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 현재 생존 피해자는 열여섯 분이다 ⓒ이미진

1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게 1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판결 소식을 접한 피해자와 유족들은 매우 기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원고인 피해자 12명 중 생존 피해자는 현재 5명이다. 

이용수 할머니, 고 곽예남 할머니, 고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 21명의 손해배상 재판도 진행중인데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관측이 많다.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타국의 주권 행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관습법)를 근거로 재판의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익히 예상되듯이, 판결 내용이 발표되자마자 주일한국대사를 초치(불러들임)해 항의하고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혀 해결 안 된 위안부 문제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저질러진 전쟁 범죄였다는 진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 기껏해야 일부 군인 또는 군부대에 의한 일탈 행위로 보면서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치거나,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나 보상금을 지급해 문제를 덮으려 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죄와 그에 따른 배상(‘보상’과 달리 국가 범죄임을 인정한다는 의미)은 피해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또, 이번 판결은 일본 정부의 주장과 달리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끝난 게 아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법원의 판단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2018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라고 공언한 정부의 입장보다 낫다.

이번 판결을 받기까지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끈질기게 항의하고 싸워 왔다.

그 성과 중 하나로,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위안부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 행위’라고 판결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도 않았다. 당시 헌재는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권한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2011년 헌재 판결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기만적인 대응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도 없이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위로금 10억 엔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지급한 위로금 중 적잖은 부분은 피해자들이 수령하기를 거부해 문재인 정부의 수중에 남아 있고, 위안부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한·일 관계 걱정부터 하나

문재인은 대선 후보 시절, 위로금 10억 엔을 다시 일본에 돌려줌으로써 합의를 완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위안부 문제 해결’ 약속이 손바닥 뒤집듯 내팽개쳐지기까지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번 위안부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모순되게 이렇게 강조했다.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함.”

또, 강경화 장관은 일본 외교장관(외무대신)과의 통화에서 “과도한 반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 배상 이행은 전혀 촉구하지 않았다. 정부의 강조점은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외교부 논평) 하는 데 있다.

정부가 진정 판결을 존중한다면, 지금 할 일은 위안부 합의를 고수할 게 아니라 일본에 배상과 사과를 촉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당시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압박으로 성사됐다.

미국은 경쟁국인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데 필요한 동맹국들이 과거사 ‘따위’는 잊고 현재의 제국주의를 위해 협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보다는) 한국 정부에게 주로 양보 압력을 가했다.

다음 주에 취임할 예정인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2015년 당시 부통령으로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적극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동맹 강화를 원하는 바이든을 의식하며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 문재인은 1월 11일 신년사에서 위안부 배상 판결에 관한 언급은 않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추어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통령 문재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괜찮다’고 하실 때까지 할머니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원하는 해법은 분명하다.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즉각 폐기하고 할머니들의 바람을 대변해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일 동맹의 골간을 유지하기 위해 그 바람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