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경기도 고양 저유소에서 휘발유 탱크가 폭발하는 화재 사고가 있었다. 당시 한 이주노동자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부지의 풀밭에 떨어져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와 관련해 12월 23일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형사5단독 손호영 판사)은 풍등을 날린 이주노동자 디무두 씨에게 실화죄를 인정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저유소 안전관리자들이 200만 원 또는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에 비춰 보면, 이번 판결은 화재의 주된 책임을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고의성도 없었고 운이 나빴을 뿐인데 말이다.

이 판결을 내린 재판부조차 판결문에서 이를 인정했다. “여러 불운이 겹쳐 ... 하필 바람의 방향이 이 사건 저유소를 향했고, 이례적으로 풍등의 불씨가 남은 채로 낙하하였으며, 마침 석유 보관탱크 주변에는 제초한 잔디가 흩뿌려져 있었고, 우연히 피해 회사가 ... 당일 석유 입하량을 크게 늘리는 바람에 유증기가 환기구를 통해 밀도 있게 방출[되고 있었다.]”

인종차별 ·희생양 삼기 판결 이주노동자 디무두 씨는 저유소 관리자들 보다 더 많은 벌금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에게 화재의 책임을 물은 것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어렵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쉬워서 그랬을 것이다. 산업재해를 피해 당사자인 현장 노동자들의 무지와 부주의 탓으로 돌리는 권력자들의 행태가 이 사건에서도 반영된 것이다.

진정한 책임

사고의 진정한 책임은 기업주와 정부가 져야 한다.

당시 저유소 탱크 주변에는 화재 감지기 등 최소한의 사고 예방 장치가 없었고, 잔디밭에 붙은 불이 18분이나 방치되는 등 감독도 턱없이 부실했다.

저유소의 안전을 고려하면 탱크 안 유증기를 자체적으로 회수하는 장치가 있어야 했지만 그것을 환기구로 대신하는 바람에 외부에서 발생한 불이 탱크로 옮겨붙을 수 있었다. “유증기가 환기구를 통해 밀도 있게 방출”되고 있었던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김대중 정부 시절 민영화된 시설이다. 민영화의 노골적인 이윤 우선 논리가 사고에 영향을 끼쳤을 법하다.

결국 정부의 민영화로 야기된 안전 투자 부족, 그 결과로 파생된 시설 미비와 감독 소홀이 풍등의 예기치 않은 낙하라는 우연적 결과를 기름탱크 폭발 화재라는 손실로 이끈 것이다. 재해 예방이란 우연이 사고로 (필연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중삼중의 안전 장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처음부터 이주노동자인 디무두 씨를 화재 책임자로 몰아갔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CCTV를 공개하고 디무두 씨를 중실화(고의에 가까운 부주의로 인한 화재)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지난해에는 경찰의 강압수사가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이 디무두 씨를 신문하면서 무려 123회에 걸쳐 ‘거짓말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욕설하는 영상이 디무두 씨를 변호하는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결국 경찰 진술조서는 재판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해당 경찰관은 오히려 최 변호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디무두 씨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고 한다.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를 희생양 삼으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이 사건에서 배워야 할 정말 중요한 것은 안전에 대한 투자와 규제가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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