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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 ②:
정치 양극화, 코빈의 부상과 좌절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코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 ①: 브렉시트란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됐을까”를 읽으시오.

브렉시트로 영국 정치가 출렁인 지난 4년은 노동당 내 좌파이자 사회주의자인 제러미 코빈이 부상했다가 좌절한 기간과 겹친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약 9개월 앞선 2015년 9월 12일 제러미 코빈이 압도적 차이로 노동당 대표로 당선했다. 이는 기성 정치권에 감전 같은 충격을 줬다. 코빈이 이끈 노동당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1년 뒤에 열린 총선에서 민영화된 기업의 재국유화 같은 공약을 내걸고 큰 성공을 거뒀다. 영국 유권자 1200만 명이 코빈의 메시지에 호응했다.

코빈의 부상은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좌파 정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가 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코빈이 노동당 대표가 된 직후에 열린 난민 연대 집회에는 5만 명이나 참가했다. 그러므로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인종차별주의의 승리로 보는 것은 무척 일면적인 데다가 자신의 그릇된 편견으로 세상사를 끼워 맞추는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 자본주의가 여러 겹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세계 곳곳에서 정치가 양극화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득세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힘이 크게 흔들리며 좌우 모두의 공격을 받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신봉했고, 신자유주의의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는 기성 권력자들이 그냥 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환멸은 더 커지고 대중은 더 좌로, 더 우로 시선을 돌린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정치 양극화의 주된 수혜자는 극우다.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을 주장하며 떠올랐던 급진 좌파들은 결국엔 실패했다. 그리스 시리자는 집권한 지 반년 만에 긴축 정책 추진자로 변하며 배신했다. 현재 스페인 연립정부에 포함된 포데모스도 마찬가지다. 2020년 11월 영국 노동당에서는 제러미 코빈이 축출 시도에 직면했다.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헌신하는 기성 권력자와 자본가 계급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분노가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투쟁이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정치를 규정해 왔다. 이 투쟁에서 좌파가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느냐가 코빈 등 급진 좌파의 성장과 좌절에서 배울 중요한 교훈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사회주의자는 어떤 무대에서 어떤 정치로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할까?

변화

코빈의 성장은 좌파 전체를 고무했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좌파와 사회주의자가 고무됐다. 코빈의 부상은 사회주의 사상이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음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코빈의 성장은 시리자와 포데모스와는 차이점도 있었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바깥에서 더 좌파적인 세력이 성장하는 모습이었지만, 코빈의 경우에는 정치적 시체 취급을 받던 영국 노동당의 안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노동당 바깥에서 새로운 좌파 정당을 건설하려던 시도가 중단됐다. 코빈 지지자 수십만 명이 노동당에 입당하는 흐름과 함께 많은 좌파가 노동당으로 향했다.

2017년 6월 총선까지 코빈은 승승장구했다. 코빈은 브렉시트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 노동계급과 영국 국민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자고 호소했다.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파를 이루려던 보수당의 구상은 무참히 망가졌고, 노동당 지지율의 상승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제 선거를 한 번만 더 치르면 코빈 총리의 시대가 열릴 것만 같았다.

이 선거 직전에 맨체스터에서 폭탄 공격이 벌어졌고, 기성 정치인들은 이를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데 이용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빈은 역대 영국 정부들이 직접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제국주의적 전쟁에 동참한 것이 그런 비극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지목하며 영국의 제국주의적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영국의 외교 정책이 폭탄 공격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되는 코빈의 총선 공약은 인기가 좋았다. 기성 권력자와 자본가 계급에 염증을 느끼던 영국 유권자 1200만 명이 신자유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한 코빈의 좌파적 주장에 호응했다.

제러미 코빈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좌파 개혁주의 정치인의 장점과 한계가 모두 드러났다 ⓒ출처 Jeremy Corbyn(플리커)

그러나 단 2년 반 뒤에 열린 2019년 12월 총선에서 코빈이 이끈 노동당은 참패했다. 선거 공약은 2017년 총선과 비슷했기 때문에 정책 차이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영국 사회의 계급투쟁 수준이 낮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기성 정치 권력자들과 자본가 계급은 보리스 존슨이 완수하겠다는 브렉시트가 가져올 혼란도 걱정이었지만, 코빈의 노동당이 집권하며 신자유주의에 더 큰 균열이 생기는 것을 더 싫어했다. 그래서 똘똘 뭉쳐 코빈을 저지하려 했다. 코빈을 물어뜯는 온갖 비방이 난무했다.

