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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 아닌 노동자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정부가 "플랫폼 노동 보호" 운운하지만: 노동자로 인정 않고 조건 개선도 미흡”을 읽으시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우회적 보호 방안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플랫폼 노동의 성격에 관한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즉,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영업자로 볼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 말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한사코 부정해 왔다. 예컨대 미국의 리프트, 우버 등 운송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성 시비가 불거지자 자신들은 운전기사들을 고용한 적이 없고 운전기사들은 그저 “독립 계약자”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국의 사용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플랫폼 배달, 운전 기사들은 결코 독립적인 자영업자가 아니다.

우버의 경우 운전자가 자주 접속하지 않을 시 계정 차단 등 제재를 받는다. 계정 차단을 당하면 6개월 정도 앱에 접속할 수 없다. 세상에 어떤 자영업자가 자기 가게 문을 자주 안 연다고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하는가?

스스로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와 달리,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매일 콜 할당량을 받는다. 노동자들은 이를 ‘숙제’라고 부른다. 이를 다 채우지 못하면 콜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영업자와 달리 자기 노동력의 가격, 즉 임금에 대한 결정 권한이 없다. 배달 노동자의 경우 시시각각 변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임금이 달라진다. 업체는 노동자가 많이 필요한 시기에 배달료를 일시적으로 올리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이후에 일방적으로 삭감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즘의 근거를 영업 비밀이라며 거부한다.

이처럼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통제 아래서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수 없고, 노동력의 대가를 지급받아 살아간다. 다른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뭐라고 말하든 그들의 이윤은 전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로부터 나온다 올해 5월 1일 노동절 대회 ⓒ출처 서비스연맹

한편, 일각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보자고 한다. 해외에서 추진된 “경제적으로 종속된 비임금근로자”(스페인), “유사근로자”(독일), “준종속근로자”(이탈리아), “독립근로자”(미국) 등이 그런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충분한 개선을 가져다 줄 수 없다. 대표적인 제3 영역이 바로 한국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다. 정부는 특고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외한 뒤 일부 보호의 필요성만 인정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는 매우 불충분한 미봉책에 그친다.

특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노동자성 인정과 근로기준법 적용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이유이다.

투쟁 잠재력

플랫폼 노동자들이 여러 기업에서 일감을 받는다고 해서 노동자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실 건설 일용직 노동자처럼 ‘전속성’(한 작업장에서 주로 일하는지 여부)이 떨어지는 노동자도 이미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여러 기업의 일감을 받는 것은 그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보여 주는 것이지 그들의 자율성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들의 이윤은 전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에서 나온다. 바로 이 점은 플랫폼 노동자도 기존의 노동자처럼 이윤 체제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흔히 불안정하고 파편화된 플랫폼 노동 특성상 집단적 투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지만, 국내외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파업과 집단행동으로 성과를 거둬 왔다.

2016년 영국 딜리버루 배달 노동자들은 시간당 기본급을 없애고 전면 성과급으로 전환하려는 사측의 시도에 맞서 일주일 넘게 파업해 승리했다. 2019년 미국 리프트, 우버 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항의하며 공동 파업에 나섰다. 이런 투쟁이 바탕이 돼, 일부는 법적으로도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는 성과도 있었다.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들도 이런 투쟁의 일부였다. 대리운전, 배달 기사, 퀵서비스 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고 투쟁해 왔다. 플랫폼 노동자처럼 자영업자로 부당하게 분류돼 온 롯데택배 노동자들이 파업해 승리한 것도 한 사례다. 플랫폼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공유 경제의 본질

플랫폼 기업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이 정보 기술의 혁신을 가져와, 독점과 위계가 지배하던 자본주의가 분권화된 네트워크형 경제로 변할 것이라는 주장이 유행한다.

혁신 기술이 소비자와 공급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적절하게 서로를 매칭해 줌으로써 협력에 기초해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공유 경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플랫폼 산업은 점점 더 고도로 집중되고 있다. 국내 배달 앱 시장 규모는 2013년 3347억 원에서 2018년 3조 원 규모로 급증했다. 이 거대한 시장을 거의 두 업체(배달의 민족, 요기요)가 양분하고 있다. 어느 정도 덩치가 커지고 시장의 지배적 점유자가 된 플랫폼 기업들은 다른 대기업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 낮은 가격, 적극적 프로모션 등으로 이용자 수를 늘리려 애쓴다. 그러나 이후 시장 장악력이 커지면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인상하는 등 횡포를 부린다.

횡포

현실의 플랫폼 기업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고 중개 수수료로 이익을 얻는다. 플랫폼 기업들은 여러 업체들이 연합해서 노동자를 공유하고 효율적으로 착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과거에는 한 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대리운전 노동자, 배달기사 등은 이제 여러 업체에서 일감을 얻는다. 이로 인해 기업주들의 “공유 경제”는 열렸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부정당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로 밀려났다.

배달의 민족을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들의 플랫폼 기술이 소상공인과 배달 노동자(라이더) 그리고 플랫폼 기업의 상생에 기여한다며 기업 이미지를 홍보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이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