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이날 시위대의 핵심에는 파시스트들이 있었다 ⓒ출처 Blink O'fanaye(플리커)

먼저 용어를 짚고 넘어가자면 나치즘과 파시즘인데, 나치는 독일 히틀러의 정당 이름에서 나온 것이고 파시즘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정당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특별한 극우로, 매우 모순된 중간계급 대중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같은 뜻으로 보면 된다. 이 정의가 더 자세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서구에서 파시즘의 재등장

올해 2021년은 홀로코스트가 시작한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홀로코스트는 나치당이 제2차세계대전 중에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이 죽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는 5000만~7500만 명이 죽었다. 제2차세계대전은 유럽부터 동아시아와 태평양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그야말로 세계 전쟁이었다. 그 끔찍한 기억 때문에 서구 반파시즘 운동은 “Never again!”(두 번 다시는 안 된다)이라는 구호를 오랫동안 외쳐 왔다.

그러나 우려스럽게도 최근에 여기저기에서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로 얼마 전인 1월 6일 미국의 극우들이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에 난입하고 전국 각지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다. 시위대 중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말이 적힌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600만 [명]은 부족했다”는 말이 적힌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 그날 폭동 중에는 아니었을지라도 미국 극우 중에 그런 옷을 입는 자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날 시위대의 핵심에는 파시스트들이 있었다. 미국의 극우와 파시스트들은 트럼프 집권 시기에 크게 성장했다. 2017~2019년 간에  백인 우월주의 단체의 수가 55퍼센트나 늘었다고 한다. 1월 6일 사건은 그들이 전국적으로 조율된 행동을 벌일 만큼 세가 커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만큼 파시스트가 성장하기 유리하고 그래서 심각한 상황이다. 트럼프 자신은 파시스트가 아니지만,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좇아서 임기 내내 극우와 파시스트를 고무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극우와 파시즘의 성장은 유럽에서도 관찰된다. 프랑스에는 국민연합(‘국민전선’의 후신)이라는 강력한 파시스트 정당이 있다. 그 대표인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에 출마해 1000만 표 넘게 득표했다. 다음 프랑스 대선은 내년인 2022년에 열린다. 르펜은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지지율도 확고하게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에는 우익 포퓰리스트와 파시스트들이 함께 구성한 혼합형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있다. 이 정당은 현재 독일 의회에서 700석 중 90석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는 자유당이 있다. 자유당은 1955년에 나치 친위대 장교들이 만든 고전적 파시스트 정당인데 얼마 전까지 우파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헝가리에서는 요빅당이 성장했었다. 그들도 나치 친위대를 모델로 하는 고전적 파시스트 정당으로, 심지어 나치 친위대 제복을 입고 거리 폭력을 조직한다.

그리스에는 황금새벽당이라는 선명한 파시스트 정당이 있다. 보통 요즘 파시스트들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데 황금새벽당은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홀로코스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금새벽당은 거리에서 좌파와 이민자 공격을 일삼았다. 2012~2015년에는 국회의원 20명가량을 보유했었다. 반파시즘 운동이 꾸준히 성장해 2020년 10월 그리스 법원은 황금새벽당을 범죄 조직으로 판결했다.

파시즘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고 어떻게 맞서 싸울지 아는 것은 정말이지 중요한 일이다.

파시즘은 무엇인가?

파시즘의 고전적 사례인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의 독일 나치를 살펴보면서 파시즘은 무엇이고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지를 얘기해 보겠다.

이에 관해서는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당시에 쓴 글들과 분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트로츠키는 파시즘이 극우의 일종이지만 특수한 극우라고 분석했다. 첫째, 형태 상의 차이점이다. 파시즘은 소수 군부 장성들만이 관여하는 쿠데타와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대중 운동이었다. 둘째, 사회적 기반의 차이이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을 핵심 기반으로 한다. 이 때문에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극도로 모순돼 있다. 셋째, 목표의 차이이다. 파시즘은 사회가 극심한 위기에 빠졌을 때 성장하는데,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모조리 파괴해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고 의회제 민주주의 자체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시즘의 이데올로기가 아주 모순돼 있어도 이 목표 하나만큼은 명확하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됐다. 그러나 1920년대에 독일(바이마르공화국)은 유럽에서 의회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였다. 이 시기 대부분 동안 독일 사회민주당(이하 사회민주당 또는 사민당)이 집권하거나, 그러지 못해도 선거에서 2등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초에는 정치·사회 위기가 너무 심각해져서, 기성 부르주아 정당이나 사회민주당으로는 통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사실 1920년대 내내 히틀러와 나치당은 별로 영향력이 없었다. 1923년 11월 이른바 맥주홀 쿠데타라고 불리는 사건은 지나가는 에피소드 정도에 불과했다(물론 정치적 상징으로선 의미가 있었지만). 1928년 총선에서도 나치당은 겨우 2.6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1930년에는 18.25퍼센트를 득표해 제1 야당이 됐고, 1932년에는 37.4퍼센트를 득표하며 제1당이 됐다. 바로 그 사이에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공황이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과 1918년 혁명 직후인 1920년대 초에는 잠깐의 회복기가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에 세계 경제 공황이 닥친 것이다. 그 여파로 독일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32년 독일의 실업자는 공식 통계로도 600만 명이나 됐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실업자도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실업자와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당시 독일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실업 상태였다.

