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여러 나라와는 달리 미국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투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영국의 경우, 노동조합과의 연계를 통해 노동계급과 연결된 개혁주의 정당인 노동당이 있다. 하지만 왜 미국에는 이에 견줄 만한 정당이 없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매우 전투적인 노동계급 행동이 잇따라 있었고, 사회주의 조직을 만들려는 시도도 거듭 있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0년대에 쓴 글에서 미국에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 이유로 두 가지를 주되게 내세웠다. 

엥겔스는 새로운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몰아낸 뒤 거대한 면적의 토지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덕분에 노동계급이 정착해서 성장하는 것이 억제됐다고 말했다.  

1865년에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후 커다란 산업 호황이 있었다. 그러나 엥겔스는 노동계급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노동자들이 새로운 땅으로 이주했고, 그들의 일자리는 새로운 이민자들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 분석이 맞든 틀리든 간에 1920년대가 되면 이 분석은 더는 적용될 수 없었다. 주요 도시에 정착 노동계급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노동계급의 전투성이 엄청나게 고조됐음에도, 노동자 정당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이는 좌파가 민주당 내에서 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당을 통해 진보적 변화를 추구하는 좌파의 전략은 매번 실패했다 ⓒ출처 GPA Photo Archive(플리커)

민주당은 1930년대 이전까지는 노예제를 지지하고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 법’ 지지 정당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30년대에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 이 당의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1930년대에는 대불황의 고난과 시련에 맞서 수백만 노동자들의 전투적 행동이 몰아쳤다. 

그 결과 루스벨트는 미국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뉴딜”이라고 알려진 정책을 도입해야만 했다. 

이 시기에, 노조가 독립적 정당을 만들어 정부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영향력 있던 조직인 산별노조협의회(CIO)의 지도부는 이런 논의에 관심이 없었고, 대신에 루스벨트와 민주당과 제휴하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상당한 지지 속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 기회는 유실됐다. 

유실 

이때부터 좌파와 노조는 민주당 내에서 조직해야 하며 자신들만의 정당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다.  

민주당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중에는 1960년대 반동적인 남부의 딕시크랫[인종 분리를 지지한 미국 남부의 우파적인 민주당원들]을 당 밖으로 몰아내려 한 재편 시도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지지를 받는 자본가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꿀 수 없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부 좌파는 수십 년간 거듭거듭 민주당에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 정성이면 독립적 정당을 구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버니 샌더스 같은 인물들의 진보적인 정치가 미국에서도 청중을 많이 모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샌더스나 또 다른 좌파 지도자가 노동조합 운동의 요구 일부를 받아들일 정당을 만든다면, 이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하나 더 생기더라도 —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 대중적으로 존재한다 — 그 당은 이 시대의 복합적 위기들과 대결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이런 류의 선거 대응 노력에 의존하기보다는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노동계급의 이익을 전진시키는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