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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뚫린 문재인 정부의 특고 산재보험 확대안

“저 너무 힘들어요” 과로사한 택배노동자가 사망 4일전 동료에게 보낸 메세지. 산재 사망이 계속되지만 사측의 압박과 보험료 부담 때문에 대부분 적용 제외 신청을 하고 있다 ⓒ이미진

10월 8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사망한 택배 노동자가 산재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분이 일고 있다.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사측이 대필 작성했기 때문이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14개 업종의 특수고용 노동자만을 가입 대상자로 한정하고 있다. 그 노동자들 대부분은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는 다른 노동자와 달리) 보험료를 절반 부담한다. 현행법은 이 경우에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해 기업주들이 산재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는 꼼수를 벌이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적용 제외 신청서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제대로 설명도 없이 일단 서명하라고 강요하는 일도 많다. 취직과 동시에 적용 제외 신청서를 받는 경우도 많아 노동자가 거부하기 힘들다.

실제로 올해 입직(신규 고용) 신고된 특수고용 노동자 53만 2797명 중 80퍼센트인 42만 4765명이 적용 제외 신청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야 뒤늦게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충분한데다 신속하지도 않다. 특고 노동자 중 택배나 배달 노동자들은 코로나 위기에서 업무량이 폭증한 분야라서 인력 충원 등 종합 대책이 시급한데 말이다.

정부의 대책은 두 축이다. 하나는 특고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하는 것이고, 하나는 산재보험 적용을 가로막는 전속성(특고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주로 일하는지 여부)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9월 22일 국회 앞 전국대리운전노조 일인시위 ⓒ이미진

적용 제외

정부는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사유를 종사자의 질병, 육아, 사업주 귀책 휴업 등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10월 14일 노웅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이런 정부의 방향성에 발맞춘 것이다.

그런데 유사한 방안을 이미 국토부가 내놨었다. 국토부는 2017년 11월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에서 “질병 등 불가피한 사유로 [적용 제외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년 동안 이조차도 추진하지도 않다가 주섬주섬 다시 꺼내든 것이다.

게다가 적용 제외가 살아 있는 한 기업주들은 이를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 적용 제외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주들은 대필 신청, 입직 미신고(고용 미신고) 등 불법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를 관철하려 한다.

게다가 노웅래 안은 두 가지 사유 외에도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조항을 두고 있다. 시행령에서 사유가 더 추가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적용 제외를 아예 삭제하는 안을 발의했다. 지역구가 얼마 전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전북 정읍이라는 것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러나 이 안을 여당이 진지하게 다룰지는 회의적이다. 윤준병 자신이 노웅래 안 발의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법안 심사 과정에서 병합돼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속성 기준 개선안을 내년 상반기에 내놓겠다고 한다. 노웅래나 윤준병 안 모두 이 전속성 기준은 건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전속성 기준 폐지가 아니라 “분야·직종별 특수성 등을 반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정한 “특수성”을 기준으로 또다시 특고 노동자 사이에서 적용 대상이 갈릴 수 있다.

노동부는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과반 소득·업무시간을 충족해야 한다는 산재 적용 기준을 두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의 경우 실제로 2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전속성 기준에 부합하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은 고작 13명뿐이었다(2020년 5월 기준).

최근 플랫폼 배달 기업인 쿠팡이츠가 배달 노동자 대상으로 산재보험을 가입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전속성 기준을 준수하겠다고 밝혀서 가입 규모는 줄어들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특고 산재보험 확대를 말하지만 이처럼 그 실상은 별 볼일 없다. 산재보험의 전면 적용, 즉 적용 제외와 전속성 기준 폐지, 100퍼센트 사용자 보험료 부담 등이 실행되려면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