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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미국은 어디로?

이 글은 노동자연대가 11월 9일 주최한 공개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약간 증보한 것이다.

11월 7일, 개표 나흘 만에 민주당 조 바이든이 당선에 충분한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나가겠다지만 말이다.

지난 4년 동안 온갖 패악을 저지르고 극우·파시즘을 고무해 온 트럼프가 패했다는 소식은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당선 첫날부터 이제까지 다양한 저항에 나섰던 사람들에게 이번 결과는 각별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은 적었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바이든이 대승하고 민주당이 상·하원을 독식해, 트럼프와 공화당이 대패하리라는 예측이 주류 논평가들 사이에 팽배했다.

현실은 달랐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초접전을 벌였고, 민주당은 하원에서 의석을 상당히 잃고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 획득에 실패했다. 반면 트럼프는 지난 선거보다 득표를 800만 표 가까이 늘리며 상당한 결집을 과시했다.

바이든과 민주당의 승리?

미국인 약 1억 5000만 명이 투표했다. 투표율은 약 62퍼센트로, 1900년 이래 미국 선거에서 가장 높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심판 여부를 두고 양극화가 첨예한 가운데 상당한 결집이 이뤄졌음을 보여 준다.

트럼프 집권 4년 내내 미국 사회가 겪는 위기가 첨예했고 그에 맞선 저항이 벌어지며 반(反)트럼프 정서가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11월 7일 트럼프 패배를 환영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 ⓒ출처 Ted Eytan(플리커)

2020년만 봐도, 코로나19로 24만 명 넘게 사망했고, 수천만 명이 일자리와 집을 잃었으며, 노동계급과 유색인종은 잔혹한 위협으로 내몰렸다. 이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며 거대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나라를 뒤흔들기도 했다. 수많은 노동계급·청년들 사이에 반(反)트럼프 정서가 커졌다.

필라델피아·미니애폴리스·디트로이트·애틀랜타 등 경합주 대도시들뿐 아니라 휴스턴·오스틴 등 심지어 공화당 강세 지역의 대도시에서도 반(反)트럼프 표가 상당히 나왔다. 바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강력하게 벌어진 도시들이다.

이런 정서 덕에 바이든은 역대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많은 약 7500만 표를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저지하려면 마뜩찮더라도 바이든에 투표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던 듯하다.

하지만 트럼프도 7000만 표 넘게 득표해, 역대 2위 득표를 했다. 이는 지난 선거보다 800만 표 가까이 는 것이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2008년 대선 득표보다 많은 것이다.

쓰라림

트럼프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결과에 대한 서민의 쓰라림과 두려움에 기댔다.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낳고, 심지어 그 위기에서 득을 보는 대기업과 이들을 비호하는 주류 정치인들을 향한 커다란 분노가 미국 노동자·서민들 사이에 고여 있다.

트럼프는 온갖 반동적 사상을 동원해서 반(反)주류(‘아웃사이더’)의 대변자 구실을 자처했다. 트럼프가 가한 자극이 너무 거센 나머지, 기존 지배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지배계급 주류는 트럼프한테 등을 돌렸다. 반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국수주의·외국인 배척 등이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여긴 보수적 백인 중간계급과 소도시 유지들은 적잖이 트럼프에 결집했고, 그 과정에서 트럼프는 일부 백인 노동자들과 심지어 유색인종에게서도 득표할 수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그런 층에서 많이 득표하는 것이 필연은 아니었다.

예컨대 플로리다에서 트럼프는 51퍼센트를, 바이든은 48퍼센트를 득표했다. 하지만 같은 날 치러진 최저시급 기준 인상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는 61퍼센트가 인상 찬성에 투표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그중 20퍼센트인 100만여 명이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에 투표한 것이다.

이를 보면, 바이든이 트럼프를 압도할 득표에 실패한 것은, 적잖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바이든을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이든은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보다 1000만 표를 더 얻었는데도, 불황의 피해를 크게 입은 쇠락한 공업 지대 ‘러스트 벨트’에서 득표를 거의 늘리지 못했다.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던 몇몇 선거구에서 바이든은 2016년 클린턴보다도 적게 득표했다.

“바이든이 클린턴 때보다 득표를 늘린 곳에서도 증가분 평균은 [전국 증가분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3.4퍼센트밖에 안 된다. 또 그런 곳에서 바이든은 2016년에 트럼프가 가져간 표를 거의 되뺏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바이든이 미국 대중의 반(反)트럼프 정서와 변화 염원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것은, 그가 지배계급 주류를 적극 대변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흑백 분리 지지자들과 함께 정치 이력을 시작했고, 수많은 흑인들을 감옥에 가둔 ‘폭력범죄 단속 및 법집행법’을 작성했다.

