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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1년:
방역 노동자 희생으로 유지해 온 ‘K방역’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전파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6400만 명이 감염되고 150만 명 가까이 사망했지만 이 수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만 매 시간마다 51명꼴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의료 붕괴’가 벌어진 다른 선진국들과 신흥국에서도 확진자 증가세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백신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며 조만간 팬데믹이 진정될 것처럼 말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현재 개발 ‘성공’을 알린 백신들은 그 안전성과 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검증도 완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백신의 생산과 유통, 분배가 탐욕스러운 거대 제약기업들에 맡겨져 있다. 필요한 곳이 아니라 돈이 있는 곳에만 보급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관련기사)

한편, 백신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각국 정부들이 지금 당장 필요한 방역 조처를 미루는 핑계가 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가장 피해가 큰 나라들에서조차 정부가 방역과 의료에 대한 투자를 미루고 있다. 코로나 백신과 달리 방역과 병원에 대한 투자는 이윤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장차 그 투자를 줄이거나 회수하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래에 팬데믹이 더욱 잦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런 투자야말로 인류를 지킬 필수적 수단인데도 말이다.

한국의 ‘K방역’도 예외는 아니다. 11월 26일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등은 경기도 역학조사관 20명을 대상으로 한 면담 결과를 발표했다. 면담 결과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역학조사관들이 심각한 ‘번-아웃’(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게는 아홉 달 동안 쉴 새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던 역학조사관들은 육체적으로 크게 지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확진자와 그 접촉자들을 조사해 격리 ‘명령’을 내려야 했던 역학조사관들은 “괜히 풀어줬나 … [혹은] 나 때문에 저 사람 생계를 막은 건 아닐까” 하는 심리적 갈등에도 시달려 왔다. 조사자의 대부분이 ‘감정 고갈과 냉소, 울분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 새벽 4시에 퇴근해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지면서 사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한겨레〉 11월 16일치).

11월 30일 서울시내 선별진료소 의료 노동자가 지친 표정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계가 달라졌다’지만 노동자들은 임금도 노동조건도 그대로인 채 혹사당하고 있다 ⓒ조승진

고통스러운 일상이 끝날 기미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확산이 잦아들 만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정부의 경기 부양 조처 때문에 유행은 반복되고 그때마다 규모는 더 커지고 있다. 시시포스의 노동처럼 정상에 오를 때마다 다시 원점에 놓일 게 뻔하니 “냉소”와 “효능감 저하”를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유명순 교수 등은 6월과 8월에도 의료·방역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맡은 임무를 지속하겠다는 의견이 각각 83.4퍼센트, 76.8퍼센트로 시간이 흐를수록 낮아지고 있기도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11월 10일 연구보고서(‘보건의료노동자, K-방역을 말하다)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팬데믹 초기에 겪은 고통스런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냉소와 울분

가뜩이나 부족한 간호인력 문제가 코로나 유행 상황에서 더욱 심각해졌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다. 정부는 ‘덕분에 캠페인’을 벌이며 이들을 K방역의 ‘영웅’이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했지만 그 대우는 형편없었다.

당시 간호사들이 콧등과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일해야 했던 것은 단순히 보호장구를 반복해서 착용해야 했던 탓만은 아니었다. 보호장구가 부족해서 재사용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세척해 말리는 과정에서 얼굴과의 접촉면이 변형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번 보호구를 착용하면 최대한 오래 일해야 했으므로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정작 병원 경영자들은 감염을 차단하는 무균술의 원칙들을 황당할 정도로 무시해 이런 고생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감염을 막기 위한 전신 보호복을 갈아입는 장소가 밀폐는커녕 다른 업무 공간과 분리되지 않고, 수시로 추가 인력이 드나들었으니 노동자들은 ‘도대체 왜 이 삽질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쓸모없는 삽질처럼 사람들 지치게 하는 일도 없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 유행이므로 초기에는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종 감염병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방역 당국의 오만한 태도(예컨대 초기에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 부인한 것 등)와 관료적이고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병원 경영자들 때문에 불필요한 혼란을 자초한 경우도 많았다.

그 부담은 모조리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실행 불가능한 의무를 부과하고 나 몰라라 하다가 사고가 나면 책임을 묻는 식이었다. 감염 위험이 가장 큰 노동자들이지만 정기적인 검사도, 숙소도, 위생 시설도 제공되지 않았다.

턱없이 낮은 임금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정부는 대구에서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전국의 의료진에 방역과 치료 동참을 호소했는데, 이에 호소해 달려온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30만~50만 원가량 수당을 지급했다. 그런데 정작 해당 병원에서 일해 왔고, 따라서 가장 유능했을 노동자들에게는 기존 월급 외에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한 달 뒤 수백만 원씩 임금이 차이난다는 것을 알게 된 노동자들은 커다란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협업을 저해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청소와 환자 이송 등 필수적인 업무가 외주업체에 고용된 고령의 노동자들에게 떠맡겨져 있던 상황도 위험을 가중시켰다. 제대로 된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감염을 피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병원 측은 이들에게 감염 위험에 대한 정보들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민간 병원들은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 제공을 기피했고, 코로나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에도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노동강도를 한층 높였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 시장 논리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 온 것이다.

전쟁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이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은 방역과 의료 대응 수준을 유지하려면 방역과 치료에 필요한 인력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한다.

검사실과 각종 시설 관리, 환자 이송 노동자들도 평상시에 환자를 대면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유급 교육과 훈련 시간이 보장돼야 하고, 환자를 보살필 수 있는 시간과 활동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태에서는 이 노동자들에게 전신보호구를 입고 벗어 가며 그동안 하던 일을 하라고 할 수가 없다. 이 노동자들이 못 하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해당 업무가 떠맡겨지거나 아예 안 하게 된다.

고령의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소득을 지원해 쉴 수 있도록 하고, 사상 최악의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 노동자들을 방역 기관과 병원에 고용해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공병원을 전국 곳곳에 훨씬 큰 규모로 세우고 지역의 거점 병원들을 정부가 인수해 직접 운영해야 한다.

중환자실 인력을 확보하려면, 정부가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기관을 신설·운영해야 한다.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는 ‘당장에’ 숙련된 인력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1년 내내 투자를 미뤄 오고서 이제 와 할 소리는 못 된다. 평상시에도 간호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높은 노동 강도와 낮은 임금 수준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자원’을 호소해 봐야 효과를 볼 리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가 앞으로도 한참 더 갈 텐데도 정부는 백신만 구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방역과 의료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이런 조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는 단 한 개의 공공병원 신축 계획도 포함돼 있지 않다.

반면, 정부의 방역 기준은 갈수록 들쭉날쭉해지고, 스스로 그 기준을 어기기 일쑤가 돼 가고 있다. 거리두기가 효과적이려면 생계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재난지원금 규모는 계속 줄어든다. 돈이 없다고? 재정건전성이 문제라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해가며 10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정권이 할 말은 아니다.”(〈경향신문〉 김민아 선임기자)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많은 나라 정부들이 이 상황을 전쟁에 비유하며 국민적 협조를 호소했다. 그러나 역사상 많은 전쟁에서 지배자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할 뿐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노동계급을 희생시켜 왔다. 그래서 전쟁은 마침내 자국 지배자들을 향한 노동계급의 항의와 저항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전쟁’은 어떨까? 세계 노동계급은 이미 곳곳에서 그 조짐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