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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50만 보안법 반대 시위:
권위주의 강화, 이슬람 혐오, 파시즘에 맞서다

이 글은 노동자연대가 12월 8일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기사로 정리한 것이다. 토론회 영상은 유튜브 ‘노동자연대TV(영상 보기)’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경찰 보호 악법인 ‘포괄적 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몇 주째 크게 벌어지고 있다.

여당의 양보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보안법 철회를 요구하며 전국 10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12월 5일 파리 ⓒ출처 O Phil des Contrastes

이 법은 경찰을 비판할 목적으로 경찰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공개하면 최대 징역 1년, 한국 돈으로 최대 6000만 원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다. 반면, 경찰은 시위대 촬영에 안면 인식 기능과 드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11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수십 곳에서 최대 50만 명이 항의 시위에 나섰다. 여당이 일부 조항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후에도 10만 명이 거리로 나와서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이 와중에 경찰 여러 명이 한 흑인 청년 음악가를 구타하는 영상이 공개돼 분노가 급속히 커졌다. 경찰들은 단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흑인 청년을 폭행했다. 그의 집에 들이닥쳐 20분 동안 쉬지 않고 폭행했다. 나중에 이웃들이 달려와 경찰들을 밖으로 밀쳐 내자 경찰들은 적반하장으로 창문을 깨고 최루탄을 던지고는 그들에게 총을 겨눴다. CCTV에 그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면 흑인 음악가와 동료 주민들에게 어떤 혐의를 뒤집어 씌웠을지 모를 일이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경찰의 이런 행태를 처음 본 양 “큰 충격”이라고 했지만 이는 순전한 거짓말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경찰이 파리 한 광장의 난민촌을 폭력적으로 철거한 영상이 SNS를 달궜고 마크롱 정부는 진상 조사를 약속했었다.

경찰 보호 악법, 권위주의 강화의 일환

프랑스 경찰의 폭력성은 고질적인 문제다. 프랑스의 유색인, 특히 아랍계와 흑인은 경찰의 인종차별적 검문과 일상적 폭력에 시달린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백인보다 훨씬 자주 경찰에게 공격받고 목숨을 잃는 것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올해 6월 프랑스에서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분출했다. 당시 시위대는 미국에서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를 기렸을 뿐 아니라 프랑스 경찰서에서 목숨을 잃은 흑인청년 아다마 트라오레의 이름도 외쳤다.

이주민과 노동자들에게 폭력적이기로 악명 높은 프랑스 경찰. 12월 5일 파리 ⓒ출처 Photothèque Rouge

아다마 트라오레의 죽음과 당국의 대응은 프랑스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제도적이고 체계적인지 보여 준다. 그는 2016년 경찰에 연행된 후 숨졌다. 당시 경찰은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고 부검했더니 약물이 검출됐다며 자신들 잘못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믿지 않은 유족들의 항의로 2차 부검이 실시됐는데 경찰의 말과 달리 트라오레의 사인은 지속적 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판명됐다. 경찰이 살인 행위를 은폐하려 했다는 논란이 번지면서 유가족과 지지자들,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들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언론은 물론이고 지자체 단체장까지 나서서 경찰이 아닌 유가족을 비난했다. 이들은 일부 “불량배”들이 경찰을 공격하고 있고 “진짜 프랑스인은 경찰을 지지하라”고 선동했다.(트라오레 가족도 엄연히 프랑스인데 말이다.) 일부 유가족들은 부당하게 투옥되기에 이른다. 올해 프랑스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다마 트라오레를 위한 정의’ 같은 단체들이 수년간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 경찰은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이다. 그리고 마크롱의 보안법은 바로 이런 경찰들을 보호하는 악법이다.

경찰력 강화와 무슬림 차별은 연관돼 있다

마크롱이 경찰 보호 악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난 수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자들이 권위주의적 조치를 강화해 온 연장선에 있다.

마크롱 이전 사회당 올랑드 정부는 개악을 계속 밀어 붙이다가 지지율이 추락하고 반발이 거세지자 이를 억누를 목적으로 반세기만에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무려 2년 동안이나 이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해고를 더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였다.

마크롱도 2018~2019년 유류세 인상과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노란조끼 운동을 경찰력으로 끔찍하게 탄압했다. 경찰의 시위 진압이 어찌나 잔인했는지 실명하거나 손가락을 잃는 시위 참가자가 속출했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또 올해 초 마크롱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금을 일괄 개악하려 하면서 의회 표결을 건너뛰려 했다. 개악 반대 파업이 이어지고 반대 여론도 커지면서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부르주아 의회조차 거추장스러워 한 것이다.(이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연금 개악 시도는 2021년으로 미뤄졌다.)