바이든은 호전적 제국주의자이기도 하다. 바이든은 1990년대에 체첸 침공 결정을 주도했고,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 지지했으며, 오바마의 부통령으로서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압력을 직접 행사했다. 당시 미국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전략은 오늘날 미·중 갈등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됐다.

바이든의 부통령 당선인 카멀라 해리스도 정치 이력 내내 경찰력 강화와 범죄 엄단을 옹호했고, 사형 집행과 미국의 시리아 침공을 지지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트럼프처럼 몰인정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비쳐지길 바랐지만, 그가 기반한 미국 지배계급 주류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했다. 그래서 바이든은 최저시급 인상 요구에 반대했고, 국경 단속 강화와 미등록 이주민 강제 수용을 지지했으며, 경찰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벌여 논란이 되자 몸통 대신 ‘다리를 쏘라’고 했다.

이런 바이든이 고통받는 수많은 노동자·서민을 대변할 후보로 여겨지기는 어렵다.

민주당이 트럼프에 맞서 기존 질서를 옹호하며 선거에 임했기 때문에, 트럼프를 압도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상·하원 선거와 주정부·주의회 선거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의석을 상당히 잃고 상원에서도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또, 텍사스·노스캐롤라이나·아이오와·펜실베니아·미시건에서 주정부 장악에 실패했고, 뉴햄프셔는 공화당에 뺏겼다. 이 주들에서는 낙태권, 경찰 재정 삭감 등 이제껏 운동이 성취하거나 요구한 권리들이 주정부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성적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와 주류 언론들은 민주당이 너무 ‘좌파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보파 탓을 했다. 하지만 이는 번짓수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오히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로 대표되는 좌파적 여성 하원의원들 “스쿼드[분대]”는 모두 재선에 성공했고,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를 받는 의원의 수는 갑절로 늘었다.

종합하면, 트럼프는 신자유주의 주류에 대한 불신을 반동적으로 자극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피해를 본 대중의 불만을 얼마쯤 결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전염병 대유행과 경제 위기가 꽤나 심각했고, 트럼프에 맞선 저항이 거대했기 때문에 이 결집으로 재선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던 듯하다.

반면 민주당은 지금 위기를 낳고 심지어 위기에서 득을 본 기득권층을 대변한다 여겨졌고, 그 때문에 증오를 한몸에 받던 트럼프를 압도하지 못했다.

선거가 끝나도 위기는 남는다

바이든은 승리를 선언하며 “분노를 가라앉히고 … 위기에서 회복할 때”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미국 사회에는 여러 위기가 중첩돼 있다.

먼저 경제 문제가 있다. 미국 경제는 1930년대 대불황 이래 최대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트럼프는 몇몇 지표를 들며 경제가 회복세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미국 경제의 생산성은 2007~2009년 대침체 이전 수준으로 결코 회복하지 못했으며, 외려 또 다른 대침체를 앞두고 있다는 예측이 파다하다.

코로나19 위기는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는 촉매 구실을 했다. 미국의 코로나19 위기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데, 확진자가 1000만 명을 넘고 24만 명 넘게 사망했다. 목숨을 부지한 수천만 명이 일자리와 집을 잃었고, 막대한 빚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서민·유색인종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짊어졌다. 반면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트럼프는 이 위기를 키웠다. 트럼프는 방역 조처를 모조리 무시하고 경제를 재가동하라고 압박하며, 이에 반대하는 전염병 대응 기관들을 체계적으로 약화시켰다. 동시에 트럼프는 코로나19가 허구라는 음모론을 부추겼고, 방역 완화를 촉구하는 극우 무장 시위를 고무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를 거치며 미국 경제는 역대 손꼽히는 낙폭으로 추락했다. 트럼프가 극우를 고무하며 급격히 오른쪽으로 기운 이유도 이런 중첩된 위기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고 부자들은 부유해지는 체제, 전염병 대유행에도 변변한 의료·복지 혜택은커녕 그나마 있는 복지도 삭감하는 이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만들고, 지키고, 굳힌 것은 미국 지배계급 기득권층이었다. 바로 바이든 자신과 그가 대변하는 자들 말이다.

대안 부재

바이든이 “회복”을 위해 내놓는 방안들을 봐도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

바이든은 10년에 걸쳐 약 10조 달러 규모의 정부 투자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얼핏 보기에 대단히 큰 듯 보이지만, 이를 10년으로 나누고 순수 신규 지출만 꼽으면 변화는 보기보다 크지 않다.

