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를 유지하며 낙태를 제한하는 문재인 정부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11월 16일 이후 국회로 넘어갈 예정이다. 언론은 정부안이 그대로 유지될지, 국회 상임위 토론 과정에서 수정될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입법 예고 직후 〈한겨레〉, 〈경향신문〉 등 중도진보계 언론은 낙태죄 폐지 입장을 밝힌 권인숙·박주민 민주당 의원안에 주목했다. 한편 권인숙 의원은 10월 12일, 낙태죄 전면 폐지와 제한 없는 낙태 허용이 담긴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박주민 의원 법안의 초안은 10월 27일 언론에 보도됐다. 박주민 의원안은 11월 첫 주에 발의될 예정이다. 낙태죄를 형법에서 전부 삭제하고, 임신 24주 이내 임산부의 의사에 따른 임신 중단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임신 지속이 임신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주수 제한 없이 임신 중단을 허용한다고 한다. 

이것은 정부안보다는 상당히 나은 법안이다. 정부안은 임신 14주 이내에만 사유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고 15~24주 이내에는 ‘유전적 질환, 성범죄,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에 낙태가 허용된다. 박주민 안에는 정부안에 담긴 상담의무화 조항도 없다. 

그러나 정부가 낙태를 억제하고자 넣은 의사의 낙태 거부권 조항을 수용했고, 24주 이후 낙태한 경우에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문제다. 비록 여성은 처벌에서 제외되지만, 의사를 처벌한다면 후기 낙태는 사실상 금지되는 셈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관되게 지키지 않고 타협을 한 것이다.

후기 낙태는 매우 드물지만, 이 역시 금지해서는 안 된다. 조기에 낙태할 기회를 놓친 여성이 불가피하게 후기 낙태를 하게 되는데, 이를 금지하면 여성이 자가 낙태나 다른 위험한 방식의 낙태를 시도하다가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모든 여성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하는 법적 제약은 모두 없어져야 하고, 재정 지원 등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한편, 권인숙 의원의 법안은 낙태죄 폐지에서는 박주민 법안과 차이가 없지만, “임산부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낙태가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박주민 안보다 낫다. 하지만 이 안 발의에는 민주당 의원 중 극소수(권인숙을 포함해 총 6명)만이 참가해, 국회 통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박주민 의원은 당권주자였고 국회 법제사법위원이라 권인숙 안보다는 더 지지를 모을 수도 있겠지만, 민주당 의원 다수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는 이미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입법안을 마련했다”며 정부안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밝혔고, 한국천주교회 등 낙태 반대론자들도 박주민 안의 골자가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개정안의 골자를 이미 8월에 마련해 놓고서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고자 10월에서야 입법 예고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민주당이 정부안과 박주민 안의 절충안을 마련한다 해도 정부안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9월 23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5개 부처 장관 회의에서 여가부를 제외하고 모두 낙태죄 유지 입장을 취했다. 출산율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출산율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겠다고 밝혔으면서도 실제로는 ‘저출산’을 이유로 낙태죄를 유지하는 게 문재인 정부의 속내인 것이다.  

‘저출산’으로 노동력인구와 징병 대상자가 감소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단지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보수 정치인들과 지배계급 거의 전체가 공유한다. 따라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받으려면앞으로 만만찮은 투쟁이 필요하다. 

낙태권 운동이 성장하려면, 말로만 성평등을 말하다 뒤통수치는 일을 반복해 온 문재인 정부와 맞설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정부의 낙태 제한 조치와 보수파들의 공격 모두에 맞서 여성의 낙태권을 일관되게 옹호해야 한다. 보수적 반격에 맞서며 실질적 개혁을 성취하려면, 낙태권 운동이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대거 동참하는 대중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2018년 낙태죄 폐지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 ⓒ이미진

낙태가 여성 건강에 해롭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정부안이 낙태 전면 합법화 방안이라고 터무니없이 과장하면서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가 산모와 별개 생명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 그러나 생존을 모체에 의존하는 태아를 두고 ‘권리’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자세한 반박은 본지 231호 기사 ‘낙태는 “살인” 아니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참고하시오.)

또, 그들은 낙태가 여성의 건강을 해친다며 낙태 금지를 요구한다. 임신중절 수술의 위험성, 약물의 부작용, 정신건강 문제 등을 지적한다.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을 낙태 전면 금지론자들만이 펴는 것은 아니다. 정부안도 낙태의 위험성을 내세우며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제한한다. 국가 지정기관에서 낙태하려는 사유를 심사받아야 하고, 이를 벗어난 낙태를 하면 처벌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낙태가 여성에게 위험하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훈련받은 의료인이 정확한 방법으로 시술한다면 낙태는 안전하다. 이렇게 낙태할 경우 합병증을 앓는 여성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낙태 불법화로 낙태가 음성화되면 안전하지 못한 방식의 낙태가 성행해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기 쉽다.

정부안에서 초기 낙태에 처음으로 허용된 낙태약 미프진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와 많은 국가들에서 그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았고, 2005년에는 WHO의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이토록 안전하고 간편한 낙태 방법이 낙태 금지론자들의 방해로 지금껏 국내에 도입되지 못했던 것이다. 

낙태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사람들은 임신에도 신체적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무시한다. 하지만 만기까지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하는 것은 합병증과 여러 건강 문제를 낳을 수 있고, 심지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건강 상태가 좋은 여성일지라도 임신을 지속하는 것이 낙태보다 더 위험하다. 출산이나 임신 관련 합병증으로 세계에서 많은 여성들이 사망하지만 이를 이유로 출산을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법적 제한이 있어도 자신이나 가족의 삶을 지키려고 낙태를 하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처벌과 규제는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다. 낙태한 여성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은 여성들의 정신건강에도 해롭고 우울증을 크게 증가시킨다. 처벌이나 낙태 제한 조처로 여성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이유다. 

여성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낙태를 결심한 여성이 되도록 일찍 낙태할 수 있게 의료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 필요하다면 늦게라도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누구도 여성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지속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낙태 허용의 의학적 기준?

보수적인 산부인과 의사들(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 대한산부인과 의사회 소속)은 제한 없는 낙태 허용 시기를 정부안보다 4주 더 축소해 임신 10주 미만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임신 10주 이후 낙태가 여성에게 위험하고, 임신 10주부터 각종 태아 검사가 가능해 ‘무분별한 낙태’의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낙태죄와 낙태 제한 조치는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뿐이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낙태 제한을 지지하는 의사들의 주장에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보수적 관념에 따른 것이다. 이는 모든 의사들의 통일된 견해도 아니다. 진보적 의사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정부 개정안이 “여성의 건강권과 삶을 심각하게 해치는” 안이라며 반대 의견서를 냈다. 임신주수를 기준으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했고, 상담·24시간 숙려기간과 사유에 따른 제한과 입증 책임도 “여성의 건강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당한 요구 절차”라며 반대했다.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는 의사들은 많다. 낙태권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난 아일랜드에서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지지하는 의사 단체 ‘닥터스 포 초이스’ 공동설립자 페이더 오그래디는 낙태를 제한하는 의학적 기준은 없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무분별하게 낙태를 한다는 주장은 보수적 성 관념과 여성차별적 편견의 발로일 뿐이다. 그러나 성관계의 목적이 꼭 출산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피임에 실패하거나 예기치 않은 성관계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조건과 미래의 삶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낳고 말고는 전적으로 임신한 여성 자신이 판단할 문제이지 제3자인 의사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의사는 정확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며 적절한 조언을 해야지, 전문가의 권위를 내세워 국가에 여성의 삶을 통제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