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평양에서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가 개회됐다. 김정은 집권 10년차를 맞은 가운데, 2016년에 이어 5년 만에 열린 당대회였다.

5일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경제 성과가 목표에 많이 미달했음을 시인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경제 성과가 미미하고 인민의 생활이 뚜렷이 진전되지 않은 객관적 이유로 “세계적인 보건 위기”(즉, 코로나19 팬데믹)와 더불어 대북 제재, “해마다 들이닥친 혹심한 자연재해” 등을 꼽았다.

사업 총화에서 김정은은 핵무력을 중심으로 군사력 강화 의지를 밝혔다. 미사일에 채택될 다탄두개별유도기술,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 개발 상황을 밝혔고, 새로운 핵잠수함의 설계 연구가 끝났음도 공개했다. 북한에서 미국 본토에 이르는 거리인 1만 5000킬로미터 사정권의 핵 타격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

그리고 북·미 관계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달려 있다며 “강 대 강, 선 대 선의 원칙”을 얘기했고, 남한을 향해서도 한미연합훈련 등 군사 적대 행위 등을 중단하고 합의 이행을 하는 등 태도를 바꿔야 “3년 전의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강 대 강, 선 대 선

이번 당대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보면 분명 “3년 전의 봄날”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2018년 4월 김정은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을 종료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비핵화 의사도 여러 차례 밝혔다. 일례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그는 ‘비핵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 당국은 미국과의 협상으로 고립에서 벗어나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한 귀퉁이에서 주권을 누릴 기회를 확보하기를 원했다. 북한은 덜 적대적이 된 대외 환경을 배경으로 제재가 완화되고 외부 자원을 더 끌어들여, 경제 건설에 집중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들에 이렇게 썼다.

“각하처럼 강력하고 탁월한 정치인과 좋은 관계를 맺게 돼 기쁩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답고 신성한 곳에서 각하의 손을 굳게 잡은 역사적인 순간을 잊을 수 없고, 그날의 영광을 다시 체험하길 바랍니다.”

그 몇 달 전에 김정은은 트럼프를 “늙다리”, “깡패”라고 부르며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고려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는데, 비공개 서한에서는 낯 뜨거운 아부를 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처럼 소름 끼치는 자에게 구애까지 했지만, 북한의 전략은 실패했다. 협상은 좌초했고 미국의 대북 압박은 변함없다. 지금 북한의 핵잠수함 개발 소식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핵잠수함 개발 등 역대급 군비 증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김정은을 “깡패”라고 한 바이든이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된다.

병진노선

이번 당대회에서 나온 얘기를 보면 이런 상황이 반영된 듯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북한이 병진노선 2.0을 천명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대외 무역이 급감하고 경제 성장이 미진한 가운데, 미국·남한 등을 상대로 자체의 군사력을 강화해 자위한다는 계획에는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부담이 따른다.

핵무력을 강화하면 북한이 재래식 전력에 많은 자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의 새 재래식 무기들은 북한 당국이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에도 상당한 투자를 했음이 드러났다. 

북한이 핵무기를 더 강화해도 상황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압박만 거세지고 안으로 내핍이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같은 상대적 후진국에서 핵무력과 경제는 동시에 잡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다.

5년 전의 제7차대회와는 달리, 이번에 김정은은 중국과의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특수한” 관계를 언급하고 조·중 관계 발전을 특별히 강조했다. 반면에 미국을 가리켜 “최대의 주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미국을 향한 표현들은 전체적으로는 절제됐다. 김정은은 핵무기 등의 “강력한 국가방위력”이 “외교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바이든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여건이 조성되기를 원할 것이다. “강 대 강” 다음으로 “선 대 선”이 언급된 까닭이다.

향후 북한과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인 미래는 불투명하다. 팬데믹 속에 제국주의 갈등은 더 악화됐고, 북·미 관계는 이런 갈등 악화가 낳는 불안정에 연동돼 있다. 당장 올봄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실시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처럼 팬데믹 위기와 점증하는 제국주의 갈등은 북한에도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다. 그래서 3대째 권력을 물려받은 젊은 독재자 앞에는 해답을 내기 어려운 고차원의 문제들이 놓여 있다. 이게 당대회 현장에서 수차례 울려 퍼진 박수 소리로는 감춰질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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