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정부 사이에 한국전쟁의 성격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단지 과거사 논쟁이 아니라 오늘날의 미·중 갈등과 얽힌 문제다.

10월 23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연설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전쟁’, 즉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때 시진핑은 한국전쟁이 ‘제국주의 침략이 확장되는 것을 막고, 신중국의 안전을 지킨 위대한 승리’라고 했다. 즉,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정당한 행위였다는 주장이다.

같은 날 주한 미국대사 해리 해리스는 거제를 방문해 ‘흥남철수작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이 기념비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공세로 후퇴하게 된 미군이 피난민과 함께 흥남항에서 철수한 일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시진핑의 연설을 반박하며 이렇게 밝혔다. ‘한국전쟁은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은 북한의 남침이었고, 자유 국가들이 이에 맞서 싸우자 중국공산당이 병사들을 보내 한반도에 참화를 불러왔다.’

이제 역사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대치하는 최전선의 하나가 됐다(〈파이낸셜 타임스〉).

중국 정부는 중국군의 한국전쟁 전투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게 하는 등 한국전쟁에 관한 선전을 강화해 왔다. 이것은 미·중 갈등을 의식한 조처다. 트럼프 정부가 화웨이 제재, 홍콩·신장 인권 문제 등으로 중국에 공세를 가하자, 중국 정부도 이에 대응하며 중국 내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지배자들은 ‘중국이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한반도 북부에서 밀어낸 전쟁’이라는 민족주의적 서사로서 한국전쟁을 부각시키고 있다. 최근 미국이 냉전 시절의 레토릭을 살려 미·중 갈등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공산주의)’의 대결로 포장해 대중국 공세를 정당화한다는 점도 중국 지배자들을 자극했을 것이다.

미국 대선 마지막 토론회가 열리는 시점에 시진핑이 연설했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이 대선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중국의 부상을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했고 누가 중국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격돌했다. 이때 시진핑은 한국전쟁 연설로 미국에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시진핑은 ‘주권·안보·발전 이익이 훼손되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냉전 제국주의

그러나 한국전쟁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나 제국주의 해방을 위한 항미원조 전쟁이 아니라, 냉전 제국주의 경쟁국들이 한반도에서 직접 충돌한 제국주의 간 전쟁이었다.

양측이 각각 표방하는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보면, 냉전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즉, 제국주의 국가들)이 패권을 놓고 경쟁한 제국주의적 경쟁이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는 동·서 양 제국주의 진영의 이해관계가 이미 전쟁 전부터 첨예하게 충돌하던 곳의 하나였다. 따라서 ‘어느 쪽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가’ 같은 물음은 이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서 좋은 출발점이 아니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한반도에서 싸웠다고 했지만, 1945년 한반도 남부를 점령한 미군은 인민위원회와 공장자주관리운동 등 대중이 스스로 만든 조직과 그 운동을 파괴하는 데 여념 없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독재자 이승만을 후원해 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승만은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 저항하는 대중을 혹심하게 탄압할 수 있었다.

중국은 위대한 민족해방혁명으로 서구 제국주의를 자국에서 축출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시작될 무렵에 중국은 신장(1949년), 티베트(1950년)를 무력 점령해 소수민족들을 지배하는 한족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해 있었다. 중국이 ‘제국주의 침략’ 운운할 자격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관여한 것은 자국 패권을 위한 선택이었다. 남한은 미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국가였고, 남한은 일본 방어의 전초 기지였다. 미국이 남한을 상실한다면 일본의 안전이 위협받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신이 떨어질 터였다.

중국도 그 나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고 한국전쟁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미군의 한반도 북부 장악이 중국을 위협한다고 여겼다. 대만의 국민당 장제스 군대, 베트남의 프랑스군, 압록강의 미군이 세 방향에서 압박해 들어오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직접 충돌하면서 전쟁은 3년간 지속됐고, 한반도는 잿더미로 변해 갔다. 이 전쟁으로 한반도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됐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그리고 이 전쟁의 부정적 유산이 여전히 남·북한 노동계급의 어깨 위에 남아 있다.

오늘날의 의미

한국전쟁은 전쟁 당사국 중 어느 한쪽도 지지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비극이다.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났고 제국주의 경쟁의 양상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최근 그 위험은 다시 커지고 있다.

중국이 경제 성장에 힘입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하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빠르게 악화돼 왔다.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 불안정이 점증했고, 머지않은 미래에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등지에서 양측이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갈등은 냉전 경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결도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도 아니다. 두 제국주의 국가들의 패권 경쟁일 뿐이다.

한반도도 이 갈등에서 예외가 아니다. 여전히 남·북한은 대치 중이고, 미국은 한국이 대중국 포위 블록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반면에 중국은 주변국인 한국이 친미 일변도로 가지 않도록 압박하는 등 한반도에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은 한국 지배자들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반대하면서도 중국을 반제국주의 진영의 친구로 오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즉, 우리는 열강 중 어디도 지지하지 말고 반제국주의적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불안정을 자아내는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 즉 자본주의의 동역학에서 비롯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70년 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