을 배격할 수 있는 유용한 무기를 제공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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