나치당의 핵심 지지 기반은 중간계급이었다. 극심한 경제·사회 위기 속에서는 중간계급의 삶도 크게 망가진다. 이런 때 자본가 지배계급도 강력하지 못하고 좌파와 노동운동도 그 대안이 되지 못하면, 파시스트가 중간계급의 좌절감과 불만과 분노를 이민자와 소수 인종 등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데마고기(감정적 거짓 선동) 하며 성장할 수 있다.

독일이 극심한 위기에 빠지자 나치의 선동이 대중에게 먹히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치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반유대주의 선동에 기대지는 않았다. 에딘버러대학교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학자 도니 글럭스틴은 나치가 집권하기 전 2년 동안 발행한 신문을 모두 읽고는, 유대인 관련 기사가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함을 발견했다. 나머지는 정부 비판, 실업 문제, 사민당 비판, 공산당 비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나치는 극도로 모순된 자기 운동의 결속을 위해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나치는 유대인 금융자본가, 사민당, 공산당, 러시아 볼셰비키를 비난하며 중간계급 대중의 분노를 뒤틀리게 대변했다.

나치의 선동은 중간계급에게는 먹혔지만 노동계급에게는, 특히 조직 노동자들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았다. 나치당이 1위를 한 1932년 두 차례 총선에서도 노동계급 정당인 사민당과 공산당이 얻은 표를 합하면 나치당과 비슷하거나 더 많았다. 더욱이 노동조합 선거에서는 나치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신화와 달리, 모든 독일인이 나치를 지지한 것이 아닌 것이다. 유대인 학살이 절정에 이른 때에도 많은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자기 집에다 숨겨 줬다.

신화와 다른 점 또 하나는, 독일의 히틀러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든 선거로 집권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했고 무솔리니는 왕이 총리로 임명했다. 이는 파시즘을 선거를 통해, 또는 헌법 수호를 통해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가진 전통적 수단으로는 사회·정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파시스트들에게 정권을 줘서 노동계급을 궤멸시키고자 했다.

파시스트들이 그런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노동계급 조직의 말살을 목표로 하는 대중 운동인 데다가 이를 위한 폭력 조직도 가지고 있었고, 그것으로 좌파와 노동자 운동을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 있음을 실제로 입증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 나치당은 1932년에 청년 20만 명 규모의 돌격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치의 집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당시 사민당과 공산당은 당원 수도 훨씬 더 많아 둘이 합치면 선거 득표율도 더 높았고, 거리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도 더 많았고, 각각 군사조직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노동계급 조직들이 단결하지 못하면서 나치의 성장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히틀러는 이렇다 할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권력을 잡았다.

파시즘 용어를 느슨하게 쓰지 말고 엄밀히 하는 게 중요하다

고전적 파시즘을 살펴봤으니 태극기부대는 일종의 파시즘일까 하는 의문이 들 만도 할 때가 됐다.

앞에서 봤듯이, 파시스트는 중간계급 대중에게 먹힐 만한 주장과 요구를 내놓고 모든 노동단체와 의회제 민주주의의 파괴를 목표로 한다. 반면, 한국의 태극기부대는 반박근혜 정서가 강한 나라에서 박근혜를 찬양하고 그의 석방을 주장한다. 반재벌 정서가 강한 나라에서 재벌을 옹호한다. 무엇보다 의회제 민주주의 파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좌파와 좌파적 노동조합을 증오하고 비난하지만 말이다. 태극기부대는 전통적 우파 정당과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의존적인 태도를 보인다. 요컨대, 태극기부대는 여러 면에서 파시스트와 성격이 다르다. 물론 그 속에서 미래 파시즘 운동을 이끌 인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질적으로 다른 조직과 운동이 등장함을 뜻한다.