바이든은 이런 지출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트럼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수준인데, 미국 법인세는 트럼프 이전에도 여러 차례 인하된 바 있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정부 지출만으로 지금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생산성·수익률 저하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바이든 정부가 실제로 대규모 지출을 한다 해도, 이는 잘해야 단기적 효과만 있을 것이다. 또, 위기가 더한층 심해지면서 복지 삭감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노동 대중은 더한층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바이든은 당선 선언을 하기 무섭게 코로나19 대응 TF팀을 꾸려 “전국적 방역 대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심지어 트럼프 정부에도 방역 대책은 있었다. 문제는 방역 대책 유무가 아니라, 그 대책이 기업의 이윤보다 대중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가다.

하지만 바이든은 그런 우선순위를 한사코 거부해 왔다. 코로나19 와중에 수천만 명이 변변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도(관련 기사 본지 339호 ‘트럼프와 사영화된 의료로 위험에 노출된 미국’), 바이든은 전국민 단일건강보험 제정에 반대하고 민간 의료보험 기업의 수익성 보장을 지지했다. 심지어 바이든은 가뜩이나 열악하던 기존의 의료보험 혜택을 축소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생물학자 롭 월러스는 이렇게 썼다. “TF팀원 중 한 명인 이지키얼 이매뉴얼은 (오바마의 전 수석 보좌관 람 이매뉴얼의 형이다) 2019년에 이렇게 썼다. ‘70~90세가 되도록 열심히 산 사람들이 늙어서 하는 ‘일’은 대개 노는 것이다. … 그런 삶이 의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생각이라면 [코로나19 피해를 크게 입은] 요양원들에 어떤 조처를 취하겠는가?

“신자유주의는 ‘큐어넌(QAnon)’ 음모론자들이 꾸며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흉악한 일을 실제로 저지른다.”

인종차별 문제는 어떤가? 트럼프의 패악이 워낙 심각해 누구든 그에 견주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트럼프 어드밴티지’가 있지만, 바이든도 여기서는 만만찮다.

바이든과 해리스 모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거리를 뒀고, 운동의 요구를 한사코 거부해 왔다. 운동이 경찰의 재정 삭감과 해체를 요구할 때 바이든은 경찰 재정 3억 달러 증액 공약으로 응수했다.

상징적이게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있던 오바마 정부 시절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장갑차와 중화기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진압했다.

바이든이 “회복”하려는 체제는 바로 이런 사회다. 미국 지배계급 주류가 바이든을 지지한 것도 이렇듯 바이든이 신자유주의의 철저한 대변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크게 위기에 빠져 있고, 그에 따라 정치적 양극화도 첨예해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광범한 반감을 의식해 이런저런 조처를 취하겠다고 하지만, 그가 추진할 가장 담대한 정책도 기껏해야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고, 위기가 첨예해질수록 자신이 대변하는 지배계급 주류의 편에서 노동계급 대중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허니문’은 없다

위기에 빠진 체제를 트럼프에 이어 대변할 조 바이든 ⓒ출처 미군

바이든은 대중의 변화 염원에 부응하기는커녕 고통과 쓰라림을 키울 것이다. 그럴수록 위기는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첨예해질 것이다. 거기에 트럼프 4년이 남긴 것들이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4년 동안 체제 위기에 대응하며 미국 사회의 가장 반동적인 부위를 결집시켰다. 트럼프는 극우를 고무해 위기를 키운 잘못을 가리고,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트럼프의 전략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다.

트럼프 덕에 미국의 극우·파시스트들은 이전에는 없던 영향력과 전국적 전망을 갖게 됐다. 이들은 선거 기간에도 주(州) 경계를 넘나들며 반(反)트럼프 유권자들을 겁박했고, 개표 와중에는 경합주에 집결해 몇몇 개표소를 무장 습격했다.

트럼프가 계속 쟁투에 매달리는 것도 이와 연관 있다. 그로써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와는 별개로, (끝내 패하더라도) 극우가 힘을 얻어 기세를 유지하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로써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 등 자신이 스피커 구실을 한 온갖 강경 우익 운동을 극우·파시스트들과 더 가깝게 연결시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극우·파시즘이 성장할 계급적·정치적 토양이 더 일궈질 것이다.

한편 공화당의 대응은 ‘엇박’으로 요약된다. 트럼프의 쟁투를 지원할지(그럼으로써 트럼프의 극우 키우기 어젠다를 도울지), 아니면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기존 정치 질서 복원에 일조할지(그럼으로써 당을 “대자본의 믿을 만한 도구”로 다시금 자리매김하게 할지)를 두고 복잡한 계산에 빠져 당내에서 엇갈리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전통적 대자본 정당 공화당 내에 계급 기반이 다른 우익 포퓰리즘 세력의 영향력이 트럼프 4년을 거치며 상당히 커진 것을 반영한다(관련 기사 본지 342호 ‘미국 대선과, 트럼프가 일으킨 정치적 지각 변동’).