이렇듯 프랑스 지배자들은 최근의 위기 속에서 권위주의적 대응을 강화해 왔다. 보안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부가 “민주주의를 죄다 없애고 있다”고 울분을 토한 데는 이런 맥락이 있다.

프랑스 지배자들이 권위주의 조처를 강화할 때 휘두르는 또 다른 무기는 이슬람혐오다.

11월 초 마크롱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프랑스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했다. 마크롱은 앞으로 모든 이슬람 관련 단체들이 “공화국의 가치”를 준수한다고 서약해야 하며 그러고도 정부가 보기에 “공화국의 가치”를 준수하지 않은 단체들은 해산시킬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프랑스 무슬림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마크롱 정부는 지난 2일 ‘프랑스 내 이슬람혐오에 맞서는 단체’(CCIF)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 단체는 공공장소 히잡 착용 금지나 부르키니 착용 금지 같은 이슬람 혐오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로 UN경제사회이사회에도 정식 등록돼 있다. 마크롱 정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NGO를 프랑스판 ‘이적단체’로 규정해서 해산명령을 내린 셈이다. 이를 두고 온건한 국제 NGO인 휴먼라이츠워치조차 “프랑스 무슬림들에게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다른 이들만큼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크롱이 이처럼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경제 상황이 더 엄혹해질수록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떠넘기기 위해서다. 마크롱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지지율 하락을 최소화하고 국가의 억압적 정책 강화를 정당화하려고 “내부의 적” 운운한다. 그러나 이전 중도 좌·우파 정부들도 지지율 하락에 직면해 억압적 조처를 강화하려 했지만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편, 마크롱이 이슬람혐오를 고약하게 부추기는 또 다른 구체적인 맥락은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이라는 것이다. 마린 르펜과 마크롱은 지금 20퍼센트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1위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파시즘의 지지 상승

마린 르펜이 속한 정당 국민연합(옛 이름 ‘국민전선’)은 제2차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나치 정권에 부역했던 인물들이 다양한 극우를 결집해서 세운 정당이다. 마린 르펜은 이 당의 초기 핵심 지도자 장마리 르펜의 딸이다.

파시스트 마린 르펜. 2012년 ⓒ출처 blandinelc (플리커)

역사적으로 프랑스 파시스트들은 독일의 히틀러를 좇아 유대인을 배척했고 우생학을 내세워 우월한 인종의 지배를 주장했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 이후 평범한 사람들이 파시즘에 치를 떨게 되자 이들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이데올로기적 외피를 바꿔야 했다. 우생학을 근거로 한 유대인 배척을 숨기는 대신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며 이슬람혐오를 선동한다.(하지만 자신들만의 은밀한 회합에서는 여전히 유대인 배척을 드러낸다.)

이들은 오늘날 “프랑스의 가치”가 이슬람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했고 프랑스 백인들이 정체성을 위협받는 소수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거짓 프레임 속에서 이들은 이주민을 배척하고 이슬람을 단속하라는 자신들의 주장이 “억압받는 백인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황당한 논리가 횡행할 수 있게 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파시스트들이 교묘하게 자기 색깔을 숨기고 평범한 극우 정당 행세를 해 왔다. 그래서 많은 프랑스의 논평가들은 마린 르펜과 국민연합을 더는 위험하지 않은 세력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학자들이나 좌파들은 그것이 위장일 뿐이고 여전히 돈과 간부들은 골수 파시스트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둘째, 역대 프랑스 정부들이 이주민과 그 후예들을 꾸준히 천대해 온 것이다. 프랑스는 1960년대까지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그래서 과거에 식민지로 삼아 지배했던 북아프리카 알제리 등지에서 많은 이주민을 불러들였다. 이들 상당수는 무슬림이며, 대체로 백인 프랑스인들보다 가난하고, 임금도 낮고, 해고도 쉽게 당한다. 그리고 정부는 경제 위기와 실업 문제가 심각해질 때마다 책임을 숨기려고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이들을 희생양 삼는다.

