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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기후 위기 ‘골든타임’(2030년까지) 허비하겠다는 계획

정부는 2034년까지 전기 공급 계획이 담긴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12월 28일 발표했다. 이 계획이 중요한 이유는 전력 생산이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한다. 그런 만큼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폭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 없는 태양·풍력 발전을 대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특히 과학자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에 향후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경고해 왔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골든타임’인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중요한 기간임에도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 생산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 이번 계획의 내용이다. 과학자들의 경고를 사실상 무시한 것이다.

포장만 요란했던 '탄소 중립 선언' 이번 계획대로라면 2030년 한국은 유엔 권고보다 온실가스를 50퍼센트나 더 배출하게 된다 ⓒ출처 청와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기로 악명 높은 석탄 발전소는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2034년에도 석탄 발전소는 37기나 돌아간다. 전력의 20퍼센트 이상이 여전히 석탄 발전을 통해 생산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이 석탄 발전소를 “과감하게 감축”하는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규 허가만 내주지 않을 뿐 기존 석탄 발전소들은 “감가상각이 모두 끝나는”(공청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의 표현) 시기까지 기다리겠다면서 “과감하게 감축” 운운하는 것은 뻔뻔한 짓이다.

아직 준공이 안 된 석탄 발전소가 7기나 된다. 그 결과 석탄 발전소 용량은 2023년까지 계속 늘어날 예정이다.

공청회에서 ‘탄소 중립’한다면서 석탄 발전소를 왜 계속 짓도록 놔두느냐는 질문에는 “사업주 자발적 의사”를 침해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석연료를 태워서 이윤을 얻을 자유를 지키는 것이 지구 환경과 평범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연가스 발전소를 늘리는 것도 문제다. 천연가스를 태워 전기를 얻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만만찮게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는 마치 천연가스 발전소를 늘리는 것이 기후 위기 해결책인 듯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석탄과 천연가스를 합친 화석연료로 2034년에도 전력의 70퍼센트(실효 용량)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과학자들이 촉구한 수준 1.5배의 온실가스를 2030년에 배출하게 된다. ‘탄소 중립’은커녕 기후악당국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재생가능에너지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태양·풍력 발전 설비를 2034년까지 8배가량 늘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수준이 워낙 꾀죄죄한 탓에 그래 봤자 전체 전력의 8퍼센트 수준이다. 당연히 기후 위기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태양과 풍력 발전의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한 탓에 천연가스 발전, 핵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태양·풍력 발전과 송배전 설비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단순히 계산해도 2030년까지 화력발전을 태양과 풍력으로 대체하려면 매년 40조 원이 필요하다.(자세한 계산은 본지 216호, ‘문재인의 ‘탈핵’, 너무 미흡하다’를 보시오.) 그러나 매년 정부가 국방비로 50조 원, 건강보험으로 60조 원가량 지출하는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투자의 우선순위가 진정한 쟁점일 것이다.

체제 전체로 보면 기후 위기는 자본가들의 이윤의 원천마저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개별 자본가나 국가의 관점에서는 10년 앞의 일을 대비하기보다 당장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위험 비용을 경쟁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더욱 이익일 것이다. 국가는 자국 내 자본들의 ‘지나친’ 경쟁을 어느정도 통제하려 하기도 하지만,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경쟁을 완화시키기는커녕 군사력까지 사용해 뒷받침하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처럼 개별 자본가들의 이윤 축적 경쟁을 동력으로 돌아가는 체제다. 각국 정부가 말로는 기후 위기 대응을 외치면서도 투자의 우선순위를 결코 바꾸려 하지 않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도 그런 자본주의 체제의 정신나간 우선순위를 대변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이번 계획에서는 전기요금을 인상해서 소비자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 “환경 비용 부담 방안”으로 소개됐다. 한전이 그동안 부담하던 각종 환경 비용을 소비자에게 지우고, 발전소들이 사들여야 하는 탄소 배출권 비용도 2022년부터는 전기요금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부터 전기요금을 고지할 때 기후·환경요금을 별도로 분리하는 것이 향후 “기후 위기의 비용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지가 경고한 대로다.(349호, ‘이 시국에 전기요금 인상!: 부채와 기후 위기 비용을 서민에게 전가 말라’)

화석연료 발전 회사들에게 사업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모자라서 일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력 생산의 본질은 기업 활동 지원인 만큼(가정용은 전체 전기 사용량의 10퍼센트대에 불과) 기업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부담해야 한다.

이번 계획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가 그간 ‘그린 뉴딜’, ‘탄소 중립’을 운운한 것은 역시나 말 잔치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기료 인상 계획에서 보듯 정부는 기후 위기의 비용을 노동자와 서민에게 전가하려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기후 위기에 맞서고, 기후 위기 속에 고통이 커져 갈 노동자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려면 이 위선적인 정부에 맞서 투쟁이 전진해야 한다.

60년 걸릴 ‘찔끔’ 탈핵조차 반대하는 우파

문재인 정부의 핵발전소 감축 정책은 ‘탈핵’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이번 계획에 따르면 2034년에도 핵발전소 17기가 가동될 것이고 현재와 비슷한 20GW 안팎 수준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실제로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원전[핵발전소 미화하는 명칭]은 향후 6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감축될 계획(이고) …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써 역할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과 핵발전 업계는 이번 계획을 비판하며 핵발전 확대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착공 전 단계에서 추진이 중단된 핵발전소(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이들은 핵발전소의 자명한 문제, 즉 수십만 년 동안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격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숨긴다. 그 대신 사람들을 호도할 목적으로 핵발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거나 저렴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발전소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핵발전소 원료인 우라늄을 채굴하고 농축·처리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된다. 단순 가동뿐 아니라 모든 단계의 에너지 소비량을 고려하면 태양·풍력 발전 선택이 합리적이다.

핵발전 비용이 저렴하다는 주장도 왜곡이다. 그런 주장은 핵발전소가 막대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는 점과 이윤을 위해 안전 투자를 등한시한 결과라는 점 등을 숨긴다. 무엇보다 핵발전이 싸다는 통계는 핵폐기물과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파렴치한 현실 때문이다. 지금 일본 정부가 9년 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 생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 하지만 그로 인해 동해와 태평양이 오염되는 것은 발전 원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렇듯 핵발전은 기후 위기에서든 더 광범한 생태계 문제에서든 결코 대안이 되지 못한다.

핵발전 노동자, 탈핵 지지하며 고용 보장 요구해야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중공업 등 7개 기업의 노조로 구성된 원자력노동조합연대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핵발전소 건설이 워낙 초대형 사업이다 보니 이를 확보하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핵발전 확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핵발전소 관련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고용주를 상대로 일자리를 지키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여느 노동자 투쟁과 달리(이 경우 손해를 보는 것은 자본가다), 핵발전소는 전체 노동계급을 엄청나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핵발전으로 이익을 본 것은 핵무기 야욕을 키워온 지배자들과 천문학적 이윤을 누려온 사장들이고 노동자들은 책임이 없다. 따라서 핵발전 축소로 이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위기에 빠지는 기업들은 국유화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예컨대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은 핵발전소의 부품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풍력과 태양력 발전을 위한 생산도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기업을 국유화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하는 것과 함께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요구할 때 노동자 고용과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에서도 더 많은 노동자·청년들의 연대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