투쟁

파시스트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 대표는 바이든 승리 선언 직후 이렇게 말했다. “‘물러서서 일단 대기’하라던 지침은 해제됐다.” 행동에 나선다는 엄포다.

바이든 하에서, 코로나19가 극우의 재결집 지점이 될 수 있다. 팬데믹 초기에 미국 극우가 방역 완화, 마스크 반대 등을 걸고 무장 시위를 벌였던 것 같은 일이 재현될 수 있다. 이미 영국·독일 등 유럽 곳곳에서 반(反)마스크 시위가 극우 결집의 토양이 되고 있듯 말이다. 이런 운동에 깔린 (코로나19 허구론 등) 음모론, 유대인 혐오, 국수주의 등은 극우·파시즘 정치의 요소들과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지금껏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극우의 중요한 어젠다였던 인종차별·이주민 문제도 재결집의 축이 될 수 있다. 그간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 이민자 권리 옹호 운동 등을 두고 극우가 폭력 행위를 일삼으며 자신의 세를 과시해 온 바 있다. 바이든이 선거 때처럼 집권 후에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거리를 두는 것이 극우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바이든의 신자유주의가 키울 고통과 반감을 (이번 선거에서 부분적으로 그랬듯) 극우가 대변하게 될 여지도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프랑스·독일·스페인·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모두에서 신자유주의 정부에 대한 환멸에 힘입어 극우가 성장한 일이 미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트럼프 4년이 남긴 두 번째 결과물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노동계급 대중의 저항 말이다.

트럼프 임기 4년은 끔찍한 일들로 가득했지만 그에 맞선 저항도 만만찮았다.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무슬림 혐오 등에 맞서 대중 저항이 계속됐다. 교육·서비스·공공부문 등에서 노동계급 저항도 조금씩 자라났다.

특히 지난 여름에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중 운동이라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했다. 수천만 명이 이 운동에 참가했다. 코로나19 고통 전가에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이 이 운동에 커다란 영감을 받아 속속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운동들에 참가한 미국 대중은, 앞으로도 인종차별·극우뿐 아니라 바이든 정부가 펼칠 노동계급 조건 공격에 맞서서도 작업장과 거리에서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 투쟁으로 노동자 서민의 이해관계를 진정으로 대변해야 극우의 부상도 저지하고, 위기를 낳고 키운 지배 체제에 옳게 맞설 수도 있다.

그러려면 투쟁을 중심에 두고 건설하는 일관되고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은, 트럼프를 선거로 패배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바이든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일절 삼갔고, 이제 그 전략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승리 선언을 하기가 무섭게 진보파를 단속하고 나섰다. 바이든은 “내가 했던 말 어디를 봐도 나를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라고 여길 부분은 한마디도 없다”고 했고, CIA 요원 출신인 민주당 하원의원 애비게일 스판버거는 “사회주의니 사회주의자니 하는 말을 집어치워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 당은 [이번 선거에서] 훌륭한 지지자들을 잃었다” 하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를 거치며 첨예해진 위기에 대응하며 대중의 변화 요구를 받아안기는커녕 이를 단속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미국 민주사회당(DSA) 소속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여기에 “우리는 적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적극 맞서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한편, 샌더스가 바이든 정부의 노동부 장관이 되리라는 하마평이 무성하다(샌더스 자신도 의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샌더스가 바이든 정부의 일원이 되면, 정부의 입장에 순응(타협)해야 한다는 강력한 압박을 상시적으로 받게 될 것이다. 체제 위기가 심각한 시기에 그런 압력은 대중을 위한 변화 염원을 단속하는 방향으로 가해질 것이다. 샌더스가 그런 길로 가게 된다면,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진보적 변화 염원에 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는 다른 전략, 대중 운동을 근본에 두는 전략이 필요하고 가능하다. 미국의 역사가이자 투사였던 고(故) 하워드 진의 말처럼, “역사가 진보하고 부정의한 질서가 무너진 것은 … 정치인들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직접 행동했을 때만 가능했다.”

트럼프에 이어 이제 바이든이 대변하게 될 체제의 패악에 맞서야 할 지금, 그런 노동계급 대중 운동이야말로 비할 바 없이 중요하다. 이를 일관되게 고무할 혁명적 정치가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강력해지기를 바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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