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부터 슬금슬금 제기되던 당직공직겸직금지(이하 겸직금지) 폐지론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10월 8일 중앙위원회는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일 것 같다.

그 동안 당 일각에서는 당의 위기가 겸직금지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의 원인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당의 성장에 최대 장애물은 부르주아 개혁 정치에 대한 의존이다.

주요 당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우파의 득세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노무현 정부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최근에도 노회찬 의원이 "노무현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의 실패가 진보진영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의 성공을 기원해야 한다면 대중의 경멸을 자초해 우파에게 이로울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투쟁의 교훈도 그 비슷하다.

지난해에 당 지도부가 사활을 걸었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은 한편에서는 당을 투쟁과 연결시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모종의 '동맹'을 맺는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다 막판에 노무현과 열우당의 비열한 배신 때문에 좌절을 겪었다.

이 때문에 그 투쟁에 가장 열의 있게 참가했던 당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겸직금지 폐지론은 부분적으로 이런 사기저하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이 인기 없고 반노동자적인 정부와 차별성을 긋지 못한 채 그 정부와 운명을 공유하려 한다면 대중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까닭이 없잖은가.

겸직금지 폐지론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현실에서는 이미 의원단이 당 운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우당과의 '개혁 공조'도 의원단에서 먼저 꺼냈다. 의원단은 때로 한나라당과도 정책 공조를 했다.

의원단은 이런 '사안별 공조'를 "소수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는 정치력"이라고 합리화했다.

의회주의적 계산법에 따르면, 299분의 10이 의회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거의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종종 협상 기술이 대중 행동을 대신한다. 이런 태도는 계급 대결을 피하고 의회 내에서 움직이는 지도자들에게 의존하라고 대중에게 권유하는 것이다.

겸직금지 폐지는 당이 이런 의회주의적 방식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다.

물론 대중 투쟁을 중심에 놓는 전략이 의원단의 의정 활동을 기각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회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령 단병호 의원이 비정규직 투쟁의 목소리를 제공하듯이,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그런 대중 행동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겸직금지 제도와 잇닿아 있는 '거대한 소수 전략'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부 당원들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며 겸직금지 폐지를 정당화한다. 원내에 더 원칙적인 지도자가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의회라는 노동자에게 매우 적대적인 환경이 가하는 압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총선이 끝나고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의원단이 '정책 공조'를 꺼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겸직금지 폐지론은 근본에서 대중 투쟁보다 의회 활동을 중시하는 전략을 담고 있다.

예컨대, 방석수 당 기획조정실장은 "합법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은 자기 의원을 더 많이 진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의회 활동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 그런데 겸직금지제도는 당의 대표적 활동에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는 제도이다." 하고 말했다.

기성 정당들이 지배하는 국회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더 많이 진출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10명밖에 안 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기성 정치인들의 방해로 번번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의회 활동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자칫 부르주아 개혁파와의 동맹에 의지하는 전략에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등 민주노동당의 핵심 요구는 결코 의회 활동 중시하기 전략으로는 현실이 될 수 없다.

이용길 충남도당 위원장이 지적했듯이, "당과 대중조직들이 급격하게 의회주의 활동에 경도되고 결과적으로 개량화된다면 궁극적인 사회세력의 교체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권력이 의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동의에 기반한 지배 수단으로 의회를 기꺼이 이용한다. 외관상 유권자들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는 의회 밖 권력이 핵심적인 결정을 내린다. 만일 의회가 이 권력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경우, 의회 밖 권력은 자신의 병기고에 있는 무기를 꺼내 온갖 종류의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노무현의 당은 과반이 넘는 의회 다수파였을 때조차 의회 밖 권력의 이해관계를 거슬러 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다.

하물며 10명밖에 안 되는 민주노동당이 의회 활동을 중심에 놓고 개혁 법안을 강제하겠다는 것은 공상적이다.

그럼에도 대중적 인기가 있는 의원들이 당 지도부가 돼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겸직금지 폐지 주장은 꽤 커다란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것은 당의 목표와 관련 있다. 당의 목표가 자본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를 건설하는 것이라면 핵심 문제는 사회주의 활동에 헌신하는 사람의 숫자일 것이다.

반면, 당의 목표가 선거 승리라면 핵심 문제는 득표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와 의회 중시 전략은 노동계급을 계급으로서 행동하게 하기보다는 개인으로 쪼개놓는다. 개별 노동자는 체제의 선전에 무기력하다. TV와 신문이 쏟아내는 보수 사상의 포화를 받는다.

우리가 원하는 당의 방향은 그 반대다. 즉, 노동계급을 대중 동원하고 이런 경험에 근거해 근본 변혁을 준비하는 수단으로서 개혁을 위한 투쟁을 활용하는 것이다.

겸직금지 제도의 정신에는 이런 목표를 향할 수 있는 맹아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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