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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한파 속 숙소서 사망:
형편없는 주거 조건이 낳은 예고된 비극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농장주가 제공한 숙소는 비닐하우스 내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건물이었다.

당시 포천 일대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가 몰아쳐 한파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그런데 18일 저녁부터 숙소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같은 숙소를 쓰던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추위를 견디다 못해 모두 다른 곳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속헹 씨만 홀로 남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30세, 젊은 나이였던 속헹 씨는 고용허가제 체류 기간 4년 10개월을 채우고 내년 1월 귀국을 앞둔 터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속헹 씨가 동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기숙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주노동자 1461명을 대상으로 한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5.5퍼센트가 회사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거주하는데 그 중 55.4퍼센트가 작업장 부속 공간이나 임시가건물(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등)을 제공받았다.

숙소의 상태는 이주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고 안전에 취약했다. 에어컨, 실내 화장실, 화재 대비 시설(소화기, 스프링클러 등), 실내 욕실이 없다는 답변이 응답자의 30퍼센트를 넘었다. 분진과 소음, 냄새 등 유해환경이라는 응답은 37.9퍼센트에 이르렀고 방충망이 없거나(23.1퍼센트), 벽지나 장판에 곰팡이가 심하고(20퍼센트), 햇볕과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없다(9.1퍼센트)는 답변도 상당했다.

속헹 씨가 사망한 숙소와 같은 임시가건물인 경우 각각의 응답률이 훨씬 높았는데, 특히 난방용 보일러가 없다는 답변이 28.2퍼센트에 달했다.

속헹 씨가 생전에 머물던 비닐하우스 숙소 ⓒ제공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이 때문에 겨울이면 추위를 막으려고 전열기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다가 화재로 이주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반복돼 왔다. 자연재해에도 취약하다. 전국이 집중호우 피해로 몸살을 앓던 올해 8월 4일 경기도 이천 율면 실내체육관에 대피한 이재민 72명 중 50명, 율면고등학교 대피소 30명 전원이 이주민이었다.

고용주는 이런 형편없는 기숙사를 제공하고도 기숙사비를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강제로 공제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실태조사에서 매달 숙소비를 낸다는 응답자는 38.4퍼센트였고 숙소비는 평균 13만 8000원이었다. 농축산업의 경우 각각 44.9퍼센트, 20만 3000원으로 더 높았다. 한 기숙사에 여러 명이 살아도 기숙사비를 각각에게 모두 받는 경우도 흔하다. 황교안이 박근혜 정권 권한대행일 때 시행한 이 기숙사비 지침을 문재인 정부는 여태 폐기하지 않고 있다.

한편, 경찰은 사망 원인이 간경화로 인한 간손상·합병증이고 동사로 추정되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부검 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이주노동자는 입국 시 건강검진을 받는다. 속헹 씨는 평소 동료 이주노동자들에게 아프다고 한 적이 없고 사망 며칠 전인 17일 오후까지 힘든 근무를 했다. 따라서 입국 시 없던 간경화가 생기고 며칠 새 사망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악화됐다면 평소의 열악한 주거와 노동조건, 사망 당일의 맹추위와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경찰의 이런 태도는 고양 저유소 폭발의 책임을 풍등을 날린 이주노동자에게 모두 떠넘긴 것과 대조된다. 매우 우연적인 요인을 두고도 그토록 크게 책임을 물으면서 왜 열악한 기숙사는 속헹 씨의 사망과 연관시키지 않는가?

귀국 20일을 앞두고 싸늘하게 죽어간 속헹 씨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가 주최한 12월 28일 청와대 앞 기자회견 ⓒ이미진

미온적

이주노동자들과 연관 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열악한 숙소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역대 정부들은 미온적 대책만 내놓을 뿐이었다. 속헹 씨 사망은 예고된 비극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는 ‘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영 계획’의 ‘농업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에서 “비닐하우스(비닐하우스 내 스티로폼·합판 등으로 주거공간을 임시 조성한 시설 포함)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비닐하우스나 비닐하우스 내에 ‘스티로폼·합판’을 설치한 형태만 금지하고 속헹 씨가 살던 숙소와 같이 샌드위치 패널이나 컨테이너를 설치한 경우는 허용한 눈 가리고 아웅 식 대책이었다.

2019년에는 1953년 제정 이래 개정되지 않아 현재의 기준에 맞지 않고 매우 추상적이던 근로기준법의 주거시설 관련 규정을 다소 구체화했다. ‘화장실과 세면·목욕시설을 적절하게 갖출 것’, ‘자연재해 우려가 현저한 장소에 설치하지 말 것’, ‘개인용품 수납공간을 갖출 것’ 등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리고 주거시설 관련 규정이 아예 없던 고용허가제법에도 규정을 신설하고 이에 미달할 경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7월 기준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 1만 5773곳 가운데 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기숙사 최저기준에 미달된 비율은 31.7퍼센트가 넘었다. 이는 지난해(10.3퍼센트)보다 훨씬 오른 것이다. 또한 올해 1~6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한 2만 1681건 중 기숙사 문제로 인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이주노동자가 입증하도록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법, 제도,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에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효성 없는

속헹 씨 사망 사건이 알려져 여론의 주목을 받자 정부는 다시 몇 가지 대책을 내놨다. 농지 등에 숙소를 세울 수 없도록 하고 기숙사 시설 실사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해마다 현장점검을 실시하는 사업장은 약 3000개로 전체의 5퍼센트 수준에 불과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조차 신규 고용허가부터 적용돼 기존의 이주노동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조립식 패널·컨테이너 등으로 만든 숙소를 금지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에게 충분한 숙소 정보 제공이 가능하도록 기숙사 시각 자료(사진, 영상 등)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제공받은 정보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고용이 돼야 한국 입국이 가능하고, 사업장 변경이 극도로 제한된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고용허가제가 열악한 영세 업체나 농축산업 등으로 취업 가능한 업종을 제한하고 있어서 업체 간 기숙사의 질적 차이가 별로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SNS에서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실태조사를 토대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의심스럽다. 경기도는 국가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받고도 여전히 상당수 이주민을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도내 공공부문 건설현장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방침을 시행하는 등 이주민을 차별·억압하기도 했다.

이주·인권·노동 단체들은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28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정부에 철저한 조사와 사망 원인 규명, 유족에 대한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책 마련, 임시건축물의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용 전면 금지 등 재발방지대책 마련,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을 요구했다. 그리고 속헹 씨 사망을 개인 질병 문제로 축소하려는 경찰의 시도를 규탄했다.

정부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시설을 저렴하게 제공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출입국 하고 체류하면서 직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이런 열악한 조건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