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에 발생한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이하 ‘정인이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공분이 일었다. 생후 16개월의 정인이는 양부모의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다 사망했다.

사망 전날, 어린이집 CCTV에 잡힌 정인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정인이는 모진 학대로 뼈가 으스러지고 장이 찢어져 배 안에 피가 가득 고인 상태였다. 성인도 참을 수 없는 “최고 수위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정인이는 울지도 않은 채, 힘 없이 축 늘어져 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전문가들의 소견으로는,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무감정 상태”까지 다다른 것이라고 한다. 다음 날 정인이는 다시 강한 충격을 받아 내부 장기가 파열됐고,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고통을 끝낼 수 있었다.

경찰의 방기

많은 사람들이 비통한 심정으로 “정인아 미안해” 추모 물결에 동참했다. ‘또 다른 정인이는 없어야 한다’는 염원이 안일하게 대처한 경찰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어린이집 교사·의사·양부모 지인에게서 세 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를 받았지만, 모두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로 처리했다. 경찰이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여러 번 허망하게 날려 버린 것이다.

경찰은 정인이 몸 곳곳에 난 시커먼 멍 자국을 보고도 “마사지를 하다가 생긴 것”이라는 양부모의 황당한 해명만 듣고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러 골절과 심각한 영양실조를 우려한 소아과 의사의 학대 의심 소견도 무시했다. 그러고도 ‘정인이 학대 사건’ 담당 경찰관들은 경징계만 받았다.

이에 ‘경찰도 학대 공범이다’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경찰관의 파면 요구’ 국민청원에 약 30만 명이 참가했다. 대통령 문재인조차 “기초 수사가 부실”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월 6일, 경찰청장이 공식 사과했고, 양천경찰서장은 대기발령됐다.

막을 수도 있었던 비극, 이제 더는 없어야 한다 추모객들이 아동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가 안치된 공원묘지를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 ⓒ이미진

그러나 성난 여론이 가라앉기는커녕, ‘정인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악재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은 문재인의 “검찰 개혁”과 경찰 수사권 강화 방안에 대한 반감과 공명하면서 정부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키우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정부는 반복되는 아동학대 대응 방안으로 “대대적인 특별 점검”과 “재학대 발견 특별 수사기간”을 운영했지만, 정작 해당 기간에 정인이의 학대 의심 신고는 묵살됐다. 정인이 사망 직후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문재인은 정인이 사망 8일 후 “학대 위기 아동 발굴에 성과를 낸 경찰의 업적”을 추켜세우며 ‘노고를 치하’했다. 경찰 권한 강화를 위한 “경찰 개혁”(혹은 “검찰 개혁”)명분 쌓기에 몰두하며 ‘정인이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의 행태를 묵인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정부의 미흡한 아동학대 대책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근본 대책”을 마련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상은 생색내기 수준의 찔끔 개선에 머무르기 일쑤였다. 최근 정부와 집권 여당이 “촘촘한 학대 근절 대책” 운운하며 제시한 추가 방안도 감시와 수사 강화에 초점이 있을 뿐, 실효성 있는 피해 아동 보호와 지원에 매우 인색하다.

미흡하고 기만적인 정부 대책

문재인 정부는 기만적이게도 지난해 7월에 세운 아동학대 방지 대책의 예산 703억 원을 2021년 예산 배정 때 전액 삭감했다. 예산 지원 없는 아동학대 대응 방안은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다.

가령, 피해아동 분리 조처 이후 대책이 미미하다. 올해 3월부터 아동학대 신고가 두 번 이상 반복되면 피해 아동은 즉시 분리될 수 있다. 피해 아동은 학대 피해 아동 쉼터나 위탁 가정 등에서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마련된 쉼터는 75곳으로 최대 500명가량만 수용 가능하고 이미 포화 상태다.

최근 정부가 쉼터를 130곳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2019년 아동학대 발생 건수가 3만 45건임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쉼터에 머물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육원과 가출청소년시설 등을 전전해야 한다. 

