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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주의의 우선 순위를 보여 주는:
북한의 새로운 전략무기들과 대중의 궁핍

10월 10일 북한 평양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북한 당국은 새로운 무기들을 대거 선보였다.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었다. 북한 당국이 이 미사일들을 시험 발사한 적이 없어서, 아직까지 실전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외형상 특징만을 볼 때 기존 미사일들보다 성능이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신형 방사포, 새로운 탱크 등 새로운 재래식 무기들도 대거 등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최강의 군력을 비축해 놓았다”고 했다. 2017년 이후에도 북한 당국이 군비 증강에 굉장히 많은 자원을 투입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군비 증강은 북한 대중 다수의 어려운 형편과 대조된다. 김정은도 열병식에서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올해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공동으로 낸 보고서를 보면, 2016∼2019년에 122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만성적 영양 부족에 시달렸다. 이런 영양 수준은 결핵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북한을 결핵 고위험국 30곳 중 하나로 지정했다.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의 낙후한 보건의료 체계를 새삼 드러낸 계기였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 자국의 보건의료 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국경을 봉쇄해야 했다. 지난 3월 김정은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독려하며 “수도에마저 온전하게 꾸려진 현대적인 의료보건시설이 없는” 북한의 현실을 인정했다.

이 와중에 풍수해가 북한을 덮쳤다. 지난 여름 태풍들이 잇달아 상륙하면서 김정은의 말대로 “혹심한 자연피해”를 입은 것이다.

핵탄두와 다양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나라에서 다수 대중이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우며, 잦은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제재와 군사 위협을 가해 북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북한 당국의 우선순위가 대중의 삶과 유리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용 자원을 중공업과 군비 증강 등에 우선 투입하는 바람에 대중의 보건과 안전에 관한 투자는 후순위로 밀린 탓이다.

계몽군주?

자유주의자들이나 주류 개혁주의자들은 대부분 북한을 서방 자본주의보다 못한 사회로 여긴다. 최근 김정은이 연평도 피격 사건에 대해 사과하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평한 것에서도 그런 인식이 드러난다. 북한을 “3대 세습하는 왕조 국가”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한 얘기였다.

그러나 북한의 세습 독재와 다수 대중의 궁핍 등은 비자본주의적이거나 전자본주의적인 통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와 관계 있다.

북한 관료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군사적·경제적 경쟁 압력에 대응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 북한 당국은 중공업 중심의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대중의 소비와 생활수준은 철저히 희생됐다.

이것은 사회주의와는 무관한 조처였다. 노동계급이 사회의 통제력을 발휘하는 사회였다면, 인민 대중의 삶을 돌보는 것을 우선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북한 관료들은 여느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 발전 노선을 추구했다. 특히, 미국의 후원을 받는 남한과의 군사적 경쟁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일찌감치 상당한 군사력을 갖춘 중간 규모의 공업국이 됐지만, 소비재는 질도 떨어지고 양도 계속 부족했다.

북한 관료는 더 오래, 더 강도 높게 일하도록 노동자들을 몰아쳤다. 그리고 불만에 찬 대중을 통제하려고 거대한 억압기구(강제수용소, 공안 기구 등)를 만들어 착취 체제를 지탱했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해 왔지만, 실제로는 남한 시장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물론 북한은 국가자본주의적 축적 방식을 채택해 1950~60년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 초에 일부 서구 경제학자들은 북한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가는 공업국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 국가자본주의는 서구 시장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경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 세계 자본주의의 세계화 추세가 발전하면서 폐쇄적인 국가자본주의적 방식은 점차 낡고 사태에 뒤처지는 것이 됐다.

북한 경제는 1980년대에 이르러 정체에 빠져들었다. 소련이 몰락한 후 북한은 대규모 식량난을 동반한 끔찍한 경제 파탄을 겪었다. 이때 미국의 대북 압박은 어려움을 증폭시켰다. 권력 세습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북한 지배자들이 지배계급의 분열을 막고 체제 유지를 위해 취한 선택이었다.

김정은이 통치하는 오늘날의 북한은 1990년대의 최악의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경제가 온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북한 당국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혹사하고도 윤택한 삶을 제공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 당국은 모든 인민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 약속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김정은은 “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은]의 평생 염원”이라며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당일꾼들에게 강조했다. 60여 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화목한 대가정?

오늘날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근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정은이 열병식 연설에서 모든 인민이 “화목한 대가정”을 이뤘다고 말한 것도 계급 지배와 착취의 현실을 가리는 국민 단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서구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건대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은 북한 대중에게 대안이 아니다. 북한 노동계급한테는 ‘옆으로 게걸음 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과거 국가 통제 경제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남한의 경험에 비춰 봐도,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이었다.

북한의 노동자 대중에게는 진정한 사회주의 대안이 필요하다. 마르크스, 엥겔스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의미했다. 즉, ‘올바른’ 이데올로기를 갖춘 소수 지도자들이 노동계급을 대리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이 그러했듯이, 북한에서도 노동계급이 스스로 기존의 관료 지배자들을 타도하고 자신들의 민주적 기구들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