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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경찰 개혁에는 아무런 진보성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적 과제 하나는 검찰의 수사종결권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옮겨 경찰을 강화하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검찰의 권력형 부패 수사 권한을 공수처로 옮기는 것이다.)

검찰, 경찰, 국정원 모두 비민주적 악행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그중 하나인 경찰을 강화하는 게 과연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 든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더 나쁘다.경찰의 규모와 권한은 늘어나는 반면, 검찰 개혁은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막으려는 꼼수에 불과했음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 약화는 안 그래도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는데 그조차 후퇴하고 있다.

자치경찰

정부·여당은 경찰 강화뿐 아니라 경찰 권력 분산도 ‘개혁’ 과제로 함께 추진하겠다고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설치가 그것이다.

경찰을 국가경찰과 시·도 자치경찰로 나누고, 이 중에서 행정 경찰과 수사 경찰을 분리해서 후자는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가 지휘·통제한다는 게 골자다.

쉽게 말해 경찰청이라는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을 둬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자치경찰제 도입을 지지해 온 온건 NGO들조차 정부 안을 즉각 비판했을 정도로 그 실효성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경찰 서열 꼭대기에 있는 경찰청장이 각 조직의 인사권 등 핵심 권한을 쥐고 있는 위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자치경찰제가 처음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제주도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해 지금까지 운영중이고, 그 밖의 4개 시도에서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그동안 경찰이 좀 더 민주적으로 개선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없다.

민주당은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자치경찰제 관련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오히려 경찰력 비대화를 포함시켰다. 전국 200개 넘는 자치경찰대를 신설하는 대신 국가경찰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내용을 삭제한 것이다. 이로써 이미 총원 14만 명에 이르는 공룡 경찰이 몸집을 또 키우게 됐다. 관리자급 인력만 곱절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정권의 부패를 감추고 경찰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문재인 정부 ⓒ출처 청와대

경찰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자치경찰이 주민의 기초적 생활과 밀접한 업무만 담당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경찰과는 구분된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경찰이든 지역·자치경찰이든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기존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몽둥이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예컨대 자치경찰제가 잘 발달한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에서 노란조끼 시위가 분출하자 국가경찰이 직접 진압과 검거에 나섰다. 그동안 자치경찰은 ‘시위자들의 약탈 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진압에 동참했다. 미국에서도 흑인 시위를 일선에서 폭력 진압한 경찰은 지역·주 경찰들이었다.

그러므로 “자치경찰”은 지방 정부로 통제권이 조금 분산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이번 정부·여당의 자치경찰제 법안도 자치경찰이 국가경찰과 동일하게 무기를 휴대·사용할 수 있고 긴급체포권 등 초동조치권을 갖게 했다.

증원된 경찰 수만큼 경찰 폭력의 위험도 커질 수 있음을 심각하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국정원 ‘개혁’

정부·여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것을 두고 국정원 개혁이라고 한다.

국정원 대신 경찰은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활개쳐도 된다는 것인가? 박종철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바로 경찰의 대공수사였다.

최근 수년간 국가보안법 사범 입건은 국정원이나 검찰보다 경찰이 훨씬 많았다.(물론 중대 사건들은 국정원이 주도했다.) 예컨대 2017년 국가보안법으로 입건된 42명 중 41명이 경찰에 의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사상 자체를 차별하는 조항인 7조 1항 찬양·고무죄 사범만 26명에 달했다.

정부의 국정원 개혁안은 경찰 내에서 국정원과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보안국을 확대 강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벌써 경찰은 수십 명의 경력직 안보수사관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를 대부분 국정원 직원들이 차지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이 경찰의 대공수사권 강화를 추진하면서 ‘개혁’으로 치장하는 것은 메스꺼운 일이다.

한편, 국민의힘은 국정원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경찰 강화를 반대한다기보다 국정원이 기존 기능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보는 듯하다. 우파 정부들은 대선 개입(이명박)이나 통합진보당 해산(박근혜) 등에서 국정원을 요긴하게 활용해 왔다.

민주당은 우파 야당과 협상하기 위해 국정원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기로 한 약속(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한다는 의미)을 철회했다. 그리고국정원에 대공‘조사’권을 남겨 두거나(이렇게 되면 경찰·검찰과의 협조 속에 국정원의 은밀한 만행은 계속될 것이다),대공수사권 이전을 3년 유예하는 안을 내놓고 있다.

대국민 거짓말

검찰과 경찰, 국정원(정보기관)은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적 일부이자 자본가 계급의 억압 도구이다. 이 수사·정보 기관들은 합법적인 폭력과 처벌, 감시 권한을 독점함으로써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자본주의 국가 기구를 수호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모든 자본주의 나라에서 중앙정보부 CIA와 연방수사국 FBI, 프랑스의 대외안보총국 DGSE, 영국의 MI5와 MI6 등 정보기관과 보안경찰들은 경쟁 국가와 국내 저항세력에 대한 감시와 사찰을 벌인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를 그대로 둔 채 검찰, 경찰, 정보기관을 억압받는 계급들에 이롭게 개혁한다는 것은 공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국가의 평상시 수장인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주의 운운하며 권력기관 개혁을 내세운 것도 처음부터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지배계급 내 권력 쟁투를 위한 것이었다. 특히, 권력기관 개혁 드라이브가 조국 사태를 비롯해 정권 연루 부패 의혹이 터지자 불 붙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보면 위선적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경찰력 강화에 속도를 내는 것은 역대 정부의 임기 말 정치적 통제 강화 시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과거 정부들도 정권의 위기가 심해질 때 (성)범죄 근절 운운하며 경찰력을 강화하고 서민층 분위기를 경색시키곤 했다.

코로나19는 문재인 정부에게 특히 좋은 명분이 되는 듯하다. 정부는 대중의 건강보다 경제 침체를 우려하면서 방역 단계를 섣불리 낮췄다가, 상황이 악화되면 책임을 애먼 데로 돌리며 권위주의적으로 행정을 강화하기 일쑤다. 최근에는 경찰버스와 병력을 동원한 집회 봉쇄도 서슴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정치·경제의 위기가 심해질수록 지배계급은 경찰력에 더욱 의존해 기층 정서를 통제하려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찰 ‘개혁’에는 (검찰 개혁처럼) 어떤 진보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