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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핵발전소 감사 결과 논란 :
핵 산업·무기개발 약화 막으려는 우파의 공격

10월 20일 감사원이 월성 핵발전소 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월성 1호기는 2019년 1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결정에 따라 영구 폐쇄됐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폐쇄 결정 자체가 타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감사 범위가 아니었다”면서도 폐쇄 결정의 근거 중 하나인 경제성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됐다고 발표했다. 또 이 평가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며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산업자원부(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당시 월성 핵발전소의 전력 판매 단가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사실상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또 감사가 시작되자 고의로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감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산자부 장관은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지는 않았다면서도 관련 자료 삭제 등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해 감사 방해 행위를 일부 인정했다.

이 발표 뒤 우파 야당과 언론이 연일 정부에 맹공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은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대전지검 형사5부)은 폐쇄 결정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백운규와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이 평가했다는 핵발전소의 ‘경제성’ 자체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예컨대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높이려면 비용이 늘어나고 따라서 경제성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감사원은 폐쇄의 타당성 자체는 따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감사원의 경제성 평가는 핵발전소의 안전성은 확보됐다는 전제 하에서 이뤄진 계산일 것이다. 따라서 월성 핵발전소 폐쇄가 사실상 근거 없는 폐쇄였다는 발표인 셈이다. 우파 야당과 핵산업계가 기세등등하게 공세를 펴는 이유다.

그러나 핵발전의 근본적 위험을 고려하면, 경제성만으로 평가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안전성을 확보할 방법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핵폐기물은 수십만 년 동안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는다. 이를 인간 사회와 자연환경에서 안전하게 분리 보관할 방법은 없다. 현생 인류가 등장한 지 20만 년밖에 안 됐는데 어느 누가 핵폐기물을 수십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수십만 년’이라는 시간은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빙하기 같은 기후 변화도 몇 차례나 올 수 있을 만큼 긴 기간이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나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보여 주듯, 사고의 결과는 재앙적이다. 두 지역 모두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양의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후쿠시마에서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냉각수를 태평양에 방류할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체르노빌은 지역 전체가 수십 년간 버려져 있다.

백번 양보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막는 데 필요했을 시설들 즉, 지진과 해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시설만 완전히 구축하려 해도 핵발전소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 감사원의 계산법에 이런 비용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다 채우고도 박근혜 정부의 ‘수명 연장’ 결정에 따라 계속 운영돼 왔다.

경제성과 안전성

사실 감사원이 핵발전소 폐쇄의 ‘경제성’을 감사한다고 했을 때부터 애당초 정해진 결론을 따라간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공식 기관들이 수행하는 핵발전소의 경제성 평가에 앞서 말한 요소들이 포함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애당초 핵발전소가 세워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9월 해당 정보를 확보하고 감사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처럼 특정 산업이 장기간에 걸쳐 환경과,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끼칠 어마어마한 위험이 간과된다. 개별 자본가들은 수십 년 뒤에 찾아올 위험보다 다음 분기의 이윤을 더 우선시한다. 설사 미래의 위험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이들의 이윤 경쟁을 동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떤 착한 자본가가 환경 비용을 지불하면, 그는 머지않아 시장 경쟁에서 밀려나 청정한 미래를 보기도 전에 퇴출되거나 빚더미에 나앉아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외부 비용’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국 자본가들이 세계 시장에서 벌이는 경쟁에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것이 세계 체제에서 해당 국가의 경제적·군사적 지위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안전 비용을 무시한 핵발전 정책은 그동안 한국 자본가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 줬다. 다른 나라보다 값싼 전기를 공급받아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전통적 제조업뿐 아니라 정보통신 산업에서도 전기요금은 결정적 경쟁력이 되곤 한다. 오죽하면 값싼 전기요금 때문에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외국계 기업도 많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1983년에 가동을 시작한 월성 핵발전소는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다. 국내의 다른 핵발전소가 경수로인 것과 달리 월성 1~4호기는 중수로다.

“월성 1호기를 중수로로 결정한 것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계획과 연관되어 있다. 중수로의 사용후핵연료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특별한 용도에 쓰기 위해 종류가 다른 핵발전소를 구입한 것이다.”(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

미국은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 시도에 제동을 걸었지만 그 대가로 핵발전 기술을 지원해 줬다. 물론 한국 정부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 왔다.

핵발전소 해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문재인의 탈핵 사기극

문재인 정부도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공약했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국가의 논리에 따라 핵발전을 늘려 왔다. 심지어 해외 수출과 핵무기 개발에도 의욕을 보인다.

예컨대 신고리 4호기는 2019년에 발전을 시작했는데, 그 설비용량만 해도 폐쇄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합한 것보다 크다. 준공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신한울 1~2호기와 한창 건설중인 신고리 5~6호기까지 고려하면 폐쇄된 핵발전소의 규모는 사실상 효율성 제고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본지 226호 기사 ‘탈핵 공약 폐기, 문재인 정부 규탄한다’). 핵발전소 수출 정책도 계속되고 있다. 더는 짓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다.

‘탈핵’은커녕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계속돼 왔다(신한울 1~2호기는 95% 이상, 신고리 5~6호기는 50% 이상 공저이 완료됐다) ⓒ그래프 장한빛

역대 민주당 정권에서 핵무기 개발 시도가 이어져 왔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도 핵잠수함 개발을 위해 미국 측의 동의를 얻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 진수된 잠수함 안무함에는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이런 핵무기 개발에는 원료도 필요할 뿐 아니라 핵물질을 다루는 기술과 노하우도 필요하다. 핵발전은 이를 위한 필수 산업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각국의 핵발전소 운영을 치밀하게 감시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탈핵’은커녕 핵발전을 늘려온 것도 안전보다 이윤과 군사적 필요를 앞세운 것이었으므로,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모순적이게도 경제성 평가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산자부 직원이 한밤중에 몰래 자료를 삭제하는 일까지 벌인 이유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고리와 월성에서 각각 한 개씩 핵발전소를 폐쇄한 것은 탈핵의 방향성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탈핵 시늉을 하며 환경 엔지오 등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묶어 두는 한편, 핵발전소 해체 산업을 성장시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인 듯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10월 제5차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원전 해체 역량을 배양하고 미래 해체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원전 해체 산업 육성 정책방향을 결정”한 바 있다.(《원자력 정책》 2018년 5월호)

우파 야당과 언론, 핵산업계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말로나마 핵발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키우는 정부의 방식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정부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대놓고 감사를 방해했으니 지배자들 간의 룰을 지키지 않는 오만함도 불만의 소재일 것이다. 설계 단계에서 보류돼 있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이슈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 온 검찰은 이참에 약점을 쥐려 달려든 듯하다.

핵발전을 더욱 확대하려는 우파의 공세는 좌절돼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이에 맞서 탈핵을 추진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에 독립적인 탈핵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