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국 〈소셜리스트 워커〉의 기자 토마시 텡글리-에번스가 쓴 기사인데, 일부 사례를 한국의 것으로 바꿨다. 번역과 개작을 양효영과 정선영이 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에게는 사용자에게 착취당하는 것보다 나쁜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착취당하지 않는 것이다.

광범한 층들의 사람들이 갑작스레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특히 청년들이 올해 실업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다. 실업은 청년들의 미래를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동안 해고된 장년층의 많은 수가 다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주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대거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

100만 명이 넘는 실업자 서울고용노동청 앞 해고된 노동자들의 항의 ⓒ이미진

한국의 공식 실업자 수는 100만 명을 넘었다. 외환 위기로 인해 실업자가 급증했던 1999년 10월 이후 가장 많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무급휴직과 임금 삭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게다가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은 무려 25.4퍼센트에 달한다.(올해 9월) 청년 넷 중 하나가 실업자인 셈이다.

정리해고를 당한 이스타항공 노동자 605명은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법증여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해 온 전 민주당 국회의원 이상직은 구속도 되지 않고 여전히 부를 누리고 있다.

ⓒ이미진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이윤을 “축적하는 만큼 빈곤도 축적한다”고 썼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따라서 한쪽 극에서 이루어지는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쪽 극에서 빈곤, 노역, 무지, 학대, 정신적 퇴행이 축적됨을 뜻한다.”

축적을 위한 축적

마르크스는 실업이 단지 변덕스러운 주식시장, 특정 부문의 문제, 경기 침체 등과 같은 “급격한 변동”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업은 “자본주의적 축적 그 자체”에 뿌리박고 있다. 자본들은 더 많은 자기 증식을 위해 “상대적 잉여 노동 인구, 즉 자본의 평균적 필요에 넘치는 인구를 끊임 없이 만들어 낸다.”

마르크스는 이를 “산업예비군”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일자리가 없거나 변변찮아서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자리가 없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계획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사회라면 이런 상황은 완전히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상황이 완전히 논리적이다. 경쟁하는 기업주들이 가능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려고 다투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본가들이 투자를 하면서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이윤을 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동 제한령 기간 동안 갈수록 극명해진 것은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해 이윤을 낸다는 것이다.

가치의 원천은 노동자들의 노동이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모든 가치를 임금으로 돌려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착취라고 했고, 돌려 받지 못한 격차를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잉여 가치”는 자본가들이 얻는 이윤의 원천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가치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또한 의존한다. 이 노동자들도 체제를 유지하는 데서 핵심적이고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착취당한다.

예컨대, 국공립 병원이나 국공립 학교 노동자들은 건강하고 교육받은 노동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해야만 이윤을 거머쥘 수 있다면, 왜 자본주의 체제는 실업을 만들어 내고 필요로 할까?

기업주들은 단지 탐욕스러워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서로와의 경쟁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신기술과 더 효과적인 생산 방식에 이윤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쟁자에 의해 사업에서 밀려날 것이다.

이것이 체제를 마르크스가 말한 “축적을 위한 축적”으로 이끈다.

그래서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데보다 새 기계나, 기술 혹은 인프라에 더 많이 투자한다.

신기술은 생산성(노동자의 시간당 생산량) 향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렇다면 신기술이 개발되면 평범한 사람들이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여가를 누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들이 해고되고 남은 인력이 더 힘들게 일한다.

이런 기계화, 자동화, 취업 노동자의 혹사는 산업예비군의 창출에 일조한다.

실업과 자본주의 구조조정

오늘날 일부 산업 부문의 대기업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기존 인력을 대거 없애면서 로봇 기술에 투자할 기회로 여긴다.

컨설팅 기업 EY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세계 기업의 41퍼센트가 일자리를 신기술로 대체할 계획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답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30년까지 유럽에서 일자리 5300만 개가 자동화될 것이라는 또 다른 예측을 내놓았다. 노동인구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소매업, 제조업, 접객업에서 노동자가 가장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율을 회복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다음 호황으로 가는 길을 놓으려면, 위기 동안 막대한 자본이 도산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계급 사람들은 일자리와 생계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경제 전반에 대량 실업이 만연한 상황은 자본가들에게도 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가들은 실업 덕분에 노동자들을 희생시켜서 자본주의를 구조조정하고 미래의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질 여지를 얻는다.

우선, 산업예비군은 호황과 불황의 주기를 더 순조롭게 만든다.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이 만들어 내는 산업예비군이 “자본주의 축적의 지렛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생산은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는 계획에 기반하지 않는다. 시장의 무정부성에 기대어 노동과 자원을 할당한다.

기업주들은 자기 기업이나 산업 부문에만 이윤을 투자하지 않는다. 다른 산업 부문이 더 수익성이 좋아 보이면 그쪽에 투자해 한몫 잡으려 할 것이다.

산업예비군 덕분에 기업주들은 경제에서 더 수익성 있는 일부분이 팽창할 때 손쉽게 가져다 쓸 노동력을 마련해 둘 수 있다.

둘째, 자본가들은 대규모 실업자들의 존재를 이용해 고용된 노동자들을 길들일 수 있다.

기업주들은 실업 위험을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겁을 줘서 임금 인상이나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그런 것들을 요구하면, 기업주들은 기꺼이 일하려 하는 다른 누군가가 너희를 대신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민간부문의 기업주들은 자기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기 위해 대량 해고를 이용할 수도 있다.

심지어 위기가 아닐 때조차 실업은 임금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임금 수준은 산업 부문마다 큰 차이가 있다. 성차별, 인종차별 같은 다른 요소들도 임금 격차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벌여서 사용자들에게 임금 인상을 받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늘 평균 임금을 끌어내리는 데 기여한다.

사회주의적 대안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온갖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경제 위기를 촉발했지만, 세계 자본주의는 팬데믹 전부터 이미 취약했고 경기 후퇴로 나아가고 있었다.

2008~2010년 금융 위기는 이윤율 위기에 뿌리가 있었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는 자본들이 정리되지 않았다. 정부들, 중앙은행들, 기업주들은 거대 기업들이 붕괴하도록 내버려 두면 불황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대신에 체제에 값싼 신용을 퍼부었다.

그러나 값싼 신용으로 “좀비 기업”(오로지 손쉬운 대출 덕에 연명하는 막대한 채무를 진 기업)이 속출했다. 그리고 이제 채무 부담과 이동 제한령은 몇몇 좀비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이는 대량 실업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이번 위기의 규모는 2010년대 동안 나타난 미약한 회복세를 꺾는 데 일조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2008~2010년 경기 후퇴 이후 만들어진 모든 일자리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라졌다.

그러나 대량 실업은 결코 불가피하지 않다. 예컨대, 우리는 재생 에너지와 탈(脫)탄소 경제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또,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 산업의 많은 노동자들은 녹색 전환에 이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적 해결책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자본 축적과 이윤 극대화 논리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대량 해고에 직면한 우리는 일자리 감축에 맞서 저항하고 코로나바이러스의 대가를 기업주들이 지게 해야 한다.

그러나 빈곤을 끝내고 실업으로 인한 낭비를 아예 멈추려면 이윤 체제와 단절해야 한다.

대안은 사회주의 사회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집중하는 민주적 계획 경제에 기반을 둔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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