이는 파시스트들이 이주민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가 실업 등의 책임을 이주민에게 떠넘기는 것을 이용해서 파시스트는 “이주민(또는 무슬림)은 우리 사회의 적”이라고 악선동을 한다. 주류 정당들은 그런 파시스트들에게 표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주민과 이슬람 단속을 강화함으로써 되려 파시스트에게 힘을 실어 주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여기에 1990년대 냉전 해체 이후 미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정당화하려고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문명의 충돌” 운운하며 ‘이슬람은 서구 문명과 화해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생각을 유행시키자 파시스트들은 더더욱 기가 살아났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에 대한 좌파 측의 혼란

안타깝게도 프랑스 좌파는 이슬람혐오에 일관되게 맞서지 못하면서 이런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좌파 진영의 많은 이들이 “정부나 극우도 문제지만 이슬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며 사실상 양비론을 취했다. 이주민들이 정부의 탄압이나 파시스트의 공격에 맞서서 저항하고 나설 때 그들과 연대하며 운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그들과 선을 긋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세속주의(“라이시테”)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이런 나쁜 태도에 일조했다. 프랑스는 20세기 초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채택했다. 이는 당시 지배계급 안에서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톨릭 교회에 맞서는 것이었고 따라서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예전같은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프랑스 무슬림은 권력을 갖고 있기는커녕 가장 천대받는 집단이다. 그런 만큼 세속주의를 무슬림 사람들에게 들이대 압박·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히잡 같은 고유한 복장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억압일 뿐이다. 오히려 개인들의 종교적 정체성 표현을 국가가 규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추구하는 세속주의와 상반된다.

그런데도 많은 자유주의자와 일부 좌파는 세속주의를 이유로 무슬림이나 이주민을 방어하는 데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는 유독 무슬림(특히 여성)에 대해서만 종교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문제시하고, 무슬림들에게 스스로 해방을 쟁취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엘리트주의적 편견도 작용한다.

게다가 사회당 같은 중도 좌파는 극우에 맞서 주길 바라는 이주민 단체의 지지를 받았지만 정작 집권하고 위기에 처하면 자신들 역시 이주민을 희생양 삼았다. 온건한 이주민 단체들은 사회당을 이용해 파시스트의 성장을 막으려 했지만, 그 전략은 오늘날 완전 파산했다.

따라서 극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물론 모든 극좌파가 이슬람혐오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지는 못하다. 일부는 기회주의적으로 사회당에 용해됐고, 또 일부는 이슬람혐오적인 주장에 반쯤 문을 열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레닌은 무슬림이 다수였던 러시아 소수민족들의 독립 운동을 지지했다. ‘천국이 실제로 존재하냐 마냐’ 논쟁하는 것보다 그런 천국을 이 땅에 세우려고 억압에 함께 맞서는 것을 더 중시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성장이 중요하다

반자본주의신당(NPA)은 극좌파 중 입장이 비교적 괜찮고 그 덕분에 급진화하는 이주민 활동가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NPA도 뜨거운 쟁점에서는 회피하는 태도를 종종 보인다. 최근 ‘교사 참수’라는 끔찍한 비극이 터졌을 때 민감한 쟁점이 된 이슬람혐오적 교육 관행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원칙 있는 입장을 견지하는 반인종차별 활동가들의 노력이 유의미한 변화를 낳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2018년 유색인 청년들이 경찰에 혹독한 탄압을 받을 때, 주로 백인들로 이뤄진 노란조끼 운동 참가자들이 유색인 청년들에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이주민 후손들과 백인들을 갈라놓았던 벽을 넘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다마 트라오레를 위한 정의’ 운동에 꾸준히 참여해 온 반인종차별 활동가들이 두 운동 사이에 다리를 놓았기 때문이었다.

12월 5일 보안법 반대 시위도 비슷한 잠재력을 엿보였다. 이날 여당의 일부 양보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90개 지역에서 10만 명가량이 보안법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나섰다. 그 안에서는 노동자와 실업자의 권리, 미등록 이주민의 권리, 경찰 폭력으로 숨진 유색인 청년 문제 등 다양한 쟁점도 함께 제기됐다.

혁명적 좌파가 마크롱의 (서로 연결된) 권위주의적 조처 강화와 이슬람혐오 정책에 원칙 있게 반대하며 운동에 잘 개입한다면, 이런 운동 안에서 정부와 파시스트에 맞서는 운동도 성장시키고, 이간질에 의한 분열을 극복하면서 그들 자신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의 핵심 국가이고 프랑스 노동자 운동은 높은 전투성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프랑스의 운동은 만만찮은 공격을 벼르고 있는 마크롱 정부와 파시스트의 부상이라는 심각한 도전들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 정부와 파시스트들은 특히 이슬람혐오를 무기 삼아 노동계급 대중을 얼어붙게 만들고 그들의 단결을 가로막으려 한다. 이를 물리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성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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