정부가 신속한 이행을 약속한 ‘아동학대 조사 및 상담 업무 공공성 강화’ 방안(2019년에 발표)도 예산 삭감으로 진행이 더디다. 이 정책은 아동보호전문기관(대부분 민간위탁) 업무를 2022년까지 지자체에 이관하고,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1400명을 단계적으로 충원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10월 1일부터 일부 지자체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배치됐지만, 11월 기준으로 정부가 권고한 인력 배치 기준(연간 아동학대 신고 50건 당 1명)을 채우지 못한 지자체가 많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00여 곳에만 배치된 상태다. 대개 1~3명 정도 배치되는데, 전담 공무원이 1명뿐인 지자체도 67곳이나 된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 때문에 전담 공무원이 과중한 업무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제 신고가 올지 몰라 24시간 대기해야 하고 응급조처에서 사후 점검까지 소수의 전담 공무원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따라서 피해 아동에게 적절한 조치를 신속하게 시행하려면, 학대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재정을 투자해 필요한 지원을 책임져야만 한다. 분리 조치 이후 피해 아동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양질의 쉼터가 대폭 늘어나야 한다.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피해 아동 해당 가정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 일자리 알선‧생활비와 양육비 지원 등이 제공돼야 한다. 또한 알코올 중독과 조울증 치료, 상담 등도 제공돼야 한다.

아동학대 조사와 상담이 꼼꼼하게 이뤄지고 적절한 조치가 신속하게 시행되려면, 아동학대 업무 인력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복지부가 올해 안에 전국에 총 664명의 전담 공무원을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필요 수준에 견줘 많이 모자라다(기존에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전국에 900여 명이었고, 이조차 매우 부족한 규모다). 살인적 업무량 때문에 벌써부터 전담 공무원 “기피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전담 공무원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아동학대 50건 당 1명의 공무원을 배치하는 기준도 개선해야 한다. 이 기준은 미국과 유럽 등과 비교하면 2~3배 높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수사 담당 경찰이 전문성을 갖추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아동학대는 성 학대‧신체 폭력‧유기와 방임 등 범위가 매우 넓고, 아동의 진술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숙련된 경험이 중요하다.

피해 아동 지원과 아동학대 업무 관련 인력 등을 확대하려면 관련 예산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의 아동 보호 관련 예산은 GDP 대비 0.2퍼센트로 OECD 평균(1.3퍼센트)의 7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아동학대 예산의 대부분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벌금과 민간 출연)과 복권기금에서 충당하고 있어 불안정하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일반회계로 전환하고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근본적 원인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아동학대 행위자 처벌 강화 방안이 “예방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학대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며, 적합한 처벌이 필요하다. 고문 수준의 학대 행위를 상습적으로 자행한 정인이 양모에게 중형을 내려야 한다는 대중의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아동학대 처벌 기준이 상향돼 왔지만, 아동학대 건수가 줄지 않고 매년 증가하고 있음을 돌아봐야 한다.

아동학대를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인 방안은 아동과 가족을 위한 공공 복지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다. 빈곤과 가난이 아동학대 요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부모의 경제적 환경이 열악하면 양육 스트레스가 증가해 방임과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경제 위기와 펜데믹으로 빈곤 아동과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된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보편적인 아동 복지가 확충돼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은 ‘정인이 사건’에 대해 입양이 학대의 원인인 듯 언급했다. 그러나 이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또한 정부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전가하기 위한 술책이기도 하다. 물론 민간 단체 중심의 무분별한 입양 제도는 아동학대를 포함해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입양 제도의 공공성 강화 등 개선돼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인이는 입양 절차가 강화된 ‘입양특례법’에 따라 가정 법원이 최종 심사하고 입양을 승인했다.

‘계모’나 ‘입양’을 아동학대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장은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학대 가해자 중 친부모의 비율이 70퍼센트를 넘는다.

아동학대는 악마 같은 부모들의 기질이나 특징으로 환원할 수 없다. 아동학대는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 관리 시설(소년원 등), 교회, 교육 시설 등에서도 발생한다.

자본주의 같은 계급 사회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이 구조화돼 있고 소외가 만연하다. 양육이 개별 가정에 내맡겨진 구조에서 일부 부모들이 가족 내에서 지위가 가장 낮은 아이들을 학대한다. 아동은 취약하기에 자본주의가 가하는 소외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뒤틀린 성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기 쉽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고 비틀어진 인간 관계를 변혁하려면 아동학대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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