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인 사유리 씨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사유리 씨는 “한국에서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 [임신]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 하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산부인과학회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의 시술 대상 환자 조건을 ‘법적인 혼인 관계’에서 사실혼 관계로 수정했다. 그러나 수정된 윤리지침은 보조생식술 대상자를 넓히긴 했지만, 여전히 비혼 여성은 배제한다. 

비혼 출산이 불법은 아니지만, 법률적 뒷받침을 받지는 못한다. 법적으로 보조생식술의 대상은 ‘난임부부’로 한정돼 있다. 모자보건법(제11조 2항)은 ‘난임’을 ‘부부가 피임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 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으며, 난임 극복을 위해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 같은 보조생식술을 허용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비혼모가 인공출산을 원해도 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시 민주당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슈가 될 때 잠깐 관심을 보였을 뿐 논의 결과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비혼 출산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

일부 기독교·우파 단체들은 정부와 여당의 립서비스조차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비혼 출산이 ‘건강한 사회의 근본이 되는 결혼과 가족제도를 교란시키고 훼손한다’고 떠들어댄다. 

이들은 ‘임신과 출산이란 본디 남녀의 결합으로 가족 내에서 이뤄지는 성교의 결과로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거스르는 비혼 출산에 반대한다. 

그러나 현재의 이성애 중심 일부일처 가족제도는 인간의 본성도, 영원불변한 제도도 아니다. 

여러 인류학적 증거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계급 발생 이전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사회의 기초 단위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초기 인류 사회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었다.

남녀 모두 성적으로 폭넓은 자유를 누렸다. 성관계의 목적은 가족 내 생식에 국한되지 않았고, 남녀 간의 성관계만이 ‘정상’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계급 사회 이전에는 사람들의 삶이 규정된 노동 시간에 따라 짜이지 않았는데, 이는 사람들이 많은 자유 시간 동안 매우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변했다. 잉여가 생겨나고 이를 통제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직접 생산하는 이들과 생산물을 관리하는 이들 사이의 분업은 차츰 계급의 분화로 이어졌다. 일부일처제는 지배계급이 된 소수의 잉여 통제권자들이 잉여를 상속할 필요성에서 비롯했다. 그래서 여성의 성적 자유도 통제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일부일처 가족제도는 인류 역사의 특정 시점에 물질적 변화에 조응해 발전한 사회적 산물이다.  

비혼 출산 반대 주장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변하는 현실에 비춰 봐도 편협하다. 한국에서도 혼인으로 맺어진 남녀와 그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형태는 더는 지배적인 형태가 아니다. 비혼 또는 이혼 한부모 가정, 사실혼 커플, 동성 커플 등 가족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정상 가족? 한국에서도 혼인으로 맺어진 남녀와 그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형태는 더는 지배적인 형태가 아니다 ⓒ출처 sandy millar

또한 피임·낙태 기술의 발전 등으로 성이 (즐거움이나 친밀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가족과 재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관념도 도전받아 왔다. 

선택

비혼 출산 반대자들은 비혼 출산이 생명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반윤리적” 행위라고도 주장한다. 시험관 수정 방식이 배아 파괴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를 ‘생명 파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비혼 출산만이 아니라 인공출산 자체를 반대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난임 증가 등으로 보조생식술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늘어 왔다. 아이 갖기를 원하지만 임신에 실패한 많은 여성과 커플들에게 인공출산 기술의 발전은 희망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공출산은 비혼 여성들이나 동성 커플, 트렌스젠더들이 자신과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자녀를 얻을 가능성도 열어 준다. 

즉 인공출산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재생산에 대해 더 많이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되는 문제이지, 인간 존엄 파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배양 접시 위의 배아 세포를 살아 있는 인간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배아 세포는 인간과 같은 독립적 인격체는 아니다. 

비혼 출산에 반대하는 자들은 여성이 낙태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도 부정하는데, 이는 그들이 진정으로 반대하는 것은 ‘여성이 선택할 권리’임을 보여 준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거나 자연에 어긋난다는 주장은 이를 부정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비자연적인 것으로 치자면 인간 사회에서 비자연적인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은 자연적인가? 

자본주의와 가족제도

결혼과 가족제도에 대한 집념과 여성과 성에 대한 편협한 태도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물질적 기초를 두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핵가족이 핵심이다. 자본주의에서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현재와 다음 세대 노동력을 기르는 일은 개별 가정의 여성과 남성에게 떠맡겨져 있다. 이런 현실은 노동계급 가정의 구성원들에게는 무거운 부담과 고충을 안기지만, 기업들과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는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 준다. 노동력 재생산에 드는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인 남녀와 그들의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이 ‘정상적’이라는 관념, 임신과 출산, 양육이 여성이 수행해야 할 당연한 임무라는 관념도 부추겨진다. 이것은 집 안팎에서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을 낳고, 혼외 출산에 대한 천대와 차별로도 이어진다. 부부가 헤어지는 문제(이혼)에 국가가 이혼숙려제 따위를 둬서 간섭하는 것,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의 여러 정책도 핵가족 모델을 기초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혼인 여부와 자녀의 유무가 주택 청약 당첨 가능성을 좌우한다. 반면, 혼인이나 혈연 관계가 없는 동거인들 사이에서는 상속이나 세금 감면 혜택은 물론,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고, 장례를 치를 수도 없다. 체외수정(시험관 시술)과 인공수정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도 법적 부부에 한정돼 있다. 

비혼모들은 차별과 멸시로 고통받는다. 육아와 돌봄이 개별 가정에 떠넘겨져 있는 상황에서 비혼모들이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기는 매우 어려운데다, 차별과 멸시 때문에 괜찮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 미혼모의 월평균 소득은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도 100만 원이 채 안 된다(인구보건복지협회의 조사).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이유가 지배계급의 필요 때문은 아니다. 사람들은 가족이 척박한 외부 세계와는 다른 나만의 안식처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개인들의 삶에 가하는 압력들은 이런 기대를 거듭 무너뜨리고, 심각한 경우 때로는 가족을 끔찍한 폭력과 학대의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 가족은 변해 왔다. 1996년에만 해도 43만 건이던 혼인 건수는 2016년에 20만 건대로 추락했다. 그에 따라 결혼과 가족, 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변해 왔다. 동거 커플 등 결혼 제도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고 있다. 한국보다 변화 추세가 빠른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혼외 출산이 크게 늘어 왔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곳들도 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집 바깥에서 일하며, 이런 변화에 따라 양육과 돌봄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일부 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노동계급 가정의 필요에 한참 못 미친다.  

국가의 지원이 일부 늘었어도, 자본가들과 자본주의 국가의 이해관계 때문에 개별 가족에 양육과 돌봄을 떠넘기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혼과 가족, 여성과 성에 대한 보수적이고 편협한 관념은 그 형태를 달리할지라도 자본주의 하에서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개인들의 성적 관계도 자본 축적의 필요가 우선되는 이런 사회구조 하에서 제약받고 뒤틀리기 쉽다. 

비혼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지원 확대하라

비혼 출산은 비난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출산을 원치 않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도록 압박받고,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들은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리고, 결혼과 가족이라는 협소한 기준에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가 욱여넣어지는 자본주의 사회다. 

누구든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가질지 말지, 이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선택’이 되려면,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는 법률을 고쳐쓰는 것뿐 아니라 국가가 양육과 돌봄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인공출산에 대한 지원도 확대돼야 하고, 비혼 사실이 인공출산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선택과 자유를 확대하려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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