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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정세 속에 성과 거둔 택배 노동자 투쟁

1월 21일 택배 노동자들이 성과 있는 합의를 따냈다. 그 내용을 반영해 기존 기사를 증보했다.

살인적 노동조건에 맞서 일어나는 택배 노동자들 지난 10월 파업으로 승리한 롯데택배 노동자들 ⓒ조승진

파업 태세를 갖추며 투지를 높여 온 택배 노동자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따냈다. 택배 노·사와 정부는 1월 21일 ‘택배 과로사 대책을 위한 1차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번 합의문에는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가 반영됐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무임금으로 떠넘겨 온 분류 작업을 사측 책임이라고 명시했고, 택배 노동자의 작업 범위는 집화·배송 업무로 제한했다. 택배 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하게 될 경우에는 일정한 임금(수수료)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택배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낼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3시간가량 일하는데, 그 시간의 44퍼센트 정도가 분류작업에 소요된다. 임금도 못 받는 이 일을 하느라 배송도 시작하기 전에 진을 뺀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분류작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해 왔다.

본지에 소식을 전해 준 노동자들은 이번 합의에 기뻐하며 “약속이 실제 이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구체적인 인력 투입의 규모, 임금 수준 등을 정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강제해 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이와 별도로, 1월 20일 정부는 일감이 몰릴 설 연휴 기간에 택배 분류·상하차 인력 6000명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유사한 내용이 합의문에도 담겼다. 물론, 택배사들의 요금 인상 요구(대다수가 노동자·서민인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넘기는)가 반영되는 등 아쉬운 점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노동자들과 한 약속조차 어겨 가며 택배 노동자들의 잇딴 과로사를 방치해 온 책임이 있다. 노동자들은 택배사들과 정부의 약속 파기에 분통을 터뜨리며 항의에 나섰다.

마침 정세는 노동자들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 내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당장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데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30퍼센트대까지 떨어졌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경제 위기로 인한 생활고 때문에 노동계급 대중의 불만은 쌓여 있다. 문재인이 내세운 검찰개혁은 정권의 레임덕을 막으려고 꺼내 든 것이었음이 드러나 신뢰를 잃었다. 코로나 확산과 서울 동부구치소의 집단 감염 사태,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는 집값·전셋값 상승, 여권의 자중지란을 부른 이명박·박근혜 사면 논란 등도 실망을 자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탈하는 민심을 붙잡으려고 최근 이명박·박근혜 사면 주장에 선을 긋고 개혁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정부가 택배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이런 정세를 이용해 싸우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다.

노동자들의 불만

노조가 택배 배송 물량이 몰리는 설 명절 대목을 파업 시점으로 잡은 것도 정부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상당한 불만과 투지를 드러내 왔다.

“파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호응이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요구를 지지해 주는 만큼,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지회장들은 20일부터 시작된 파업 찬반투표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누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노동자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주 6일, 72시간가량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노동자 16명이 과로로 사망했다. 노동강도도 무척 센데, 근무시간에는 조금도 쉴 수 없고 끼니도 거르기가 다반사다.

이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알려지면서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도 택배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택배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됐고, 노동자들의 인력 충원 요구도 지지를 얻었다.

택배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스스로를 결속시키며 투쟁과 조직을 조금씩 확대해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롯데택배 노동자들이 생애 첫 파업에서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러 택배사 노동자들이 함께 뭉쳐 유리한 정세와 우호적 여론을 등에 업고 요구를 따냈다.

앞으로 합의문에 담긴 약속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사측을 강제하기 위한) 투쟁 과제가 남아 있다. 이번 성과를 디딤돌 삼아 다음번 투쟁도 성공할 수 있길 바란다.