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에 몸무게가 24킬로그램 빠졌습니다. 먹지 못 하고 자지 못 하고 힘들게 일하다 골병이 들었습니다. 과연 롯데택배에서는 우리의 고통을 알고나 있을까요?”(민종기 택배연대노조 서울지부 강동롯데지회장) 

10월 28일 롯데택배 파업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 장시간 노동, 임금(수수료) 삭감, 택배사의 ‘갑질’에 울분을 터뜨렸다.

택배사들과 정부가 부실 대책, 책임 회피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를 방치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비극적 죽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달(10월)에만 6명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올해 과로사한 택배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14명(택배 기사 9명, 택배 포장·운반 종사자 5명)이다(‘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위원회’).

“저녁 있는 삶을 달라” 10월 27일 롯데택배 파업 출정식에서 조합원들이 적은 글귀 ⓒ조승진

주요 택배사들이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내용도 미흡하고 이행 시점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택배사들이 여론의 비난만 일단 피해 가려고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택배업계 점유율 약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빅3’인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사측(이하 빅3)은 최근 분류 인력의 단계적 투입, 산재보험 가입 권고, 노동자 건강검진 등을 대책으로 발표했다.

빅3는 분류 인력 5000명(CJ대한통운 기존 1000명 제외) 투입을 제시했지만 이는 최소 수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이조차도 “단계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얼마의 인력이 언제 투입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인력 투입 비용을 대리점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는데, 벌써 CJ대한통운은 대리점주들을 불러 반반씩 부담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면 대리점주들은 택배 기사들에게 비용을 분담하자고 하거나 [택배 기사들에게 물리는] 수수료를 더 올릴 것이 뻔하다.”(남희정 택배연대노조 서울지부장)

꼼수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 받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도 전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일반 노동자들의 경우 산재보험료 전액을 사용자가 내는 것과는 달리 택배 노동자들은 50퍼센트를 부담해야 했다. 택배사들은 이번 대책에서 대리점과 계약할 때 산재보험에 모두 가입하도록 권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권고라 강제성이 없을 뿐더러, 보험료 지원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이번 대책엔 임금(수수료) 인상과 고용 안정 대책도 빠져 있다. 택배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조건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주 원인에는 손 대지 않은 셈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배달하는 물건 당 수수료가 수입의 전부다. 그런데 택배사들은 계속해서 저단가 정책을 시행해 왔다. 노동자들의 수수료(임금)는 십수 년간 동결됐다. 심지어 롯데택배는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수수료를 삭감했다. 노동자들이 과로를 감수하면서도 심야 배달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다.

일각에서는 택배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개선하려면 배달 단가를 인상해야 한다면서 소비자들도 짐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10월 25일자 사설에서 “소비자가 편익의 일부를 내려놓고 짐을 나눠 지면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불리한 산재보험료 제도 개선 등을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할 명분도 더 커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측과 정부의 책임을 흐린다. 저단가 경쟁의 책임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코로나19의 영향으로 택배시장이 더욱 커졌다) 노동자들을 저임금과 과로사로 내몬 택배사들에 있다. 빅3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각각 1420억 원, 527억 원, 16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0~30퍼센트 급증했다. 택배사들은 주요 고객인 상품회사들에게 일명 ‘백마진’(상품 단가 가운데 일부를 깎아 주는 것)을 제공하며 치열한 유치 경쟁도 펼쳤다. 

한편,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신분 탓에 노동자들은 언제 계약 해지를 당할지 몰라 불안해 하며 택배사와 대리점주들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 그 속에서 로젠택배 기사는 10월 20일 “억울합니다” 하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정부의 책임 회피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속출하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형식적인 근로감독만을 하며 수수방관해 왔다. 정부는 11월 중에나 관련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그조차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지 미지수이다. 민간 사업자들을 어찌 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노동시간 규제 적용과 노동자성 인정, 산재보험의 전면 적용과 보험료의 사업주 전액 부담 등의 대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10월 26일 ‘우정사업본부 동서울우편집중국 규탄대회’ ⓒ조승진

국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를 보더라도,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차일피일 미루며 사기를 쳐 왔다. 우정본부는 추석 성수기에 분류 인력 3000명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했으며 현장에선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 하고 있다”(택배연대노조 우체국본부 박대희 서울본부장).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10월 26일 동서울우편집중국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와 열악한 근무조건이 널리 알려지며 택배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 요구에 지지가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저항도 벌어지고 있다. 택배연대노조 소속 롯데택배 노동자들은 수수료 원상 회복과 작업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10월 27일부터 파업에 들어 갔다.

이러한 행동들이 더 확산된다면 택배사와 정부의 미봉책이 아닌 실질적인 개선책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