물론 파시즘의 성장은 일탈이 아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극심한 위기에 빠지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태극기부대를 파시즘으로 오인하면 진정한 파시즘이 등장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독일 좌파들이 나치의 성장에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한 이유 하나는 파시즘이라는 독특한 위협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당시 사민당은 파시즘을 위기의 시대에 나타난 정신병적 증상이라고 부정확하게 봤다. 그러면서 나치가 헌법을 어기면 거기에 대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민당이 지지해서 대통령 자리에 앉은 힌덴부르크는 헌법 절차에 따라 히틀러를 총리에 임명했다. 그러고 나서 사민당은 나치의 철퇴를 맞았다.

당시 공산당은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파시즘을 대자본의 도구로 봤다(“독점자본의 테러주의 세력”). 그래서 나치가 1930년에 득표율이 껑충 뛰었는데도 대자본에 맞서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런 관점은 나치의 사회적 기반이 중간계급이라는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공산당이 ‘사회(주의적) 파시즘’이라는 견해를 내세워 사민당과 나치가 쌍둥이라고까지 주장했다는 점이다. 사민당은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조직이고 나치는 노동계급 조직을 깡그리 파괴하려는 세력이라는 결정적 차이, 즉 노동계급 처지에서는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차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 실천적 결론은 재앙적이게도, 사민당과의 반나치 공동투쟁의 거부였다. 공산당도 마찬가지로 나치의 철퇴를 맞았다.

한국 좌파 중에는 파시즘 개념을 너무 넓힌 나머지, 개념 규정의 의의마저 사라질 만큼 느슨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한국의 좌파 일각에서는 트럼프 지지 운동의 기반을 백인 하층 노동계급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미국 선거에서 주류 정치세력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반감을 가진 백인 하층 노동계급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많이 투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월 6일 미국 전역의 폭동과 난동 참가자 다수는 광대한 미국 땅을 가로질러 오고 군사 장비를 마련할 돈이 있는 비교적 유복한 자들이었다. 수동적 투표 행위와 투표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사회세력에 기반을 두고 반트럼프주의 운동(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을 구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좌파의 다른 일각에서는 미국 공화당이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공화당 안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자본을 일관되게 대변해 온 공화당 주류 세력과 트럼프파 사이에 긴장도 커지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반트럼프주의 운동(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을 미국 공화당 반대 운동으로 축소 또는 치환할 수 있다.

1930년대와 오늘날의 공통점과 차이점

1930년대와 지금의 공통점은 사회가 위기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위기는 2008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불황에서 시작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채로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또다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백신이 신속히 개발되고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는 일 등을 보며 일각에서는 이제 곧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그 정상 상태가 바로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낼 필연적 요인들을 배태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 위기, 팬데믹 위기, 기후 위기, 군사적 경쟁 등 여러 면에서 “항구적 재난”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물론 차이점이 있다. 첫째, 위기의 수준이다. 지금 위기도 심각하지만 1930년대는 더 심각했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과 중부 유럽 혁명을 겪은 지 얼마 안 됐고, 여러 나라에서 혁명적 운동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세계적 대불황이 닥친 시기였다. 그래서 현재 주요 나라 지배계급들은 아직은 파시즘의 통치에 기대지 않는다. 물론 여러 증거는 위기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심각해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둘째, 사민당과 공산당 같은 노동계급 조직이 당시에 비해 크게 약해져 있다는 점이다. 공산당들은 소련 붕괴와 함께 거의 사라지거나 극도로 취약해졌다. 사민당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실행하면서 노동계급의 조건을 오히려 공격했다. 그래서 상당히 약해졌다.

그리고 개혁주의·스탈린주의 조직뿐 아니라 급진적·혁명적 좌파도 지금은 상당히 약하다. 노동계급 조직과 운동이 약한 것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하나는, 좌파와 노동자 운동이 약하므로 지배계급이 파시즘에 권력을 내줘야 할 필요성을 지금은 절실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위기 수준의 차이를 말했는데, 사회적·경제적 위기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도 함께 봐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함의는, 노동계급 조직이 약하기 때문에 지금은 노동자들의 일부도 극우와 파시스트의 주장에 끌릴 가능성이 더 크고 실제로 노동계급 중에서도 파시즘 정당 지지표가 꽤 나온다는 것이다. 노동자 정당이나 노조 등 노동계급 조직이 노동자와 여타 차별받는 사람들을 잘 대변하지 못하면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당시와 달리 지금은 사람들이 아직은 거리 전투나 무장 조직에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이 많다는 것이다. 1930년대 초는 제1차세계대전을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통치가 불가능해서 정치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나치당의 돌격대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퇴역 군인들에게서 초기 성원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이 좀 힘들다.

