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어떻게 떠올랐고, 어떻게 이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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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짜뉴스가 부상한 배경을 다룬다. 2017년 4월 발표됐고 주로 미국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인터넷 뉴스 웹사이트인
페이스북 사장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문제라는 주장을 전면 부인하지만 수세에 몰리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는 모럴 패닉
여기서 이 난장판의 모든 측면을 다룰 순 없지만 가짜뉴스가 새롭지 않다는 점을 짚는 것은 중요하다. ‘낚시성’ 제목에다가 그것과 전혀 관련성 없는 “뉴스”들을 모아 놓은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더 의미심장한 사례로 2003년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한 것을 생각해 보라. 언론들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거짓 주장을 대대적으로 반복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이 대중적 환호 속에서 끌어내려진 것처럼 보이는 영상과 사진이 보도됐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가 취임식에 오지도 않았던 대규모 환영 군중을 운운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쪽짜리” 진실들
이런 일들은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1946년 영국 노동당 법무장관은 “신문 소유주들이 … 사실을 왜곡하고 뉴스를 은폐한다”고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1년 보수당 총리 스탠리 볼드윈은 언론 재벌들인 비버브룩
뉴스는 상품이고 명품을 베낀 “짝퉁” 같은 가짜 상품들도 “진품” 못지 않게 자본주의적 산물이다. 즉, 이런 것들도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다른 생산자와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짜뉴스는 인터넷 광고로 수익을 낸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마찬가지로 가짜뉴스도 이윤 때문에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뉴스”는 이윤 창출 이상의 구실을 한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같은 자들이 영향력을 얻기 위해
언론은 더 광범한 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한다. 마르크스는 당시 언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음에도 이 점을 포착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시대에서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뉴스”는 체제를 정당화하고 이윤과 경쟁, 거기에 수반되는 각종 제도와 기구들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의 책 《만들어진 동의》
그러나 “뉴스”는 언뜻 보기에 프로파간다처럼 보이지 않으며 “언론은 서로 경쟁하고 주기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비리를 폭로·공격하면서 사상의 자유 대변인을 자임한다.” 이런 일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지 언론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으로 뉴스 거리를 선택하고 해석한다고 믿는다.”
가짜뉴스란 이런 언론계의 관습을 지키지 않는 프로파간다라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부상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요인은 신문 산업의 위기다. 영국에서는 2005~2015년 사이 신문 산업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전국적 신문 7곳이 지난해에만 발행부수를 10퍼센트 이상 줄였다. 광고 지출은 늘고 있지만 그 돈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으로 간다. 이들은 세계 온라인 광고 산업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2020년에 80퍼센트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요인은 주류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이라크 전쟁과 그 실패, 2008~2009년의 경제 위기
셋째 요인은 1990년대 중엽에 빌 클린턴 정부가 인터넷을 시장에 넘겨준 데 있다. 그 결과,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신생 IT 기술과 결합했다. SNS, 알고리듬, 자동화 시스템
억만장자들
넷째 요인은 미국에서 억만장자들과 기타 엘리트들이 화석연료 대부호인 코크 형제를 중심으로 세력을 결성한 것이다. 제인 메이어 기자는 책 《다크 머니》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라는 공통점 외에도 연방정부의 구실을 축소하고, 월스트리트 규제에 반대하고, 미국 환경보호청을 약화시키고, 오바마케어를 없애야 한다는 신념으로 뭉쳐 있다. 트럼프가 당선한 해에 코크 형제는 이런 목표를 내걸고 8억 8900만 달러
2014년에 생긴
SNS
가짜뉴스 시장에는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다. 페이스북, 구글을 통한 광고, 우파적 편집증과 인종차별에 기대서 상업적 성공을 노리는 인터넷 “기업가들”이다.
다행히도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좀더 유용한 연구들도 있다. 미국의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2015년 4월 1일부터 2016년 11월 미국 대선일 사이에 공개된 기사 125만 개를 조사하고,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반대 언론의 정합성과 전문성에 대한 공격도 중심적인 쟁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파 언론들은 트럼프의 경선 경쟁자들과 머독의 우익 TV 방송국
“이런 소식을 가짜뉴스라고 기각해선 안 된다. 이들의 힘은 익숙하게 반복되는 거짓말, 편집증적인 논리, 일관된 정치적 방향과 검증 가능한 사실들을 결합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것들은 역
스탠퍼드 경제정책 연구소의 경제학자 메튜 겐츠커우와 뉴욕대의 헌트 앨컷은 소셜미디어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선거에서 작은 구실”만을 했고 가짜뉴스의 구실은 더 작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SNS를 통한 뉴스 웹사이트 방문과 SNS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뉴스를 연구했다. 선거 후 유권자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이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뉴스”를 보여 줬는데 일부는 진짜 뉴스, 일부는 선거 기간 동안 유포된 가짜뉴스, 또 일부는 설문을 위해 만든 유포된 적 없는 가짜뉴스였다. 15퍼센트만이 자신이 본 가짜뉴스를 기억해 냈고, 7.9퍼센트만이 그것을 보고 믿었다고 했다. 유포된 적이 없는 가짜뉴스의 경우에도 기억이 난다는 응답자는 14퍼센트였고 그것을 믿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8.3퍼센트였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가장 널리 퍼진 가짜뉴스들도 미국인들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만이 봤고 그들 가운데 절반만이 이를 믿었다.”
역정보
영국 설문조사 단체 유고브는 영국 공영방송국
가짜뉴스는 트럼프가 올라탄 포퓰리즘 물결과 잘 어울리고, 어느 정도 그런 물결의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가짜뉴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가짜뉴스를 둘러싼 위선과 근시안적 태도를 지적하고, 가짜뉴스가 지배계급에게 안기는 문제
그렇다고 가짜뉴스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는 독성이 있다. 증오를 퍼뜨리려 하는 자들이 애용하는 수단이고 체제에 도전하는 이들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모든 “뉴스”가 프로파간다라고 말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히틀러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와 영국의 자유주의 신문
언론의 모순적 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할 수 없다. 그들은 착취와 차별에 기초한 이 체제의 실상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 세계가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폭로가 나오기도 한다. 루퍼트 머독의 신문
트럼프가 “가짜뉴스,” “부정직한 언론”을 공격하는 것은 그의 사업과 정권에 대한 조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검증 능력은 트럼프 몰락에서 일정한 기여를 할 것이다. 트럼프가 더 커다란 반대에 부딪힐수록 내부 폭로와 양심선언이 더 많이 나올 것이고, 탐사보도 저널리즘이 활동할 여지도 더 커질 것이며 그만큼 트럼프의 몰락도 앞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