이를 뒤집을 만한 수준의 계급투쟁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파업·시위·집회에 나서면서 집단적 단결의 중요성을 느끼고 이해하게 된다. 급진적 사상에도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그런 투쟁이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기후 위기에 항의하는 ‘멸종반란’ 운동 등이 가능성을 보여 줬지만, 아직 세력 균형을 뒤집을 만큼은 아니었다.

코빈의 성장과 2017년 총선의 성공으로 개혁에 기대감이 상승하고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의 자신감이 높아진 상황을 활용해 계급투쟁을 전진시킬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영국 노동계 지도자와 많은 좌파 활동가들은 코빈의 선거적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이거나 파업을 독려하지 않았다. 단백질을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스스로 힘써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은 자라지 않는 법이다.

노동당 안에서는 우파적 반발이 거셌다. 의원단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우파는 코빈에 대한 거짓 비방에 동조하며 계속해서 코빈을 끌어내리려 했다. 그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몽니 부리기였고 노동계급에 대한 범죄였다.

딜레마

코빈과 노동당 좌파의 후퇴도 있었다. 코빈은 오랫동안 견지한 핵미사일 반대 입장에서 후퇴했다. 이는 반제국주의 정치와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코빈은 브렉시트 입장에서도 후퇴해, 2016년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을 2차 국민투표 실시 입장으로 선회했다.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유권자들조차 2016년 국민투표 결과를 이행해야 한다고 보는 상황에서 2019년 12월 총선은 브렉시트가 최대 쟁점이 됐는데, 이 입장 변경은 무원칙하고 비민주적인 데다가 코빈이 동요한다는 인상을 줬다.

노동당과 코빈이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비방에 맞서 코빈과 노동당 좌파가 싸우지 않고 후퇴한 것도 큰 실책이었다. 이 비방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정당성 훼손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코빈이 당대표를 하는 동안에도 좌파 인사가 유대인 혐오적이라는 혐의로 제명됐다. 또, 바로 얼마 전에는 코빈 자신을 노동당에서 제명하려는 우파의 공격이 있었는데, 코빈은 여기서도 물러서며 복당을 선택했다.

코빈과 노동당 좌파가 이렇게 후퇴할수록 기성 권력자들과 노동당 우파는 코빈 깎아내리기에 더 자신감을 가졌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올곧게 좌파적 신념을 고수하고 노동당의 잘못된 당론에 용기 있게 맞선 코빈의 이력을 볼 때 이런 후퇴는 그의 성품 탓은 아닐 것이다.

좌파적이더라도, 노동당의 단결 유지와 선거 승리를 가장 중시하는 정치가 그런 불가피하지 않은, 그러므로 무원칙한 타협과 후퇴의 주요 요인이었다. 즉, 의회가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고 보는 노동당의 정치가 근본적 문제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중앙위원장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노동당 좌파의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당 좌파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노동당이 코빈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 그리고 이에 반발하면 누구든 징계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 보면 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은 블레어 하에서 누렸던 만큼의 선전·선동의 여지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의 단결’(사실은 생존)이라는 미명 하에 침묵할 것인가? 그러면 코빈 지도부 하의 노동당에 입당한 수십만 당원들을 배신하는 일일 것이다. 아니면 반항을 택할 것인가? 그러면 축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과거 노동당 좌파들은 이런 딜레마를 피할 수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거대한 대중 운동이 보호막이 돼 줬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당 좌파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노동당 좌파는 노동당에서 우격다짐으로 재확립되고 있는 파산한 극단적 중도 정치와 결별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정당을 결성해야 할 것이다.”

코빈의 부상이 가져온 기회가 유실된 데에서 결정적으로 비어 있는 고리는 노동계급 투쟁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의회보다 거리와 일터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더 중시하는 정치와 조직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거리와 일터라는 무대에서, 선거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중시하는 정치로, 모든 기회를 잡아 계급투쟁의 성장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사회주의자는 계급 속에 뿌리 내려야 한다. 지금은 그것이 잔뿌리일지라도 활력이 있는 뿌리라면, 사회주의자는 계급투쟁의 전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의 성장을 저지하는 데 한몫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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