넷째, 현재의 극우와 파시스트들은 거리 폭력보다는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는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다섯째, 고전적 파시즘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우익 조직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우익 포퓰리즘과 혼합형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런 다양성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대응할 때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공동전선

그럼 파시즘의 성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트로츠키는 노동계급의 조직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민당과 공산당이 단결해야 한다고 했다. 트로츠키는 그것을 공동전선이라고 불렀다. 서로 안 맞는 면이 많더라도 또 이론이나 정치에서 차이점이 많이 있더라도 노동계급 조직들이 어깨를 걸고 공동의 적에 맞서서 공동의 행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여러 ‘연대체’가 존재하는데, 트로츠키가 말한 공동전선은 한국에서 사실상 별로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연대체다. 공동전선은 상층뿐 아니라 기층 수준에서도 조직을 만들어 대중 운동을 건설한다. 몇 안 되는 특정 구체적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 노동계급과 피차별 사회집단들이 힘을 합치지만, 운동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비판, 관련 쟁점 외 쟁점들에 대한 입장에서는 각 조직이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한국의 연대체 대다수는 기층 운동을 건설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고, 정책 대안(개혁입법을 위한) 마련과 제안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공동전선으로 운영되는 연대체는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광범하게 단결하더라도 경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민주당은 미국의 반파시즘 운동이 함께 협력할 대상이 아니다. 민주당은 착취와 차별을 유지하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 힘쓰면서 대중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려 왔다. 그 때문에 쌓인 대중의 불만을 트럼프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재선을 막으려고 바이든에게 투표한 평범한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은 단결의 대상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당은 단결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계급과 좌우를 가로지르는 연합을 추구하는 전략을 인민전선이라고 부른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세력들 간의 연합을 추구하는 인민전선 전략은 선거 득표에는 유리할 수 있어도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대중 투쟁 건설에는 해롭다.

공동전선의 좋은 사례가 있다. 바로 그리스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리스에서는 노골적 나치 정당인 황금새벽당이 2010년대에 크게 성장했다. 그리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2008년 위기 직후인 2009년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함께 건설하자고 발의하고 여러 좌파 및 노동계급 세력과 함께 10여 년 동안 활동하고 있다.

“파시즘, 두 번 다시는 안 된다” 2020년 그리스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 시위’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그 운동 안에는 혁명적 조직, 개혁주의 조직, 노동조합, 이주민 단체, 성소수자 단체 등이 광범하게 참가하고 있다. 몇 년 전 파시스트들이 거리에서 힙합 가수를 살해했을 때, 6만 명 규모의 시위를 조직했다. 아테네 인구의 거의 10분의 1을 거리로 불러모은 것이다. 최근에는 황금새벽당이 범죄 조직 결성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그리스 반파시즘 운동은 파업과 거리 시위를 벌이며 유죄 판결이 나오도록 애썼다. 그리고 5년 만인 2020년 10월 7일에 승리를 거뒀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경제 위기가 터지자, 그리스는 유럽과 중동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이주민이 많고, 노골적 파시즘 정당이 있는 상황에서 인종차별과 파시즘이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여러 좌파 및 노동계급 조직과 함께 공동의 행동을 벌이며 중요한 승리를 일궈 냈다.

파시즘의 완전한 근절을 위해서

파시즘의 성장은 이례적 일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극심한 위기에 빠질 때 중간계급은 삶이 나락으로 빠지면서 극도의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자본가(지배) 계급이든 노동계급이든 대안이 되지 못해 중간계급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파시스트들이 그 좌절감과 분노를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지는 경향을 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파시즘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 유대인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쥐와 시궁창에 비유했다. 쥐가 나타날 때마다 잡아야 하겠지만, 쥐를 완전히 박멸하려면 쥐가 서식하는 시궁창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시즘이 성장할 비옥한 토양을 마련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정치는 파시즘의 성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설 방법과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질수록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근원적인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다. 이를 극복하려면 혁명적 좌파가 기층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개혁주의 세력과 공동전선을 펼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혁명적 리더십의 건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필자의 추천 도서

  • 《알렉스 캘리니코스 시사논평 — 양극화, 극우, 좌파》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정구 엮음, 책갈피, 343쪽 15,000원
  • 《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전선》 레온 트로츠키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424쪽,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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