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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재상승:
친시장적 주택 공급 방안으로는 주택난 해결 못 한다

지난해 매섭게 올랐던 집값·전셋값 상승이 올 초에도 계속되고 있다.

KB부동산 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집값 상승률은 8.3퍼센트, 전셋값 상승률은 6.5퍼센트로 각각 14년, 9년 만에 최대치였다. 특히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평당 4033만 원으로 1년 사이에 20퍼센트 넘게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부동산원 조사로도 전국의 집값 상승률은 5.5퍼센트대로 2011년 이후 최대 수준이었다.

이처럼 급등한 집값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을 낳은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도 집값이 급등해 대다수 서민들에게 좌절감만 줬기 때문이다.

14년 만에 최대로 오른 집값 커지는 양극화 속에 정부에 대한 환멸이 커지고 있다 ⓒ이미진

물론 최근의 집값·전셋값 상승은 전반적인 자산 가격 급등과 관련 있다. 코로나19로 이미 전 세계에서 190만 명 가까이 사망했고, 경제는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되지만, 증시와 금·비트코인 등은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과 심화되는 경기 침체를 막으려고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 중국, 유로존, 일본 등 주요 8개국이 시중에 공급한 돈만 14조 달러(약 1경 5000조 원)나 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매달 120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금융시장에 투입하고 있다. 이 같은 돈 풀기 정책은 전 세계 채권수익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된 채권 규모도 18조 달러(약 1경 9656조 원)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돈들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 달러(약 11경 원)를 넘었다. 그간 세계 증시 시총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약간 못 미쳐 왔는데, 최근 전 세계 시총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지난해 세계 GDP(83조 달러)보다 20퍼센트 이상 많은 사상 최고 수준이 됐다.

풀린 돈들은 어디로

한국에서도 넘쳐나는 돈들이 집값뿐 아니라 주식 시장도 밀어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 코스피는 30.8퍼센트(519조 원)나 올랐다. 주요 20개국(G20) 중 상승률이 1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400대까지 떨어졌던 증시는 계속 올라 최근에는 3000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코스닥의 시가총액도 지난해 초 242조 7681억 원에서 연말 385조 5820억 원으로 142조 8139억 원이나 늘었다.

이처럼, 자산 가격 급등은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경기 부양을 위해 풀어 놓은 돈이 투자에 이용되지는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주택 가격을 끌어올려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층의 주거 여건마저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노동자·서민이 ‘벼락거지’ 신세를 면하려고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 등에 뛰어들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해 위기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가계와 기업부채는 역대 최고치인 3014조 3000억 원으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57배를 기록했다. 특히, 가계 부채는 1682조 1000억 원으로 2019년 3분기보다 7퍼센트나 증가해 GDP 대비 가계 신용 비율이 처음으로 10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은 신년사에서 “실물-금융 간 괴리”,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쏠림” 등을 지적하며,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시장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을 사람들 또한 뒤늦게 주택 매입에 나선 서민층일 것이다.

변창흠의 친시장적 공급 방안, 투기에 기름 붓는 격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불만이 계속되자 문재인 정부는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4월 재보선에서 승리하려면 집값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것이다.

문재인은 1월 5일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주거 안정을 올해 풀어야 할 중차대한 민생과제 중 하나로 꼽으면서 “다양한 주택공급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파와 보수 언론들은 세금 인상, 부동산 규제 정책 등을 비판하며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을 늘려야 집값이 떨어진다고 주장해 왔는데, 문재인 정부도 또다시 공급 확대 정책을 꺼내 든 것이다.

진보학자로 유명했던 신임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입장을 바꿨다. 후보자 청문회 때 “공공성을 가진 임대주택을 활성화해야 한다”던 그는 장관이 된 뒤에는 “충분한 물량의 고품질 주택을 민관 협력을 통한 패스트트랙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2월 설 즈음에 발표될 새로운 부동산 대책은 서울 지하철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 등을 재개발해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될 듯하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문재인 정부는 계속 공급 확대 정책을 펴 왔지만, 집값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2018년 9월 서울 근교에 3기 신도시를 세워 주택 30만 채를 공급하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집값 상승을 막지 못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태릉골프장 등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식으로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마찬가지로 연말 들어 집값과 전셋값은 다시 치솟았다.

시중의 유동 자금이 넘쳐나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친시장적 공급 확대는 투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공산이 큰 것이다. 게다가 공급 확대 정책으로 실제 주택이 공급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집값 상승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해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게 만들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간 임대사업을 활성화한다며 임대사업자들에게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에서 막대한 혜택을 줬다가, 지난해에 집값이 급등하자 부랴부랴 공시지가 상향, 양도세·종합부동산세 강화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재산세 인상분은 3년간 특례를 적용해 부담을 완화해 줬고, 종부세 최고세율을 6퍼센트로 올렸으나 애초부터 대상자가 극소수인 점 때문에 ‘찔끔 증세’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도소득세도 부동산을 매각해 이득이 발생했을 때만 부과하는 세금이어서, 소유자가 팔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주택 투기

사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0퍼센트가 넘는다. 그러나 자기 집을 보유한 가구 비율인 ‘자가 보유율’은 6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2019년 2주택 이상을 소유한 사람이 228만 명으로, 이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보다 16만 명 늘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5퍼센트에서 15.9퍼센트로 늘었다. 이런 사실들도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유층의 주택 투기가 문제라는 점을 보여 준다.

집값을 잡고 노동자·서민의 주택난을 해결하려면 종부세 등 부유세를 대폭 올리는 등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동시에 값싼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해야 한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도 한참 낮아, 서울은 불과 8퍼센트밖에 안 된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임대주택 대부분도 극빈층이 길거리로 나앉는 것을 막는 수준이라 어지간한 노동계급 가정이 만족할 만한 것도 못 됐다.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한 주택 정책은 시장의 이윤 논리가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우선할 때 가능할 것이다. 지금처럼 주택을 시장 논리에 맡겨 놓는다면, 어떤 때는 ‘벼락거지’를 어떤 때는 ‘하우스푸어’를 만들며 노동자·서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